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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    블로그형  게시판형  리스트형
[본문스크랩]    [정이현 연재소설-3] 달콤한 나의 도시    2006/07/21 14:55 추천 0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marinestella/1287182
 원문출처 : [정이현 연재소설-3] 달콤한 나의 도시
 원문링크 : http://www.chosun.com/culture/news/200511/200511010352.html
[정이현 연재소설-3] 달콤한 나의 도시
1부-성년의 날

“나 결혼해.”

그럴 리가 없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나는 꿀꺽 마른 침을 삼키면서 재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재인은 어쩐지 쑥스럽다는 듯 슬며시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 살이라도 어려 보이고자 일자 뱅 스타일로 자른 앞 머리칼이 이마 위에서 깜찍하게 흔들렸다.

“에이, 설마.”

먼저 입을 연 건 내가 아니라 유희였다. 유희 역시 적잖은 강도의 충격을 받은 눈치였다. 그렇다. 서른한 살의 미혼여성에게 무엇보다 충격적인 소식은 옆자리 동료가 로또복권에 당첨되었다거나, 나보다 공부 못하던 여고 동창이 뒤늦게 환골탈태하여 사법고시에 합격했다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그런 경우야 뭐 좀 얼떨떨하고 묘한 시샘이 일기도 하겠지만 내 힘으론 어쩔 수 없는 영역의 일이므로 금세 받아들일 수 있다. 서른한 살은 그 정도 가벼운 쇼크쯤은 웃으며 극복할 수 있는 나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그러나 이건, 이건 명백히 다르다. 늘 함께 어울려 다니던 친구가 갑자기 결혼을 선언한 것이다. 발 딛고 선 땅바닥이 흔들리는, 진저리 나도록 현실적인 날벼락이 아닐 수 없었다.

“미안해. 어쩌다 보니 후다닥 그렇게 됐어.”

재인의 말투에서는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기색이 묻어났다. 미리 말을 못해서 미안하다는 건지, 아니면 우리를 남겨놓고 먼저 가서 미안하다는 건지 헷갈렸다. 졸지에 불우이웃이 된 기분이었다. 어쨌든 그녀의 결혼은 사실인 모양이었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쓰며 겨우 물었다.

“근데 대체 누구랑 한다는 거야? 너 남자 없었잖아.”

“기억 안 나? 얼마 전 주말에 선본다고 했던 거.”

나와 유희가 동시에 헉, 신음을 내뱉었다. 두 주쯤 전인가 금요일 저녁에 만났을 때 재인은 내일 오후에 맞선이 있는데 귀찮아 죽겠다고 투덜거렸었다. 그럼 왜 나가는 거냐고 유희가 냉소적으로 묻자, 재인은 “하는 수 있니. 집에서 밥이라도 얻어먹고 살려면 이 정도는 해줘야지”라고 한숨을 쉬며 대답했었다.

“그러니까 불과 이 주 만에 결혼을 결정했다는 거 아냐, 지금?”

“야, 상식적으로 한 번 생각을 해봐. 이게 말이 되냐?”

우리의 협공에 재인이 정색을 했다.

“이 주일 넘었어. 오늘이 십칠 일째야.”

나와 유희의 눈빛이 허공에서 짧게 마주쳤다. 나와 유희와 재인은 올해로 딱 15년째 친구로 지내오고 있었다. 열여덟 살, 독서실 옥상에서 첫 키스를 나눈 첫사랑 남자아이가 다른 여자와 껴안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 내가 당장 자살하겠다고 난리법석을 떨었을 때 내 옆에 있어준 건 유희와 재인이었다. 스물세 살, 유희가 군대 간 남자친구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재인은 제 장학금을 선뜻 수술비로 내놓았었다. 나와 재인은 마취에서 깨어난 유희의 손을 꼭 잡고 함께 훌쩍거렸었지. 그때처럼 코끝이 맹맹해져 왔다.

15년은 끔찍하게 긴 시간이 분명했지만 그렇다 해도 우리에게는 제각각의 인생이 있었다. 하재인, 네가 다른 날도 아니고 하필 오늘, 나의 엑스보이프렌드 고릴라가 장가가는 날, 내 뒤통수를 때려? 그렇게 따지고 들 수 없다는 걸 깨닫자 좀 쓸쓸해졌다. 15년 우정의 힘을 발휘하여 나는 가까스로 친구가 원하는 질문을 찾아냈다.

“진짜 대단하다. 도대체 얼마나 멋진 남잔데?”

재인의 안색이 금방 환해졌다. 우리보다 네 살 많은 비뇨기과 전문의, 교육자 집안의 차남, 선배와 동업으로 조만간 개원 예정 등의 프로필을 재인은 조잘조잘 읊어댔다. 여기가 어린왕자가 사는 별이 아니니 당연하겠지만, 그 남자의 머리색깔이나 눈동자 빛깔 같은 것에 대해서는 입에 올리지 않았다. 하긴 뭐 어차피 한국 남자,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를 가졌을 게 뻔하지만 말이다. 가만히 재인의 설명을 듣고 있던 유희가 불쑥 물었다.

“그래서 그 남자를 왜 사랑하는데?”

사랑이라니. 못 들을 말을 들었다는 듯 재인이 동그란 눈을 한껏 치켜떴다.

입력 : 2005.11.01 19:08 46' / 수정 : 2005.11.08 14:2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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