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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눈물-신경숙    블로그형  게시판형  리스트형
[본문스크랩]    [신경숙 연재소설 -167] 푸른눈물    2007/02/03 17:55 추천 0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marinestella/1825315
 원문출처 : [신경숙 연재소설 -167] 푸른눈물
 원문링크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1/04/2007010401623.html
  • 어떤 사람에게 사랑은 투쟁이다.

    성취욕이 강한 홍종우가 상소를 올렸다는 것이 리진은 마음에 걸렸다. 홍종우의 상소는 결국 콜랭이 리진을 조선에 두고 홀로 떠나게 할 만큼 위력을 발휘했었다. 강연에게도 그 위력이 미치지 말란 법이 없었다. 강연은 대금을 불 줄 아는 것밖에는 자신을 방어할 최소한의 권력도 지니지 못한 이였다.

    ―강 악사가 아무 말도 안 해?

    강연에게서 이에 관한 어떤 말도 들은 바가 없다. 생각해 보니 오늘은 해가 저문 후에도 강연이 고아원에 오지 않았다. 장악원에서 일을 마치면 강연은 먼저 고아원을 찾곤 했다. 해 저물녘에 강연에게 피리를 배우고 있는 아이들이 더워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대추나무 아래 모여 고개를 빼고 강연을 기다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침에 집을 먼저 나설 때도 강연은 다른 말이 없었다. 어제 깊은 밤에 리진이 파리에서 가져온 오보에를 강연이 부는 소리를 잠결에 들었다. 귀에 폭포수처럼 쌓이던 오보에 소리.

    ―장악원 악사에 대한 상소였기 때문에 진작 전달이 되었을 텐데…. 네가 중궁마마를 찾아뵙는 게 어떨까?

    ―서상궁 마마가 이미 말씀드렸을 거야.

    ―다시 한 번 말이야. 어쨌든 너와 강 악사가 오누이가 아닌 것은 사실이니까.

  • ▲그림= 김동성
  • 리진은 입을 다물었다. 피를 나눈 혈육이 아니어도 서상궁의 언니 서씨의 손에서 남매처럼 자란 사이라는 것은 왕비도 알고 있었다. 임오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왕비와 리진 주변을 지키던 존재가 강연이라는 것도.

    ―일이 잘못되었을 경우 장악원의 악사 자리도 내놓게 될까?

    ―그정도에서 그치면 다행이지.

    ―그러면?

    소아가 입을 다물었다.

    마루에 걸터앉아 있던 소아는 궁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일어섰다. 특별히 출입을 허락받지 않으면 궁 바깥에 머물 수 없는 게 궁인이다. 빈집의 매화나무 아래서 리진이 오기를 기다리느라 궁으로 돌아갈 시각이 다 된 모양이었다. 다시 사립문을 나서는 소아를 리진이 따라나섰다. 반촌의 고샅길을 지나고 다리를 지날 때도 소아는 말이 없었다. 배나무 사이로 보이는 집집에서 켜 놓은 등잔불빛이 보였다.

    ―왕족이라고 해도 궁녀를 취하게 되면 큰 벌을 받아. 어려서 궁에 들어와 열한 살 때 출궁되었던 궁녀 열이를 첩으로 들였다가 참수를 당한 역관도 있었어. 시절이 좋을 땐 그냥 지나가지만 기어이 따지겠다는 사람이 생기면 국법이 있으니.

    홍종우는 자신은 조선을 위해 할 일이 쌓여 있다고 했다. 파리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이제는 조선을 위해 쓸 때라고 했다. 왕권을 강화시키는 길이 조선이 부강해지는 길이며 그 왕권으로 개혁을 이루는 것을 보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고도 했다. 왕의 신임을 얻었으니 파리에서처럼 리진이 곁에서 도와주면 못 이룰 게 없을 것 같다고도 했다. 선선히 그리하겠다고 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까.

    ―궁녀와 술 한잔 했다가 파직을 당한 이도 있어.

    리진은 어둠 속에서 소아의 손을 잡았다. 더 이상은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반촌으로 들어오는 입구에서 두 사람은 마주섰다. 소아는 리진의 손을 꼭 붙들었다. 여름밤의 열기가 소아의 손바닥에서도 배어났다.

    ―네가 궁으로 다시 들어오지 않은 건 잘된 일이야. 요즘처럼 궁에 있는 게 두려울 때가 없거든. 밤이 되면 모두들 깊은 잠을 못 이루고 날이 밝기를 기다려. 중궁마마의 불면이 우리에게도 옮겨졌나 봐.

    리진은 소아의 땀에 밴 손을 꼭 쥐어 주었다. 소아가 손에 들고 있던 남색 모단 너울을 펼쳐 몸을 가렸다. 몇 걸음 걷던 소아가 리진을 돌아다 보았다. 리진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 궁으로 돌아갈 뿐인데 소아가 아주 먼 길을 떠나는 것같이 느껴져서 리진은 소아의 자태가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된 후에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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