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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종의 올바른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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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선 국회의원이며 변호사 공인회계사인 박찬종대표의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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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체제아래서 사법정의는 없다    2009/03/16 15:50 추천 0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saero2/3794174
 

“이용훈 체제아래서 사법정의는 없다”

-오늘은 사법부 치욕의 날이다-

박찬종


신영철대법관의 중앙지법원장 재임시절, 이른바 촛불사건 몰아치기 배당과 담당판사들에게 집시법위헌제청신청과 보석결정의 자제를 지시한 것은 명백한 재판권침해이다.

당시 신 원장은 그러한 지시를 하면서 “이는 대법원장의 생각”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이번파동에는 이용훈 대법원장이 관여하였고, 그가 바로 몸통이다.


사법부 독립은 권력으로부터,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어야 한다. 유권무죄, 유전무죄가 오늘의 사법부를 빗댄 일상용어가 된지 오래이다.


이 대법원장은 2005. 9. 취임이후 유전무죄풍토를 개탄하고 정치권력의 시녀 역활을 해온 부끄러운 사법부를 반성한다고 여러 차례 말해왔다.


유전무죄 풍토가 개선되었는가?


권력의 눈치 보기는 확실히 단절되었는가?


이번 파동의 핵심은 이 대법원장이 스스로의 보신을 위한 MB정권 눈치 보기에서 비롯되었다. 부끄러운 일이다.


신 대법관은 사임하라.


이 대법원장은 물러서야 한다.


이용훈씨는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에게 요구되는 자격요건에 미달되는 사람이다. 론스타, 삼성에버랜드사건 등과 관련되었고 탈세 등 떳떳하지 못한 일들이 가득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그런 사람이 그 자리를 지켰으니 이번의 파동이 일어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이 대법원장 체제아래서 사법정의 실현은 불가능하다.


물러서라.


그리고 나머지 대법관들이 결단하여 현재와 같은 관료적 법관인사시스템과 퇴폐적 전관예우풍토를 혁파하여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기 위한 국민적 제도개혁위를 구성하라.



2009.3.16


올바른사람들 공동대표 박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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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의원은 사이버모욕죄를 철회하라    2009/03/05 12:29 추천 0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saero2/3764845
 

나경원의원은 ‘사이버모욕죄’를 철회하라

-법률가의 양심은 두 개일 수 없다


박찬종


나 박찬종은 선배변호사로서 나의원에게 말하고자 한다.

나의원이 발의한 사이버모욕죄를 신설한 정보통신보호법개정안을 스스로 철회할 것을 요구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형법 311조의 모욕죄는 법정형이 징역 1년 이하이고, 반드시 고소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는 친고죄이다. 신설할 사이버모욕죄는 법정형이 징역 2년 이하이고 당사자의 고소 없이도 입건, 수사, 기소, 처벌이 가능하도록 비친고죄로 규정하고 있다. 형법상의 모욕죄와 사이버모욕죄는 보호해야할 법률상의 이익 즉, 모욕당한 사람을 보호한다는 점은 똑같다.


사이버모욕죄 신설의 명분은 모욕의 글은 대부분 익명이라서 피고소인(가해자)을 특정하기가 어려워 비친고죄로 규정하여 처벌하려는 것이다. 이는 허황된 논리다. 가해자가 분명하지 않아도 범죄사실 즉, 모욕당한 사실만 특정하여 형법상의 모욕죄로 고소하면 수사기관이 이를 밝히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욕행위를 처벌하려는 의사가 있으면 형법상의 모욕죄를 적용하여 고소절차를 밟으면 된다.


2. 비친고죄인 사이버모욕죄를 신설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하라.

모욕죄의 정형(定型)은 단순한 모욕의 글. 예컨대 사실을 적시하지 않은 ‘나쁜x, 개xx’와 같은 욕설이다. 그러나 사이버모욕죄가 시행되면 수사기관은 당사자의 고소 없이도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 정부여당소속인사들에 대한 단순한 모욕의 글 외에도 대안을 담은 비판의 글마저 입건, 수사, 기소가 가능해진다.


비판의 글도 비판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모욕감을 느낄 수밖에 없어 최고의 모욕행위는 ‘비판’이다. 정부여당 통제아래의 검찰, 경찰이 사이버상의 비판의 글을 마구잡이로 처벌하려고 하는 분위기를 상상해보라. 이게 법치라고 할 수 있겠는가?


3. 나아가 오프라인에서의 비판의 글도 사이버상에 옮겨 실으면 곧바로 처벌의 대상이 될 것이다. 결국 모든 비판의 글은 원천봉쇄 될 수밖에 없고 여기에 저항하는 용기 있는 사람들은 전과자의 누명을 쓰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인터넷의 비판공간은 블라인드 처리 되거나 폐쇄하게 되고 오프라인에서의 비판자의 입과 붓을 틀어막고 꺾게 될 것이다.


4. 사이버모욕죄가 있는 나라는 중국이 유일하다. 한국이 두 번째 국가의 영예(?)를 안으려 하는가?


나의원은 야당 할 날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여당만 계속할 수 없을 것이다.


언젠가는 나의원이 사이버모욕죄로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서 철퇴를 맞을 날이 올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는가? 나의원은 스스로 법률가의 양심으로 돌아가서 철회를 결단하라.


법률가의 양심은 하나이지 두 개 일수는 없다.


2009. 3.5

올바른사람들 공동대표 박찬종(미네르바변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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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추기경과의 인연2    2009/03/05 10:51 추천 0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saero2/3764423
 

김추기경과의 인연(2)

-YS, DJ의 대통령 후보 단일화 파동 (1)-

“뭣 하는 사람들이야? 내가 죽어야지!” - 노기 서린 김추기경

박찬종



1987년 10월 16일 오후 6시 청와대 입구에 위치한 로마교황청 대사관에서교황 요한 바오로2세 즉위 10주년 기념 리셉션이 개최돼,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 카톨릭 고위 성직자들과 몇몇 국회의원이 참석할 예정이었다. 30여명의 초청인사 가운데 나도 포함됐지만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제1야당인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와 김대중 고문이 12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분열하여 각기 대통령 후보로 나설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 상황에 대해 무거운 입을 차마 열기 어려워서였다.


6.29 선언 이후 대통령직선제 개헌이 현실화되자, 김추기경님은 여러 차례 나를 불러서, ‘후보단일화가 되지 않으면 이미 4월에 여당인 민정당 대통령후보로 확정된 노태우씨가 보란 듯이 당선돼, 박종철군의 억울한 죽음 등 무수한 청년학도들과 광주항쟁 피해자들의 희생이 물거품이 돼 버리고, 민주화를 향한 헌정사가 퇴행하는 결과를 빚을 것’을 우려하며, ‘YS, DJ의 대통령 후보 단일화는 반드시 이루어내야 할 야당의 과제’라고 촉구했었다.


김추기경님은 70년대는 물론 80년대에도 군사정권의 종식과 민주화를 염원하여 당시 제1야당을 성심성의껏 성원, 격려해 왔으므로 후보단일화에 대한 집념은 누구보다도 확고한 분이었다.

 

당시 제1야당을 위해 온 힘을 실은 김추기경님의 기도 탓인지 9월 초순에는 통일민주당의 소장국회의원 12명이 후보단일화 촉구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통일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으로서 이른바 당 3역의 한사람이었기 때문에 소장파로 지칭될 수 없었으나, 이미 서명한 12명 가운데 한사람이었던 조순형 의원(현 국회의원. 나의 대학 4년 선배)이 나에게 서명을 제의했다.


“조 선배, 취지는 찬성이오만 그래도 내가 정책위 의장인데, 총재(YS)께는 이해를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와 조의원은 85년 9월의 ‘고대앞시위사건’으로 체포, 기소되어 30여회 1심재판을 받는 동안 혈맹의 동지애를 느끼던 사이였다.


그가 벌컥 화를 내면서 “이봐, 허락할 것 같아?” 라고 하기에, 나는 “그렇지, 자기를 치겠다는데 허락 않겠지! 좋소, 사인하지요.”하고는 서로 크게 웃었다.


해서, 당직 서열상 서명파 수장이 되고, 이후 나의 정치행로는 예측불허의 험로를 걷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크게 머뭇거리지 않고 서명을 한 것은 그 순간 김추기경님 얼굴이 떠올라서였다. YS, DJ의 오랜 정치적 숙적관계로 미루어 누구 눈에도 단일화는 어렵다고 생각되던 때였기에, 김추기경님의 단일화 요구 역시 그만큼 절박한 것이었고, 그런 심경을 받아들인 내가 소장파의 단일화 서명에 참여하는 것은 예정된 길이기도 했다. 


13명의 서명파 의원들은 김현규 원내총무에게 9월 20일 국회본관 146호 소강당에서 의원총회를 열게 하고 YS, DJ(두 사람은 당시 국회의원 신분이 아니었음)를 모셔 놓고 문을 잠그고, 단일화 끝장 토론을 벌였다. 의원총회장에 마지못해 출석한 두 사람은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지 않은 채 서명파 의원들의 파상 공세를 받고 있었다.


거의 세 시간이 경과했을 즈음 느닷없이 DJ가 발언대에 나서서 “방금 함석헌 선생이 임종이 가까워 왔다는 통지를 받았다. 그분이 입원하고 있는 을지병원으로 가 보아야겠다.”고 말한 후 회의장을 성큼성큼 걸어서 나가 버렸다.


그 직후 서명파 의원회합에서 “서울 교외 독립가옥에 YS, DJ를 모셔다 놓고 단일화 항복을 받자!”는 의견들이 쏟아졌으나, 일말의 기대를 여론에 걸 수밖에 없어, 결론 없는 끝장토론 같은 모양새였다.  


이런 상황에서 교황청 대사관 리셉션이 열린 것이다.


나는 약간 긴장한 가운데 오후 6시 조금 못 미쳐 대사관에 당도했다. 그 리셉션 장은 넓지 않은 공간으로 30여명이 빼곡히 들어찼다. 우선 오렌지주스 잔을 들고 목을 축이고 있자니 뒤이어 김추기경님이 도착했고, 여지없이 나와 눈이 마주쳤다.


김추기경님이 손짓으로 나를 오라 하기에 창가로 갔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서 말없이 깊이 목례만 했다.


“어떻게 돼 가나? 단일화 결국 안 되는 거지?”

모든 것을 예감한 김추기경님의 말에 나는 허를 찔린 듯 일순 망연자실했다. 그리고 간신히 입을 뗐다.

“어려울 것 같습니다만...”

말끝을 맺지 못했다. 창밖으로 눈길을 주던 김추기경님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뭣 하는 사람들이야? 내가 죽어야지!”

오른 손바닥으로 왼쪽 가슴을 여러 차례 꽤 세차게 쳤다. 그의 눈에서 엷은 노기가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오랜 세월 김추기경님을 지켜보았지만, 그렇게 노기 서린 모습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계속)


2009.3.5


박찬종(아우구스띠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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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한나라당 의원들께    2009/03/03 12:19 추천 0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saero2/3757758
 

한나라당 의원들께


박찬종


국회의원 자율권(헌법 46조) 회복을 위해서 순절(殉節)하는 의원이 한 명이라도 나와야 한다


이른바 ‘미디어법’파동은 폭력, 난장판의 전쟁모드가 연출된 끝에 임시 봉합되었다. 여, 야당의 어정쩡한 담합은 100일 뒤에 또 어떤 모습의 입법전쟁으로 재연될 지 예측할 수 없다.

이번파동의 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은 정당지도부의 명령에 따라 본회의장 안팎에서 일사분란하게 집합, 산개, 배치, 몸싸움의 전사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누구는 이런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두고 ‘똘마니‘들이라고 지칭했다.


일단 미디어법의 예비전은 끝났다.

어떤 신문은 172석의 여당인 한나라당의 전쟁성과에 대해서 ‘박희태 대표의 관록, 박근혜 의원의 어시스트, 김의장의 고도전략’이 맞아 떨어진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소수 기득권 지도자들의 힘에 의해서 사태가 전개, 종료되었음을 예시한 것이다.


통탄할 일은 이번에도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한나라당의 울타리 안에 갇힌 전사,  똘마니로 전락한 모습을 너무도 확연하게 보여줬다.


87.6.29. 선언이후 절차적 형식적 민주화는 한 단계 이루어졌으나, 민주화의 내실은 갈수록 퇴행하고 있다. 4회의 대통령선거, 5회의 국회의원선거, 5회의 각급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진성당원이 사실상 전무한 소수기득권자들이 지배하는 부패정당, 반국민적 의원후보공천, 의원의 자율권이 훼손 능멸된 난장판 국회로 민주화는 뒷걸음질 쳤다. 이것은 국회, 국회의원, 정당이 아니다.

이대로 계속 갈 수 없다. 이제 이 여의도식 정치를 폭파하고 새로운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 이번 ‘미디어법’ 입법전쟁에서 그 교훈을 얻어야 한다. 172명의 여당인 한나라당 국회의원 가운데서 단 한명이라도 여의도폭파에 순절할 사람이 나와야 한다.

목숨을 바치라는 것이 아니다. 기껏 그 알량한 국회의원직을 버리고 나서라는 것이다.


나는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요구한다.

한나라당이 다수당, 여당이기 때문이다.


1. 헌법 46조의 국익우선 양심직무의 국회의원 자율권은 누구도 침해해서는 아니 되고, 국회의원이라면 ‘자율권을 짓밟는 자’ 들에게 당당히 맞서야 한다. 당의 기득권 실세들에게 줄을 서서 공천을 받아 당선 되었더라도 이 엄중한 시기에 스스로 자율권 수호의 전사가 되어야 한다.


2. 자율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썩고 병든 국회의원공천시스템을 혁파해야 한다. 당연히 상향식 공천으로 전환하여 밀실, 야합, 부패공천을 깨부숴야 한다.


3. 100일 동안 결론이 유보된 이른바 ‘미디어법’에 대해서 의원 개개인의 분명한 소신을 미리 밝혀라. 그럴 수 있어야 한다. 만일 100일 뒤에도 당 지도부의 명령에 순종하는 똘마니 짓을 하게 된다면 이번 파동을 능가하는 심각한 반국민적 입법전쟁이 재연될 것이다.


2009.3.3


올바른사람들 공동대표 박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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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추기경의 회상하며    2009/02/21 18:37 추천 0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saero2/3731176
 

김수환 추기경을 회상하며(서문)


박찬종


1999년 10월 어느 날 내가 방문연구원으로 있던 일본 도쿄의 게이오대 교수연구동 휴게실에서 나는 서울에서 보내 온 국내 신문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인사동정란에 김수환 추기경이 ‘강론집‘을 출판했다는 소개와 함께 서문 일부가 실려 있었다.


“나는 가난하고 소외되고 약한 자들을 위한 삶을 살다 간 예수를 닮아 가야 한다고 결심하고 성직자의 길에 들어섰으나, 수십 년이 흐르는 사이 초심과는 달리 어느 사이 귀족이 되어 있는 나를 발견하고 부끄러워 한다”는 기사였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서울, 명동, 추기경 집무실, 김추기경과 사적으로 맺은 여러 인연들을 떠올렸고, 이래서 ‘김수환 추기경’이라는 울림이 뇌리를 스쳤다. 


해외 시각으로 한국경제를 살피고자 게이오대학에서 1년 2개월간 한일교류기금 장학금에 기대어 2권을 출간했던 그 시절, 추기경과 교분을 나누었던 추억들이 그의 책자 서문 위로 아득히 흘러갔다.  


나는 추기경이 다녔던 상지대학(上智大學), ‘롯본기’에 있는 프란치스코 수도회를 지날 때 추기경을 떠올리며 일요일마다 외국인을 위한 미사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연 등을 편지지에 옮겼다.


“저는 평소 성경 읽기와 기도를 게을리 하는 불성실한 신자임을 스스로 인식하고, 내 탓이라는 자각 속에서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카톨릭 신앙에 대한 확신이 부족합니다. 그런데, 추기경님께서 새로 출판하신 강론집 서문에서 예수의 삶을 닮아가지 못한 스스로를 자책하시고 어느 사이 귀족이 된 자신을 부끄러워 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제가 그 미미한 신앙심마저 포기할 수 없게 하시는 어떤 마력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인편으로 보낸 내 편지에 김추기경은 손수 서명한 강론집을 보내 왔다.


“따뜻한 글을 보내줘서 고맙다”는 취지의 회신이었다.


김추기경은 거짓을 품지 않고 사시려고 노력하신 분임을, 또 자신의 고뇌를 스스럼없이 토로하는 분임을 가까이서 그렇게 지켜본 인연일까?


빈소가 차려진 첫날 새벽, 나는 걷잡을 수 없는 심경으로 명동성당 길을 어떻게 걸었는지도 몰랐다. ‘이 시대 그 누가 이 분만큼 정직하고 진솔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며 말하고 살다 갈 수 있을까?’ 영구 앞에 서는 순간, 그를 여읜 한 시대가 억제할 수 없는 서글픔으로 전신을 엄습했다.


이제 김추기경과의 일화를 우리 가슴에 아로새기는 일은 내게 남겨졌다. 우리공동체의 화합, 하나 될 그 날은 김추기경을 위해 드리는 기도이기도 하다. 


내가 김추기경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려 펜을 드는 것은 다음 세대를 위함이다.


2009.2.21


박찬종(아우구스띠노)





김추기경과의 인연-학원안정법 파동(1)


“학원안정법은 대학을 병영(兵營)화하는 것입니다. 정부는 입법을 포기하시오.”-김수환 추기경 1986년 8월


전두환 정권은 1986년 9월, 대학교 2학기 개강을 앞두고 학내 반정부 투쟁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유례없는 초강경 대책을 담은 학원안정법 제정을 서둘렀다. 학원 내에 경찰은 물론 군대까지도 투입하여 대통령 직선제 개헌, 정권퇴진 등 반정부 활동을 일체 봉쇄하려는 내용들이었다. 당시 야당인 신민당(총재 이민우, 고문 김영삼, 김대중)은 입법반대 입장을 대변인 성명으로 발표하였다.


8월 13일 신민당은 정무회의에서 학원안정법 반대 투쟁을 결의하였다. 회의 직후 당시 정무위원 겸 인권옹호위원장이었던 나 박찬종은 이민우 총재에게 김수환 추기경과 회동할 시 김추기경이 분명히 학원안정법을 반대할 것이 예견되므로 두 사람이 공동기자회견 형식으로 동법 제정 포기를 정부에 요구하는 것이 좀 더 효과적인 방법이 되지 않겠냐고 건의하였다. 이총재는 나의 건의를 받아들여 나에게 “곧바로 김추기경에게 달려가서 회동일시를 조정해 오라”고 지시하였다.


그 길로 명동성당 추기경 집무실로 달려가니, 오전 11시가 채 안 됐다. 나는 추기경을 뵙고 학원안정법을 제정하려는 정부 의도와 입법취지를 설명하고 신민당은 반대를 분명히 하고 있는데, 추기경께서도 입법을 반대하신다면 이총재와 공동으로 입장을 표명해 달라는 방문 목적을 말씀드렸다.


추기경께서는 비서신부를 불러 그날과 다음날 일정을 묻고는 “내일 오후라야 시간이 나는데”라고 하기에 이 일은 한 시가 급하니 서둘러 달라고 요청을 하였다. 추기경께서는 “그래, 그럼 서둘러야지”라고 하시며 그날 오후 3시로 예약돼 있던 면담일정을 취소하고 그 시간에 이총재를 모시고 오라고 조치했다. 그날 오후 3시 추기경 집무실에서 이총재와 김추기경의 면담이 이루어지고 나는 배석자로 참석했다. 두 사람은 학원안정법이 제정되면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병영국가로 지탄받게 되고, 민주화 일정은 더욱 암담해진다는 데 의견의 완전한 일치를 보았다.


한 시간 면담 가운데 추기경과 이총재는 군사정권의 횡포와 포악성에 개탄을 금치 못했으며, 민주화를 위한 국민적 열망을 어떻게 성취시켜 갈 것인지에 대해서 폭넓은 의견을 교환했다. 면담 후 두 사람은 주교관 현관에서 대기하던 사진기자들에게 포즈를 취해 주고 면담 요지는 별도로 내가 브리핑해 주었다. 정부가 제정하려던 학원안정법에 대해 ‘대학 병영화’를 지적한 것은 김추기경이 처음이었으며, 정부 의도를 병영화라는 말로 압축, 비판함으로써 정부가 더 이상 입법을 추진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틀 후, 정부는 공식적으로 학원안정법 제정 포기를  표명하였다. 김추기경은 학원안정법 관련 야당 투쟁을 결정적으로 지지하였고, 그 추기경의 위광은 폭주하던 전두환 정권의 예봉을 꺾는 계기가 되었다.


학원안정법 파동은 김추기경이 나서서 가라앉힌 것이다. 나는 이 면담 사건으로 전두환 정권의 미움을 단단히 사게 되었다. 이총재와 김추기경의 면담을 카톨릭신자인 내가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성사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나는 조순형 의원 등과 그 전 해인 85년 9월 이른바 고대 앞 시위사건의 집시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재판이 진행 중이었고 변호사 업무도 정지된 상태였다. 안기부가 노골적으로 그 집시법위반 사건에 개입하여 법원을 압박해서 이 면담 사건 이후 재판 속도가 빨라졌다.


2009.2.21


박찬종(아우구스띠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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