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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종의 올바른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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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성공벤처    블로그형  게시판형  리스트형
때론 자동차 수리도 예술이 된다-사키야마 사장    2009/01/07 16:32 추천 0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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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친놈 소리 안 듣고는 벤처 못한다


․ 때론 자동차 수리도 예술이 된다  -  사키야마 사장

고급 외제승용차를 전문으로 수리하는 <사키야마 자동차 서비스>의 사키야마 사장


학력 중졸, 나이는 55세, 사장을 포함해서 직원은 2명, 자동차 대여석 대가 들어가면 꼭 들어차는 40평 수리공장이 전부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공장은 일본에서 가장 땅값이 비싸다는 동경의 최고 부자동네인 미나토구에 세워져 있다. 그 이유는 이렇다. “부잣집 어르신들, 차가 고장 나면 언제든지 오십시오. 제가 10분 거리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마치 청진기를 들이대고 환자를 진찰하는 것과 같은 예술가 수리공 시키야마 사장. 혼다를 비롯한 일본 유수 자동차회사의 임원들이 그의 손끝에서 꼼짝 못한다.


열심히 놀다보니 성공이 따라왔다!


사키야마 사장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자동차 수리공이다. 그는 항상 검은 기름때가 묻은 얼굴과 작업복 차림에, 손에는 늘 커다란 해머나 스패너를 들고 있다. 중학교를 졸업한 열여섯 살 때부터 지금까지 손에서 공구가 떠난 적이 한 번도 없다.

“왜 자동차 수리를 택하셨습니까?”

질문을 던지자 사키야마는 말한다.


“노는 것이 너무 좋아서 놀기 위해 했습니다!”


그에게는 자동차 수리가 오락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사키야마 사장이 스물한 살 때였다.

자동차 수리센터의 사장님이 그를 부르더니 뜬금없이 물었다.

“너 나중에 뭐 할래?”

쭈뼛거리는 사키야마에게 사장님이 호통을 쳤다.


“네놈은 독립해서 직접 수리를 하지 않으면 못 배길 인간이야! 오늘부터 네가 현장감독을 맡아!”


세상으로 나가기엔 열여섯도 너무 늦다


사키야마의 부친은 그가 네 살 때 세상을 떴다. 그 후 어머니는 쌀장사를 하며 아들 둘을 키웠다. 커다란 쌀부대를 짊어지고 힘들게 일하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사키야마는 빨리 세상 밖으로 나가 돈을 벌어 어머니를 돕고 싶었다고 한다. 뭔가 하고 싶어서 한창 좀이 쑤실 때 어머니가 말씀하였다.


“너는 재주가 그리 많지 않으니 네가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는 일을 하고 살아라.”

‘내가 좋아하는 일이 뭘까?’


사키야마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당시 그는 미국에 관심이 많았다. 어릴 적 몸집이 커다란 미군병사들이 지프를 타고 지날 때마다 아이들은 “기브 미 초콜릿!” 하며 꽁무니를 쫓아 달렸다. 초콜릿을 받아먹을 때마다 사키야마는 일본도 미국처럼 강한 나라가 되기를 열망했다고 한다.

‘미국으로 갈까?’

불과 열여섯의 소년은 대담한 계획을 세웠다.

‘화물선을 몰래 타고 미국으로 가자!’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엄마와 동생이 발목을 잡았다. 그는 의리와 가족의 정을 소중히 여기는 지바현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홀로 고생하시는 어머님을 두고 갈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일본에서 할 수 있는, 미국과 가장 가까운 일은 무엇일까. 사키야마는 고민을 했다. 그때 잭 다나카 1세라는 재미교포가 외국인을 상대로 ‘잭스거라지’라는 자동차 수리공장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는 곧바로 찾아가 뭐든지 시켜달라는 심정으로 스패너를 잡았다.

바로 이 회사에서 사키야마는 신나게, 재미있게 12년간을 놀았다. 그리고 스물한 살 때 다나카 사장의 전폭적인 신임 하에 현장감독을 맡았다. 그때 기분이 상한 선배 수리공들은 사표를 던지고 나갔다고 한다. 그래도 사장의 신임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스물네 살이 됐을 때, 다나카 사장이 갑작스레 사망했다. 다나카의 부인은 남편의 정신을 물려받은 사키야마가 공장을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사키야마는 스물네 살에 잭스거라지의 경영자가 되었다. 수리공으로서의 기술력과 경영자로서의 매니지먼트를 골고루 배우게 된 것이다.

스물여덟 살이 되었을 때 사키야마는 12년간의 현장 경험을 발판으로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공장이 없어서 수리공구를 가득 실은 자동차를 끌고 다니면서 손님이 오라는 데로 달려갔다.


“24시간 서비스를 해줍니다. 언제 어디서나!”


이것이 그의 표어였다. 정말 그는 24시간, 언제 어디서나, 재미있게 일했다.

그로부터 25년이 흘렀다. 사키야마는 지금 동경 최고의 부자동네라는 미나토구에 40평의 공장을 갖고 있다. 이 동네에는 폭스바겐, 크라이슬러, BMW 등을 몰고 다니는 사키야마또래의 중년 신사들이 유난히 많다. 이들은 차에 조그만 생채기라도 나면 벌벌 떨며 1초도 참지 못하고 사키야마의 공장으로 달려오는, 사키야마의 포로들이다. 그들에겐 어마어마해 보이는 승용차를 마치 아이 다루듯이 주물러대는 사키야마가 위대해 보인다.

그 경의의 표현으로 그들은 사키야마를 자동차 홈닥터라고 부른다.


외제차 수리는 나밖에 없다


동경의 그 많은 자동차 수리센터 중에서 ‘사키야마자동차 서비스’가 단연 돋보이는 이유가 있다. 우선 그의 공장은 일본에서 제일 땅값이 비싸다는 미나토구에 있다. 이 동네에 자주 오지 않는 사람들은 거리를 지나치다가 “아니, 왜 자동차 수리센터가 여기에 있지?” 하며 의아해 한다. 그만큼 사키야마자동차 서비스의 위치는 파격적이다.


덕분에 사키야마는 고객의 요구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었다. 차가 고장 나면 단 5분이라도 운전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되도록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수리받기를 원한다. 사키야마의 공장은 아침 출근길에 잠깐 들를 수 있을 정도로 가깝고 교통도 편하다. 미나토구의 주민들은 “사키야마 덕분에 자동차 고장 공포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고 말한다.


또 한 가지, 공장이 중심가에 있는 덕분에 규모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고장 난 자동차는 빠르면 십 분, 늦어도 반나절이면 재빨리 수리할 수 있고 곧바로 또 다른 고장 난 차가 들어온다. 공장 안에는 늘 5,6대의 자동차가 있지만 고치고 내보내며 쉴 새 없이 바뀐다. 덕분에 직원이 사장을 포함해 2명으로 해결됐다. 만약 시외로 나갔다면 인원을 더 늘리고 자동차도 더 많이 받아야 수지가 맞았을 것이다.


5년 전 그가 미나토구에 공장 부지를 마련하느라 쓴 돈은 2억5천만 엔이란 거액이었다. 다행히 거품경제가 걷힌 후라 땅값이 내려가 그나마 싸게 산 것이다.

“땅값은 다 뽑으셨습니까?”

이렇게 묻자 사키야마는 웃으며, “아직 노력중입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만한 투자 가치가 충분했습니다. “

사키야마의 말이다. 하지만 사키야마의 성공 비결이 단순한 공장의 위치 덕분일까. 사키야마는 일본에서 외제 자동차를 두려움 없이 수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술자 중의 한 사람이다.

벤츠나 크라이슬러, BMW 등 어느새 일본도 외제차의 천국이 되었다. 특히 미나토구는 고급 외제자동차의 본산으로 외제차 보유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하지만 이 많은 외제차들이 외상을 입거나 고장이 나면 갈 곳이 없다. 제조사의 수리센터는 대부분 외진 곳에 떨어져 있으며, 서비스를 받는다 해도 고객의 까다로운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볼보 85년형을 모는 한 고객이 땀을 뻘뻘 흘리며 사키야마를 찾아왔었다. 엔진에 이상이 온 것 같이 서비스센터에 갔었지만 이미 구형이라 고치기 힘들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자동차를 자기 몸보다 더 아낀다는 그 고객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사키야마는 능숙하게 보닛을 열고 엔진을 만지기 시작했다. 한 시간 뒤 그 고객은 엔진을 부르릉거리며 액셀러레이터를 신나게 밟으며 떠났다고 한다.


이런 대단한 솜씨 때문에 사키야마에게는 팬이 많다. 유명 화가, 배우, 기업인들, 자동차 연구가들, 대학교수 등이 선물한 글과 그림들로 공장 벽을 보대할 정도다. 덕분에 삭막하기만 한 자동차 수리공장이 마치 전위예술가의 전시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키야마의 고객들은 그에게 “당신이라면 마누라도 맡길 수 있겠어”라며 농담을 한다. 다른 수리센터들은 대부분 기계적 결함만을 고쳐주는 것으로 끝내지만 사키야마는 아예 자동차와 대화를 나눈다. 필요하다면 청진기까지 꺼내서 오감을 활짝 열어놓고 자동차를 바라본다. 무슨 불안이 있는지, 어디가 아픈 건지 진찰하고 치료하는 의사 같다. 고장 난 곳뿐만 아니라 앞으로 고장 날 가능성이 있는 곳인지 미리 점검해 준다. 그래서 사키야마에겐 ‘자동차의 홈닥터’라는 별명이 붙었다.


“고장 나서 고치는 것만이 수리가 아니다. 고장 나지 않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수리다.”


바로 이것이 수리공 사키야마의 철학이다.


“자동차를 더 이상 운송수단으로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이제 자동차는 패션이며 문화입니다. 좋은 그림이나 음악을 받아들이듯이 예의를 갖춰 존중해야 합니다.”


그는 일본도 이제 자동차의 성능만 추구하는 풍토에서 벗어나 자동차에 문화적 향기를 쏟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자동차 공장은 6시 이후로는 자동차를 좋아하는 애호가들의 모임터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모여든 다양한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자동차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밥도 먹고 술도 마시는 사교의 장이 되었다. 이른바 자동차 애호가들의 살롱 같은 장소가 된 것이다. 가끔 의기투합이 되면 김밥을 싸들고 소풍도 간다.


나는 동경도지사보다 행복한 사나이!


사키야마는 말한다.


“내가 먹고살기 위해 마지못해 자동차 수리공이 되었다면 지금의 성공이 있을 수 있었을까요?”


그렇게 재미없게 일했다면 그는 지금쯤 대기업의 자동차 수리공장에서 감독 눈을 피해 툴툴거리며 술이나 마시는 한심한 인간이 됐을 것이라고 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덕분에 먹고사는 것을 걱정할 필요 없을 정도로 돈까지 벌고, 사키야마는 지금 자신이 무척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


“행복으로 따지자면 동경도지사보다 행복할 겁니다. 동경도민이 총 1천만이지만 그 사람들이 모두 도지사를 사랑할까요? 나는 일본 적국에 있는 7천만 자동차 운전자들의 사랑을 받습니다. 얼마나 행복한가요!”


학력에 상관없이 좋아하는 일 한 가지에만 파고들어 성공의 길을 걸은 사키야마. 그는 같은 인생철학을 아들에게도 고스란히 물려주었다.

올해 스물다섯이 된 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경의 어느 클럽에서 DJ일을 하고 있다. 공부하길 싫어하고 음악과 춤, 놀기만을 좋아하는 아들에게는 최고의 선택이 아니었겠느냐고 사키야마는 말한다.


“어쩌면 우리 아들이 동경 최고의 DJ가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나 좋아서 하는 일. 그 곳에 길이 있다. 사키야마의 당당한 자기 확신에 부러움마저 느껴진다. 우리는 과연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하고 싶은 일이 무언지 아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 것인가.


박찬종이 찾아낸 일본도 놀란 일본의 성공 벤처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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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종이 찾아낸 일본도 놀란 일본의 성공벤처이야기    2008/12/05 11:53 추천 0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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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종이 찾아낸 일본도 놀란 일본의 성공 벤처이야기 1


서문 


나는 1998년 11월부터 일본 동경에 있는 게이오대학 상학부 방문연구원으로 한,일 경제관계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때마침 한, 일 분화교류기금의 장학금까지 받고 ‘21세기 아시아 경제 질서’라는 주제의 논문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 연구의 단초로서 일본 경제의 면면을 들여다보게 되었고, 어떤 이들이 일본 경제의 대들보 역할을 해내고 있는가에 관심이 모아졌습니다. 그래서 기초공업기술 분야에서부터 유통, 하이테크 분야까지 그 전범이 될 만한 기업들을 선정해서 지난여름 그 기업들을 이끄는 창업자나 경영책임자들을 직접 만나보고 듣고 그 현장을 확인했습니다.


이 책은 일본 경제의 기틀을 이루고 있는 주요 벤처기업들을 이끌어가는 경영인들의 성공 사례를 중심으로 해서 저술된 것입니다. 책에 소개되는 30여 벤처기업들의 성공담은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각 부문에서 ‘온리원(only one)', 또는 넘버원(number one)'의 기업으로까지 성장시켰고, 지금은 일본열도 뿐 아니라 세계의 온리원, 넘버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예의 그렇듯 그들에게도 고통과 고난의 세월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패와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불굴의 도전정신과 주위의 질시나 훼방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자기 일에 대한 신념과 현 경제상황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대처해내는 실천력도 갖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내가 만난 그들은 인간 승리자이면서 기능 완성자로 보였습니다.


일본의 경제는 90년대 들어 침체국면에 빠져있다고 합니다. 80년대 버블경제가 깨지고 팍스아메리카 경제에 덜미를 잡힌 이래 일본의 경제 상황은 매우 험악해졌습니다. 그러한 어려운 상황에도 꿋꿋이 세계의 유일한 기업으로 성장시킨 그들 경영 노하우는 다분히 놀라운 것이고 우리에게도 많은 배울 바가 있다고 봅니다.

일본에는 ‘한국형재벌’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른바 대규모 차입경영, 선단경영이란 말조차 없습니다. 물론 매출액 기준으로 특정업종 대형기업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엄연하게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어 있고 경영진도 주주의 이익에 봉사하고 대표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이들 중소기업들은 이런 몇몇 대형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자기 분야에서 일본을 대표하며 상호 협력하는 공생 관계에 있습니다. 이는 외형의 크고 작음이 반드시 기업의 신용과 명성을 좌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나는 일본의 대표적인 이들 성공 벤처기업의 대표들을 만나면서 몇 가지 중요한 것들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첫째, ‘벤처란 무엇인가?’라는 겁니다. 나는 언젠가 게이오 대학에 유학 온 한국인 학생에게 ‘벤처기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자본은 없지만 아이디어로 도전하는 모험적인 사업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닐 듯싶습니다. 기실 나 또한 이 책을 쓰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벤처는 머리 좋은 컴퓨터 전문가들이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사업에 도전하는 것, 아이디어 10개를 굴려서 그중에 하나만 성공해도 일확천금이 굴러들어온다는 것,  그래서 벤처사업가는 고학력의 지식집약과 첨단의 아이디어로 무장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일본의 여러 벤처기업의 성공 사례를 접하면서 생각을 다소 수정했습니다. 벤처는 컴퓨터 등의 첨단기술에만 있지 않고 우리 실생활의 주변에서 언제든지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입니다. 그들은 주어진 자기 일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곧 성공의 바탕이 된 것입니다.  무엇보다 지기 일을 열정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은 다름 아닌 벤처정신이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로 나는 ‘진정한 성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해 보았습니다. 연 매출액 100억 엔이 넘는 우량기업의 사장이 기름때 절은 작업복차림에 변변한 사장실도 없이 일하고 있다는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요? 하지만 성공한 그들 대부분은 그렇게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회사의 발전과 성장을 ‘나’가 아닌 ‘회사’ 자체에 두고 모든 행동과 사고를 유기적으로 합니다. 곧 ‘회사의 성장’이 ‘나의 성장’ 이고 ‘나의 발전’ 이 곧 ‘회사의 발전’ 이라는 것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회사가 정직하고 신뢰받는 기업으로 성장하고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존재로 발전하는 것을 제1목표로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일본의 기업인들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금 일본은 10년이 넘어가는 경기침체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실으에 있다기보다는 그런 경제불황을 도리어 경제발전의 도약대로 인식ㅎ고 있습니다. 성공 일로를 달리면서도 제로(zero)를 염두에 두는 ‘초발심(初發心)을 잃지 않으면서 세계 제일의 기업들로 거듭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공에 대한 자신감과 실패와 절망을 이겨내는 지혜가 몸에 내재되어 있는 듯 보입니다. 이 책이 어려운 경제환경에 처해 있는 중소기업인들과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조그마한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이 책을 쓰는 데 처음부터 끝까지 도와준 조우진교수에게 먼저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조 교수는 일본의 대표적인 벤처기업 육성기관인 ‘가나가와 사이언스 파크’의 전문연구원을 거쳐 현재는 일본 아오모리 공립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한국의 재원입니다. 그는 1966년생으로 연세대와 게이오대학의 경영학 박사과정을 마쳤고, 벤처기업에 대한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일본인들도 놀라워 할 정도의 일본어 실력에 일본의 역사, 지리, 정치, 심지어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두루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백과사전적 일본통’입니다. ‘대형 소매점 조정 정책’ 에 관한 그의 새로운 이론은 일본 경제학계에 한 방향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더불어 나를 게이오 대학으로 초빙해준 사이토 마치타카교수에게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어려운 출판환경에서도 흔쾌히 출간을 허락해 주신 소담출판사 이태권 사장님과 직원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나들커뮤니케이션 최종명 사장님과 책이 나오기까지 애써주신 모든 분들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이국(異國)땅에서 아시아경제에 대한 연구를 허락하고 이 책의 출간에 이르기까지 어떤 경우라도 내가 일관되고도 한결같이 지탱할 수 있도록 격려와 성원을 아끼지 않으신 김수환추기경님, 철웅스임, 설정스님, 지구촌교회 이동원목사님을 비롯하여 많은 불들에게 이 작은 가슴으로 감당치 못할 고마움에 감사드립니다. 여기 일일이 이름을 적어 밝히지 못한 죄 너그러이 용서를 빕니다.


1999년 10월 일본 동경, 게이오 대학 외국인 숙사에서 박찬종 www.jp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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