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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끝에 천하를 춤추게 하다
blog.chosun.com/muye
 
조민욱 (muye)
안녕하세요. 강호를 잠시 떠났다가 돌아왔습니다. 더욱 알차고 흥미진진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도록 하겠습니다. 아, 무예사랑방 카페는 문 닫고 이리로 이사왔습니다. 새 집에서 새 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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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를 자르는 의천검, 바위를 가르는 도룡도    2009/11/20 00:37 추천 6    스크랩 2
http://blog.chosun.com/muye/4328576

 

의천검과 도룡도.

 

신필이라 일컬어지는 홍콩의 무협작가 김용의 의천도룡기에 나오는 무적의 병기들입니다. 쇠를 자르고 바위를 가르는 보검(寶劍)이고 보도(寶刀)이지요. 무림의 숱한 영웅호걸들이 이들 보검과 보도를 차지하기 위해 피비린내 나는 투쟁을 벌입니다. 목적은 오직 하나. 명검으로 천하제일의 고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이지요.

 

각 문파의 내노라하는 고수들이 왜 한낱 쇠붙이에 불과한 칼에 그리 집착을 할까요. 그건 병장기의 이로움이 결코 작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력이 엇비슷하거나 다소 뒤지더라도 병장기의 강하고 예리한 이점으로 충분히 이를 만회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 때문에 가볍고 예리하고 강한 칼은 모든 무인들이 꿈꾸는 보물입니다.

 

그럼, 수많은 병장기 중에서 왜 하필 검(劍)과 도(刀)가 선택되었을까요? 창이나 월도 등 장병장기들도 많은 데 말이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검과 도가 휴대하기 간편한 가장 실용적인 무기이기 때문이죠. 무림을 누비는 협객들은 이동거리가 무척이나 깁니다. 무겁고 기다란 무기는 들고 다니기 불편하지요. 그렇다고 맨손으로 다니면 아무래도 불안하고요. 그래서 한 자루 칼을 등에 매고 천하를 유랑합니다. 창을 들고 다닐 경우는 자루를 짧게 한 단창(短槍)을 소지하는 경우가 많지요.

 

 

의천검-칠검.jpg

 * 영화 '칠검'에 등장하는 다양한 명검들

 

 

검과 도의 종류는 무척 많습니다.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제각각이지요. 아더왕의 엑스칼리버, 몽고 기마병의 만도, 사무라이의 일본도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검은 뭐고 도는 뭘까요? 구별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검은 직선에다가 날이 양쪽에 있고, 도는 약간의 곡선에다 날이 한쪽에만 있습니다. 모양은 직선인데 날이 한쪽에만 있는 것은 어떨까요? 이런 경우는 모양은 도에 가깝지만, 사용하는 용법은 검에 가깝습니다. 직선의 칼을 움직이려면 도법보다는 검법이 훨씬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검과 도를 구분 없이 그냥 칼이라고도 하지요.

 

검과 도는 모양만 다른 것이 아니라 사용하는 방법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검은 날이 양쪽에 있기 때문에 자칫하면 자신의 칼에 스스로 베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몸에 칼날을 가까이 붙여서 돌리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검의 특기 중 하나는 다이아몬드처럼 생긴 검봉(칼의 끝부분)을 이용하여 찍어치는 겁니다. 마치 제비가 수면 위를 날다가 먹이를 순간적으로 낚아채듯이 손목의 탄력을 이용하는 공격인데 막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지요. 고수의 움직임을 보면 칼이 안보일정도로 위력적입니다. 또한 양날검은 상대방 무기를 감아서 찌르는 동작이 많습니다. 날이 얇고 탄력이 좋기 때문에 둔탁한 도와는 달리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화려하고 섬세한 동작이 많아서 종종 여성에 비유되지만, 그 변화무쌍함은 어떤 병장기에도 뒤지지 않습니다.

 

도는 투박한 남성입니다. 날이 있는 부분은 얇고 등은 두텁지요. 이는 칼을 휘두를 때 힘을 키워주고 속도도 빨라지게 만들어 줍니다. 힘이 넘치지요. 일본도처럼 제대로 만들면 두꺼운 갑옷과 투구를 뚫고 살과 뼈를 끊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손으로 칼등을 받쳐 막거나 밀어치기에도 좋고요. 곡선 모양이기 때문에 크게 휘둘러 베거나 치는 동작이 많습니다.

 

의천검-장쯔이.jpg

 

의천검-양자경.jpg

* 영화 '와호장룡'은 무당파의 명검인 청명검을 놓고 벌어지는 무림이야기다.

위의 사진은 청명검을 든 장쯔이. 아래 사진은 장쯔이를 상대하는 양자경. 손에는 도를 들고 있다. 

 

 

백일도 천일창 만일검(百日刀 千日槍 萬日劍).

 

무림계에 전해오는 명언 중 하나입니다. 도는 배우는데 3개월이 걸리고 창은 3년, 검은 30년이나 걸린다는 얘기입니다. 그만큼 검은 배우기가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조선 정조 때 편찬된 국방무예서인 ‘무예도보통지’를 보면 이에 대해 정확히 얘기하고 있습니다.

 

“옛날에 병(兵)이라는 것은 반드시 칼을 말한다. … 칼의 양편에 날이 있는 것을 검이라 하고, 한쪽만 있는 것을 도라고 한다. 후세에 와서 도와 검이 서로 혼용되었다. 고대에는 검을 숭상하고 후세에는 도를 숭상하였으니, 이것은 무기로서의 예리하고 둔한 것에 관계된 것이 아니고 모두 습속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고대는 정확하게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삼국시대 이전으로 추정합니다. 즉 청동기나 철기문명이 갓 들어왔을 때에는 검이 보편적인 군사무기였고, 차츰 도가 검을 대신하여 군사의 주력무기가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이는 도가 검보다 더 날카로워서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다루기 쉽고 전투에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검은 양쪽에 날이 있기 때문에 밀집된 전투대형에선 잘못 다루다간 자신이나 옆의 동료가 다칠 수가 있습니다. 반대로 도는 날이 한쪽에만 있기 때문에 휘두르기도 쉽고 또한 검보다 튼튼합니다. 이때문에 집단 전투에서는 검보다 도가 차츰 주력무기를 차지하게 됩니다. 물론 무림에서는 검은 여전히 후대에까지 널리 애용되는 무기였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면, 의천검과 도룡도는 모든 무인들이 꿈꾸는 명검 명도를 상징합니다. 쇠를 자르고 바위를 자르는 천하명검 말입니다.

 

 

Nagamitsu.jpg

 * 명검에서 빠질 수 없는 일본도. 일본 국보인 13세기 나가미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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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삼봉은 무당의 도사다. 혼자서 도적 백여명을 죽였다    2009/11/13 16:50 추천 6    스크랩 1
http://blog.chosun.com/muye/4315013

장삼봉은 오늘도 무당산 천주봉에 올랐다.

 

달이 밝은 밤에는 홀로 검을 연마하였다. 달이 없는 밤에는 검 대신 권(拳)과 장(掌)을 단련하고 각법(脚法)을 익혔다. 그가 권법을 연마할 때엔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주먹과 발의 둔탁한 소리만이 무당산에 가득하였다. 바람이 부는 날에는 산봉우리를 오르며 호연지기를 길렀고, 비 오는 날에는 도가의 경전을 읽으며 마음을 맑게 하였다. 자정에는 어김없이 자리 깔고 앉아 참선에 몰두하며 견성(見性)하였다.

 

장삼봉.jpg

 

 

 

장삼봉이 무당산에서 무예를 연마하고 양생(養生)에 힘썼다는 것은 무림계에 오랜 세월 동안 구전되어 오고 있으며 많은 문학 작품 속에도 등장하는 얘기다. 그가 남긴 유일한 글로 알려진 『장삼봉 태극권론』의 주석을 보면 “이는 무당산 장삼봉 조사의 유론(遺論)으로, 천하 호걸들의 장수를 위하고자 함이니 단지 기예지말(技藝之末)만으로 삼지 말라”라고 적혀 있다.

 

하루는 장삼봉이 실내에서 경전(經典)을 읽으며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는데 뜰에서 까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여느 때의 까치 소리가 아니었다. 마치 다른 짐승과 다투듯이 요란하고 다급한 소리였다. 의아하게 여긴 그가 뜰에 내려와 나무를 올려다보니 한 마리 까치가 요란하게 날갯짓을 하고 있었고, 까지 둥지 근처에는 뱀 한 마리가 스멀스멀 다가가고 있었다. 까치가 공중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며 잽싸게 공격하는데 뱀은 긴 몸을 흔들흔들 하면서 가볍게 피하였다. 까치의 날카로운 발톱과 부리의 공격이 뱀의 유연한 방어 동작에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한참을 다투어도 까치는 적을 물리치지 못하고 끝내는 뱀이 까치의 알을 먹어 치우고 말았다.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이기다니...

 

까치와 뱀의 다툼을 유심히 지켜보던 장삼봉은 문득 깨달았다. 이것이야말로 소림에는 없던 무학이었다. 소림은 강함을 추구하는 무술이다. 하지만 외적인 강함을 단련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며, 강한 것과 강한 것이 부딪치면 반드시 어느 한쪽이 상하든지 둘 다 상한다. 그런데 부드러움은 얘기가 달라진다. 부드러움은 강함을 감싸 안을 수도 있고 내칠 수도 있다. 상대가 강하게 나올수록 부드러움은 이를 되받아 치기 쉽다. 그렇다. 바로 이것이다. 그는 소림 무술을 뛰어넘을 수 있는 해법을 드디어 얻었다.

 

장삼봉-이연걸.jpg

 * 장삼봉은 영화나 무협지에 숱하게 등장한다. 사진은 이연걸 주연의 '태극권'

원제는 '태극장삼봉'이다. 영화 속 주인공의 이름인 군보는 곧 장삼봉의 이름이다.

 

 

이리하여 기존의 소림 무술과는 다른 힘의 원리를 채택한 새로운 무술이 나타났다. 바로 내가권(內家拳)이다. 소림이 강맹한 무공인데 반해, 무당은 부드러움을 위주로 하는 무공이다. 이러한 소림 외가 무술과 무당 내가 무술의 차이점을 청나라의 조병인(曹秉仁)은 『영파부지(寧波府志)』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무술에는 두 가지 유파가 있는데 하나는 외가(外家)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內家)이다. 외가는 소림이 가장 유명한데, 적과 대적할 때 먼저 공격하여 제압함을 중시한다(先發制人). 활발하게 움직이며 뛰어오르고 높이 차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때문에 허점이 생겨 상대에게 기회를 준다. 반면에 내가권은 상대보다 늦게 발초하여 그를 제압한다(後發制人).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면 출수를 하지 않지만, 일단 출수를 하면 상대가 막을 수 없다. 이 때문에 내가 무술이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즉 장삼봉은 정(靜)이 주가 되는 내단 수련법과 동(動)이 주가 되는 소림 무술을 결합하여 밖으로는 근(筋), 골(骨), 피(皮), 안으로는 정(精), 기(氣), 신(神)을 단련하는 내가권의 뼈대를 세운 것이다. 내가권은 무당권(武當拳) 또는 무당 태극권이라고도 한다. 양가 태극권의 유명한 권사인 양징보(楊澄甫)는 “장삼봉이 창시한 무당 무술이 태극권의 원류”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양가 태극권의 원류인 진가구(陳家溝)의 진식 태극권도 무당파의 속가제자가 전한 것으로 본다. 이러한 무당파의 무술은 소림과 더불어 오랜 세월 동안 중국 무림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였다. 무림에서는 이를 일러 한마디로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북에는 소림이 있고, 남에는 무당이 있다.”

 

 

활인심방.jpg

 *퇴계 이황 선생의 '활인심방'의 도인체조들.

 

장삼봉이 과연 정말로 태극권의 시조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사료에 등장하는 장삼봉도 북송 때의 인물과 원나라 때의 인물, 그리고 명나라 시기의 장삼봉 등 동명이인이 셋이나 된다. 『명사(明史)』에 기록된 장삼봉의 모습은 “키가 7척으로, 생김새는 구형학배(龜形鶴背)에 귀가 크고 눈이 둥글다. 수염은 마치 창처럼 날카롭다. 때로는 한 번 잔뜩 먹고는 수개월 동안 먹지 아니하고 책만 본다. 하루에 천 리를 가며 말없이 정좌를 하면 10일을 꼬박 채운다”고 한다.

 

엄청난 과장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료에 등장하는 장삼봉들은 하나같이 모두 무당의 도사로서 내공법인 연단에 뛰어난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그가 머물며 도를 닦은 무당산은 오랫동안 중국 도교의 성지로 자리 잡아 왔으며 무(武)의 본향으로 사랑 받아 왔다. 명나라 영락제가 인부 30만 명을 동원해 12년간에 걸쳐 지은 무당산 8개 궁은 도교의 성지로 현재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어 있는데, 이중 특히 2003년에 화재로 소실된 우진궁은 장삼봉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그만큼 그가 남긴 발자취가 크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가 소림 무술과는 다른 새로운 무술을 창시했다는 점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조선 시대 정조 때 편찬된 무예 서적인 『무예도보통지』에서도 장삼봉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장삼봉은 무당(武當)의 단사(丹士)다. 즉 연단의 도사다. 혼자서 도적 백여 명을 죽였다. 그래서 드디어 절기로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장삼봉 이후 그의 무예는 명나라 때 영파부(寧波府)에 있는 사명(四明)이라는 산으로 전해졌는데 송계가 제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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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산에 검화가 피고, 장삼봉의 전설이 시작된다    2009/11/06 16:11 추천 9    스크랩 3
http://blog.chosun.com/muye/4300093
 

중국 호북성(湖北省) 단강구(丹江口) 남쪽에 위치한 무당태화산(武當太和山). 도교에서는 북극진무현천상제(北極眞武玄天上帝)가 있는 곳이라 하여 성지로 숭배하는 산으로 흔히들 무당산이라고 부른다. 비가 오는 날에는 산 전체에 푸른 기운이 만연하여 무당 선산(武當仙山)이라는 탄식이 절로 나오게 만드는 곳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곳 무당산에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인근 고을에 퍼졌다. 달이 밝은 밤이면 천주봉 정상에 머리 풀어헤친 귀신이 싸늘한 칼춤을 춘다는 것이다. 바람이 거세게 부는 날엔 귀신의 통곡 소리가 골짜기를 메운다고 했다. 귀신을 봤다는 사람이 하나 둘 늘고, 소문은 사람들의 입을 타면서 살이 붙고 뼈가 더해져 귀신은 구미호가 변한 것으로, 구름을 타고 다니며 처녀만을 잡아간다고도 했다.

 

 

무당산.jpg

 * 짙은 운해에 감싸인 무당산. 영화 '와호장룡'의 마지막 장면의 무대이기도 했다.

 

무당산에 예로부터 전해지는 전설 중에는 천주봉 정상에서 깊이를 알 수 없는 운해로 뛰어들면 사랑하는 이가 다시 살아난다는 얘기가 있다. 이에 사람들은 연인의 희생으로 되살아난 망자(亡者)가 옛사랑을 그리워하며 산을 떠나지 못하는 것이라고도 추측했다. 이 소문 때문에 무당산 천주봉 일대엔 사람의 발길이 끊어질 지경에 이르렀다.


이날도 천주봉에 보름달이 걸렸다. 과연 어김없이 백의인이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났는데 머리는 길게 풀어헤쳤고, 손에는 한 자루 장검을 쥐었다. 한 차례 심호흡을 한 뒤 가볍게 몸을 흔들더니만 이내 어지러이 검을 움직였다. 쉭쉭. 예각을 지닌 물체가 밤공기를 가르는 경쾌한 파열음이 천주봉에 가득하고, 검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달빛이 반사되어 아름다운 광채를 사방에 흩뿌렸다.


어느덧 검을 든 이는 보이지 않고 이따금 달빛에 반사된 검광(劍光)만이 보는 이의 눈을 어지럽힌다. 귀신의 조화인가. 사람도 검도 보이지 않고 단지 눈부신 섬광만이 봉우리를 에워싼다. 멀리서 보면 사람의 형체는 뚜렷이 보이지 않고 도깨비불인 양 검화(劍花)가 피고 지니 정말로 귀신의 소행으로 알 만하다.

 

무당태화무술원.jpg

* 무당산에서 무술을 익히고 있는 중국인들. 이들이 연마하는 게 장삼봉의 내가권 계열인지 현대 우슈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예를 아는 이가 유심히 들여다보면 백의인의 검은 공격과 방어의 이치에 한 치도 어긋남이 없음을 알 수 있다. 검법에 몰두하다 보면 절로 흥에 겨워 보법과 신법이 빨라지고 덩달아 검이 움직이는 폭이 커지고 궤적이 순간순간 변하면서 검의 잔상이 마치 꽃봉오리가 피는 듯 아름다운 광채를 발한다. 이를 검화(劍花)라 한다. 웬만큼 검을 연마해서는 한 송이도 제대로 피우기 어려운 게 검화다. 지금 천주봉엔 그 검화가 눈부시게 피어났다. 이는 분명 귀신이 아니라 사람, 그것도 절정 고수의 움직임이다.


세인들이 귀신이라고 착각한 백의인은 다름 아닌 장삼봉(張三峰)이다. 혼자서 적 100여 명을 죽였다는 믿기지 않는 전설의 주인공이자 내가권(內家拳)을 만든 인물이다. 내가권은 태극권의 원류로 알려져 있으며 소림 무술과 더불어 중국 무술을 양분하는 거대한 뿌리다. 무림에는 많은 문파들이 있고 그만큼 많은 수의 고수들이 있다. 이들은 일신에 고강한 무공을 지니고 저마다 빼어난 기예로 후인들의 존경과 감탄을 자아낸다.


무예사에 이름을 남긴 수많은 고수들 중에서 단연 첫손에 꼽히는 인물이 장삼봉이다. 그의 본명은 장군보(張君寶)였는데, 무당산에 오기 전 머물렀던 보계산(寶쬆山)의 봉우리가 세 개여서 장삼봉(張三峰)이라는 별호가 생겼다.

 

 

킬빌.jpg

 * 영화 '킬빌'에서 복수를 꿈꾸는 우마 서먼에게 무예를 가르치는 사부. 무당 내가권의 도사 차림의 복장이다.

 

 

장삼봉은 속세를 떠나 이곳 무당산에서 은둔 생활을 즐기며, 무술을 수련하고 도(道)를 닦는 중이었다. 귀신 소문이 떠돌았지만 이에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니 은근히 스스로 조장한 면도 있다. 수행 중에 사람들이 얼씬거리며 말을 걸거나 쳐다보는 것이 싫어서다. 그래서 나무꾼이나 약초 캐는 이가 오면 괜히 숨어서 장난치기도 했다. 외부인의 방해를 받지 않고 무예를 연마하며 수행에 몰두하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예로부터 깊은 산이나 인적 드문 곳에서 수행을 하는 이들 중에는 무술을 몸에 대한 공부의 한 방편으로 익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산짐승이나 도적에게서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무술이 필요했으며, 또한 수양을 위한 기초 체력을 다지는 데도 무술은 아주 요긴한 방편이 되었다. 무술이 아니더라도 몸에 대한 건강법으로 기공이나 도인법(導引法) 한두 가지쯤은 대개 할 줄 알고, 또한 해야만 했다.


소림사도 마찬가지다. 소림의 승려들이 꼭 무술을 익히기 위해서 출가를 한 것이 아니라 불법을 닦고 수행에 정진하기 위한 공부 중 하나로 무술을 한 것이다. 장삼봉은 어릴 적부터 무술에 재능이 있고, 또한 무술을 즐겨하는 성격이라 입산 후에도 무술 연마를 게을리 한 적이 없었다. 그는 원래 소림 제자였다. 그것도 보통 제자가 아니라 소림 무술의 정수를 터득한 몇 안 되는 제자였다.


그의 천부적인 자질은 천하 무술의 태두를 자처하는 소림에서도 두각을 보여, 소림 무술을 빛낼 차세대 주자 중 첫 번째로 꼽혔다. 하지만 그는 어찌된 영문인지 갑자기 소림 문중에서 나와 천하 명산을 찾아다니며 도(道)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항간에는 그가 죄를 지어 파문당했다느니,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어 스스로 하산하였다느니, 동문 사형들의 시기심에 모함을 받았다느니 온갖 억측이 난무했지만 정작 본인은 입을 열지 않았다. 지금 그는 평생이 걸리더라도 해결해야 할 숙제와 씨름 중이다. 다름 아닌 소림 무술을 능가하는 새로운 무술을 자신의 손으로 만드는 것이다. 소림 제자이자 소림권의 달인인 그가 왜 새로운 무술을 만들려고 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만약 소림에서 파문당했다면 그 분풀이를 하기 위함일 것이고, 소림 무술에 만족을 못하고 스스로 하산했다면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도전 의식의 발로일 것이다. 물론 단순히 천재의 심심풀이 여가 활용일 수도 있다.

아무튼 그는 새로운 무술, 지금껏 보지 못한 무술, 기존의 힘에 대한 개념을 뒤집는 뭔가를 만들려고 하였다.

그것이 뭔지는 자신도 몰랐다.

 

(장삼봉 하편을 기대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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