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살 후쿠시마 소녀 아베 유리카 양을 인터뷰했다.
얼굴이 어찌나 예쁜지. 얼마나 의젓한지.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지만 결례일 수도 있을 것 같아 참았다.
유리카는 1년 전 일어난 원전 사고로 방사능에 피폭됐다.
방사능 공포를 피해 정든 고향을 떠나야 했다.
일본 각지를 떠돌다 지금은 교토에 정착해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다.
아빠는 위험을 감수하고 후쿠시마에 남았다.
가족의 피난 생활에 필요한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유리카가 묻는다.
나는 언제 아빠와 함께 살 수 있을까요.
나는 언제쯤 고향으로 돌아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까요.
나는 몇살까지 살 수 있을까요.
며칠 전, 유리카를 만나러 일본으로 가는 사람이 있다기에 기사가 난 신문을 보내줬다.
동화작가가 꿈이라는 유리카를 위해 그림책 두권을 함께 보냈다.
유리카가 행복하길. 예쁜 미소를 잃지 않길 빌었다.
日 대지진·원전 사고 1년··· 11살 아베 양을 만나다
1년 전인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 지역에서 규모 9.0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후쿠시마에서는 지진 여파로 최악의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발생했고 주민 상당수가 방사능에 피폭됐다. 방사능 공포를 피해 고향을 떠나는 ‘원전 피해 이재민’도 생겨났다.
11살 아베 유리카(교토시립 미시노소학교 4학년)양도 원전 사고 직후 고향인 후쿠시마를 떠났다. 어머니 함께 6개월간 일본 곳곳을 떠돌며 피난 생활을 하다 지난해 8월 교토에 임시 정착해 살고 있다.
동일본 대지진 1주년을 이틀 앞둔 지난 9일, 어머니와 함께 한국을 찾은 아베 양을 만났다. 10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후쿠시마 대재앙 1주기 시민문화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 한국에 왔다고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아베 유리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수줍은 한국말로 인사를 건넨 아베 양이 지난 1년간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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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강 잃지 않고 씩씩하게 잘 자라줘서 고마워." 아베 사오리 씨(오른쪽)가 딸 유리카 양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kmin@chosun.com
◇평화롭던 후쿠시마가 ‘죽음의 땅’이 되다
“제가 태어난 후쿠시마 시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이었어요. 우리 집은 이층집이었죠. 낡고 오래됐지만 제 마음에 쏙 드는 집이었어요. 저는 후쿠시마시립 니와사카소학교에 다녔어요. 친구도 많았어요. 그중에서도 ‘칸노 유이’라는 친구와 가장 친했죠. 1학년 때부터 단짝이었는데 다정하고 친절하고 제가 무슨 말을 해도 다 들어주는 착한 친구였어요.”
아베 양 가족에게 재앙이 닥친 건 지난해 3월 11일. 아베 양은 어머니와 함께 쇼핑센터에서 장을 보던 중 강력한 지진을 느꼈다. “서 있을 수도 없을 정도의 강한 지진이 3분이나 계속됐어요. 너무 무서웠죠. 이러다 후쿠시마가 부서져 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날 대지진으로 도시 전체에 전기와 물이 끊겼다. 슈퍼는 물과 식량을 사재기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아베 양의 가족도 식량을 구하기 위해 몇 시간이고 줄을 서야 했다. 모든 물건이 순식간에 동났고 기름도 구할 수 없었다.
후쿠시마 원전 1호기가 폭발했다는 사실도 하루 지나서 전해들었다. 아베 양의 집은 사고가 난 원자력발전소로부터 60㎞ 떨어진 곳에 있었다. “라디오에서 원전이 폭발했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랐어요. 하지만 아빠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 큰일이 났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죠. 아빠는 제게 ‘집안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한다’고 당부하셨어요.”
아베 양의 어머니는 “우리가 방사능에 피폭됐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됐다”고 했다. “방사성 물질에 대기가 오염된 줄도 모르고 식량을 사러 밖을 돌아다녔던 거예요. 소름이 끼쳤죠. 그 이후로는 바깥에 안 나갔어요.”
◇“깨끗해진 후쿠시마에서 아빠, 친구들과 함께 살고 싶어”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반경 20㎞ 이내에 있는 주민들을 강제로 피난시켰다. 아베 양의 집은 강제 피난 구역에서 벗어나 있었지만 14일 원전 3호기가 폭발한 뒤 가족은 피난을 결심했다. 방사능 피폭 위험을 무릅쓰고 주유소에서 몇 시간씩 줄을 서서 차에 기름을 채운 뒤 16일 야마가타 시로 피난을 떠났다. 이틀 뒤 원전 사고 지역에서 더 멀리 떨어진 홋카이도로 이동했고 5월 10일에는 기타카타 시로 거처를 옮겼다. 7월 26일부터 한 달간은 오키나와에서 지냈고 8월 25일 교토 시로 이주해 지금까지 머무르고 있다.
원전 사고 이후 아베 양은 줄곧 아버지와 떨어져 지내야 했다. 딸과 아내의 피난 생활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아버지는 홀로 후쿠시마에 남아 일을 하고 있다. 인터뷰 내내 씩씩하던 아베 양이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자 눈시울을 붉혔다. “요즘은 한 달에 한 번씩 아빠를 만나고 있어요. 교토로 오시거든요. 전화통화는 자주 하지만 늘 보고 싶어요. 무엇보다 아빠의 건강이 가장 걱정돼요. 후쿠시마에 지내는 아빠가 방사능 때문에 병에 걸리진 않을까 두려워요. 하지만 아빠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은 없어요. 너무 마음이 아파서요.”
학교도 세 번이나 옮겨다녔다. “처음에는 후쿠시마의 친구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게 너무 슬프고 힘들었어요. 새 학교로 전학을 갈 때마다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이지매(따돌림)를 당하진 않을까?’ 걱정도 했고요. 그래도 다행히 친구들이 친절하게 대해줘서 금방 적응할 수 있었어요.”
대지진 1년. 이들의 몸은 후쿠시마를 떠났어도 마음만은 고향을 향해있었다. 아베 양의 어머니는 후쿠시마에 남은 이웃들 생각에 눈물을 쏟았다. “후쿠시마에서 나오고 싶어도 못 나오는 사람이 많아요. 명백한 위험 지역이지만 정부가 경제적 지원을 해주지 않기 때문이죠. 최근 후쿠시마 지역 아이들에게 코피와 재채기가 멈추지 않는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던데 걱정이에요. 우리만 안전한 곳에 나와있다는 미안함 때문에 연락도 못 합니다.”
아베 양은 “후쿠시마에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다시 아빠와 한집에서 살고 싶어요. 친구들을 만나 예전처럼 신사에 둘러앉아 도시락을 나눠 먹고 싶어요. 깨끗해진 후쿠시마에서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아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언제쯤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다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