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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매화마을 일군 홍쌍리씨의 호미 같은 손    2013/03/19 18:34 추천 6    스크랩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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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은 내 밥이고, 산천초목은 내 반찬입니다. 산에 흐르는 물은 내 숭늉이며, 야생화는 내 심장입니다. 백운산 자락 쫓비산에서 모든 식물이 잘 자라고 못 자라는 것은 다 내 탓입니다. 그래서 농사는 내 작품인 것입니다.”

 

-3.매화마을전경.jpg

광양 매화마을 홍쌍리씨가 직접 손으로 일군 매화농장에 매화가 만발해 있다. 사진 광양시청

 

한국 최고의 매실농가이자 최고의 매화단지인 광양 ‘청매실농원’를 일군 홍쌍리씨(70). 그녀는 50년 가까이 손을 호미 삼아, 땀을 생명수 삼아 여자 혼자의 힘으로 돌산 16만5000㎡(5만여 평)을 매화천국으로 가꿨다. 그 긴 세월 생고생한 사람치고 의외로 얼굴이 고운 편이다. 자연에 동화되어서일까? 인생의 참맛을 알아서일까?

 

18.홍쌍리의 손.jpg

그녀는 이 손으로 전국 제일의 매화농원을 가꿨다. 억세지만 무엇보다 고귀한 손이다.

 

“농사는 즐거움으로 합니다. 농사를 돈으로 여기면 절대 안 됩니다. 돈으로 여기면 내가 망가집니다.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되고, 구부러진 허리로 걸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두 손으로 물을 마실 수 있다면 더 감사하지요.”

 

홍씨와 매화와의 운명적인 첫 만남은 196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밀양이 고향인 홍씨는 집안 어른이 부산 국제시장에서 건어물 장사를 했다. 부산 ‘가시나’가 집안 어른과 함께 장사를 하고 있을 때 광양에서 밤을 팔러온 김오천씨가 가게를 찾았다. 발랄하고 야무지게 일을 하는 모습이 그의 눈에 띄었다. 집안 어른끼리 혼담이 오가고 김오천씨 아들과 결혼을 하게 됐다.

 

-17.홍쌍리씨 박스.jpg

그렇게 고생한 사람치고는 얼굴은 고운 편이었다.

 

처음 광양 골짜기에 왔을 때, 사람은 없고 밤이 되면 더더욱 불빛조차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너무 외로웠다. 산비탈에 외롭게 핀 백합꽃을 보면서 ‘니가 내 신세랑 꼭 같구나. 내가 너를 보고 예쁘다고 느끼면 모든 사람도 다 마찬가지겠지. 꽃이 피면 나비가 오고 사람도 반드시 찾아올거야. 내가 꽃천국을 만들면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거야’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로움이 지금의 매화천국을 가꾸는 원동력이 됐다.


호미로 하루 종일 돌산을 멨다. 배가 고파 떨어진 매실을 주워 먹으며 허기를 채웠다. 당시엔 매실을 먹는 사람도 없었다. 맛이 괜찮았다. ‘인간 불도저가 돼 산을 개간하자. 매실로서 사람들의 뱃속을 씻어주자’는 각오가 생겼다. 그 길로 미쳤다.

 

-2.매화꽃.jpg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한 매화.

 

법정스님이 불일암에 계실 때 이곳을 우연히 찾았다. 법정 스님은 그녀에게 “보살아, 이곳을 도시 사람들의 마음 찌꺼기를 벗길 수 있는 꽃천지로 만들어봐라”고 했다. 용기백배 했다. 밤나무를 베고 매화나무 심는데 꼬박 4년 7개월 걸렸다. 매화나무만 심으니 땅이 허전했다. 초본식물로 야생화를 심기 시작했다. 복수초, 개불알꽃, 제비꽃, 구절초 등 60여종이 매화와 함께 향기를 흩날리며 쫓비산 자락을 품고 있다. 순전히 그녀의 땀의 결실이다.


그녀는 아름다운 매화를 보고 많은 사람들에게 자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축제를 열었다. 지금 매화축제의 시초이고, 광양시가 주최하기 2년 전의 일이다. 1997년 첫 해 예상외로 반응이 좋아 무려 7000여명이 찾았다. 입소문을 타고 이듬해는 3만 여명이 방문했다. 홍씨 혼자 감당하기 벅찼다. 광양시에 요청했다. 매화축제 주최기관이 돼 달라고. 그게 1999년이다. 올해 벌써 16회째를 맞는다. 지금은 축제기간 한 달 동안 무려 10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린다. 전국 명소가 된 것이다.

 

-16.매실장독.jpg

청매실농원에 들어서면 길게 늘어선 장독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광양으로 시집온 지 40여 년 만의 영광이지만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 38세 젊은 나이에 류마티즘이 걸려 허리가 구부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진통제 한 번 먹지 않고 매실만으로 버텼다. 2년 7개월 동안 매실 원액을 하루 두 병씩 마시니 통증이 씻은 듯 없어졌다. 자궁수술도 두 번이나 했다. 모두 매실로 해결했다. 그녀는 “매실은 체내 독소를 없애주는 천연 청소기”라고까지 평가했다.

 

홍쌍리.jpg

매실농원 홍쌍리씨가 그동안의 고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매화마을이 소문나자 이곳을 찾은 고두심씨는 “누가 이 여인을 여자라 했는가”라고 찬탄해 마지않았다고 한다. 고씨와 홍씨는 의자매를 맺은 사이다. 

그녀는 끝으로 한 마디 보탰다. “왜 멀리 천국을 찾아 갑니까? 내가 천국을 만들면 되지 않습니까? 난 이곳을 천국으로 조성하기 위해 이 한 몸 다 바쳐 최선을 다했습니다.”

정말 광양 청매실농원은 한 여인이 만든 천국이었다.

 

-홍쌍리씨의 손.jpg

 수십년 고생해온 그녀의 손이 지나간 세월을 말해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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