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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뀌지 않은 조조에 대한 편견을 잘 보여주고 있는 책    2009/11/13 20:36 추천 1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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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 조조 읽는 CEO
량룽 | 이은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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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등장인물인 조조는 그 능력은 높이 평가받으면서도 욕을 먹는 인물 중에 하나다. 중국 역사를 통틀어 조조만큼 뛰어난 사람도 없었는데도 중국의 문사들은 대대로 조조를 비난해댔다. 왜 그랬을까? 다방면에 능력이 출중했던 조조를 왜 학자들은 못 잡아먹어서 안달했을까?

 

그 이유는 조조가 만능이었기 때문이다. 조조가 너무나 많은 능력을 소유했던 인물이어서 시기에 눈이 먼 사람들이 조조를 비난하고 욕했던 것이다. 조조의 능력 중 한 가지만 가지고 있어도 유능하단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름을 얻은 학자들도 고작해야 학문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것이 다다. 이러니 어찌 여러 분야에 뛰어난 조조를 고운 시선으로 볼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학자들이 생각해낸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인신공격이다. 조조의 능력을 가지고 태클을 걸 수 없으니 증명할 수 없는 성격가지고 욕을 해댄 것이다. 누가 당태종 이세민의 성격을 가지고 욕하는가? 누가 칭기즈칸의 성격을 두고 나쁘게 평하는가? 다들 업적을 두고는 평가해도 성격은 걸고넘어지지 않는다. 성격만 두고 따지자면 이세민과 칭기즈칸은 조조에 비해 좋다고는 말할 수 없다. 헌데 다른 이들은 업적만 평가받는 것에 반해 조조는 성격을 비판받는다.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는가? 악한 마음을 가지고 조조를 깎아내릴 의도가 아니었다면 이럴 수는 없다. 역사적 자료가 부실하고 정확히 증명할 수도 없는 성격가지고 나쁘게 평가받는 이는 조조가 유일무이하다. 조조의 잘못이 있다면 다방면에 너무 재주가 뛰어났다는 것뿐이다.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그런 만능의 영웅을 중국인들은 너무 잘났다는 이유만으로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한심하단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인구에 비해 인재가 우리나라보다도 부족한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책은 중국사학자들의 보편적인 시야를 아주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조조의 능력은 인정하면서도 성격은 욕하기 바쁘다. 서문에선 조조를 한껏 띄워 조조를 지지하는 독자들에게 기대감을 고조시켜 놓고는 정작 본문에선 조조의 이미지를 나쁘게 하는 형용사와 불필요한 자료를 삽입해 과연 이 책이 조조를 칭찬하기 위해서 쓰인 것이 맞는지 의심스럽게 만든다. 한마디로 독자를 우롱하고 있다. 이는 저자도 대부분의 중국사학자들의 태도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능력은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성격은 욕먹어도 싸다는 식의 논리를 저자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조조의 능력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다 결론에 가서는 역시 간웅이라는 생각이 들게끔 만드는 책의 구조는 조조가 제대로 평가를 받으려면 아직도 한참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 책은 총 10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부터 난 내가 주목한 것들 위주로 그 내용을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취중에 쓴 듯한 구조’다. 술에 취하면 앞에서 했던 얘기를 반복해서 하는 사람이 있다. 듣고 있는 사람은 들은 얘길 또 듣는 것이라 지겹기만 하다. 그런데 저자가 딱 그 짝이다. 앞에서 분명이 한 얘기를 뒤에서 또 계속해서 지껄이고 있다. 역사에 문외한도 이 정도면 지겨움을 느낄 것이다. 물론 조조를 이해하기 위해선 역사를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역사를 연구할 것도 아닌데 앞에서 이미 한 얘기를 뒤에서 또다시 거론할 필요는 없다. 소설책에서도 이런 식의 글은 쓰지 않는데 왜 저자는 독자들이 지겹게 느낄 수도 있는 구조로 책을 저술했는지 도통 이해가 되질 않는다. 책의 두께를 늘리려는 수작이었다면 실수한 것이다.

 

한편 앞에서 죽어도 싸다고 한 사람을 뒤에선 왜 죽였냐고 하고 있으니 술을 먹고 쓴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저자는 P.219 에서 양수를 두고 “양수는 잔머리를 좀 굴릴 줄 알았던 사람에 불과하다.”라고 설명하고는 여기에 ‘문학적 재능이 그리 대단한 인재는 아니었던 듯하다’는 표현까지 덧붙여 평가했다. 그런데 얼마 안가 P.221 에는 양수를 ‘세도가의 고귀한 신분인데다 문인으로서 재능도 뛰어났다’고 바로 말을 바꾼다. 이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가? 사람의 평가에는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거늘 앞에선 무능하다고 해놓고 바로 뒤에선 유능하다고 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말이 되는가 이 말이다. 또한 앞에선 양수의 가문과 행적을 들추면서 조조에게 죽어 마땅했다고 얘기해놓고 결론에 가서는 양수의 희생이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이야기한다. 이게 과연 맨 정신을 가진 사람이 할 소리인가? 정신을 어디다 놓고 글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책을 쓸 땐 이따위로 쓰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두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유비와 제갈량을 지나치게 칭찬’하는 부분이다. 이 책은 조조를 재평가하고 그를 칭찬하기 위해 쓰인 책이다. 헌데 오히려 유비를 더 칭찬하고 있고 제갈량은 찬양하는 수준이다. 이렇게 쓸 것이었으면 차라리 유비 읽는 CEO 내지 제갈량 읽는 CEO라고 이름 붙이지 왜 조조 이름을 책이름에 갖다 붙였는지 묻고 싶다. 이 책 5장을 보면 저자는 아주 번호까지 매겨가며 유비를 칭찬하고 있는데 저자는 촉한정통론자의 시선으로 유비를 바라보며 한없이 유비를 높이 평가한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렇게 유비를 잔뜩 띄워놓고 조조를 간신으로 몰아붙였다는 것이다. 조조가 간신으로 불린 것은 조조 사후의 일이고 촉한정통론자들의 주장이었다. 그런데도 저자는 마치 조조가 살아 있을 때도 만인에게 사악한 존재였다는 듯 말하고 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이 다 나오질 않는다. 이런 식의 논리를 펼칠 거였으면 이 책은 도대체 왜 썼는가? 저자의 저술 의도는 최근 들어 조조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시류에 편승했다고 밖에 볼 수밖에 없다. 이런 무능하고 한심한 작자가 감히 조조를 평가했다는 것이 한심스러울 따름이다.

 

마지막 세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능력은 칭찬하고 성격은 비난’한 부분이다. 조조가 능력이 뛰어났다는 것은 만인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 칭찬한 사람도 꽤 많다. 하지만 성격을 옹호한 사람은 지극히 드물다. 저자는 처음엔 조조의 성격을 이해하는 척하며 칭찬한다. 하지만 본문에 가서는 본심을 드러내며 조조를 비난하는 표현을 써가며 실컷 욕을 하고 있다. 기존의 사학자들이 쓴 형용사를 그대로 갖다 쓰면서 나쁜 이미지를 구축시키고 있으며 불필요한 고대자료를 들먹이며 조조를 폄하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이럴 거였으면 애초에 왜 조조를 재평가하는 책을 썼는지 멱살 잡고 묻고 싶다. 자신이 왜 이 책을 썼는지 의도조차 잊고 촉한정통론자들의 편에 서서 속마음을 마음껏 내비치면서 책을 써서 저자는 이 책을 가치 없는 형편없는 물건으로 만들어 버렸다. 저자는 조조의 성격을 가지고 욕을 해댔는데 난 오히려 저자의 성격이 의심스럽다. 꼭 모난 성격의 소유자들이 이런 식의 논리를 펼쳐 남을 비방하기 때문이다. 저자에게 “너나 잘하세요!”라고 말해주고 싶다.

 

중국 역사상 조조를 제대로 평가한 이는 중국의 영웅이자 만능이었던 마오쩌둥(모택동)뿐이다. 최근 이중톈이 조조를 높이 평가하며 조조를 옹호하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데 이것이 과연 시류에 편승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올바른 눈으로 조조를 평가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모두에게 조조를 좋게 평가해달라고는 바라지 않는다. 다만 업적이 아닌 증명되지도 않은 그의 폄하된 성격을 가지고 조조의 뛰어난 능력을 평가하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소망이다. 조조를 평가하는 현실이 어떤지 직접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인상적인 글귀

“내가 세상을 저버릴지언정 세상이 나를 버리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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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식으로 사랑하느냐에 따라 불륜도 순수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책    2009/11/09 22:14 추천 1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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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무지개
요시모토 바나나 |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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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잠자는 것이다. 신경질이 나고 화가 머리끝까지 폭발하면 바로 이불 속으로 머리를 쑤셔 넣는다. 그러고 한두 시간 정도 잠을 자고 나면 언제 스트레스를 받았냐는 듯 행동하고 다시 정상적인 생활을 한다. 술로 스트레스를 풀려다 오히려 화만 더욱 증폭됐던 일이 있은 후부터 난 줄곧 그래왔다. 헌데 가끔은 잠을 자도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 난 혼자서 기차 여행을 한다. 주로 여수의 향일암에 가서 심란한 마음을 달래는데 희한하게도 그곳에서 가서 가만히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진정되고 온갖 스트레스가 말끔히 사라져 버린다. 향일암에 신비한 기운이 있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잔잔한 바다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서 그런 것일까? 이유야 어찌되었든 번민을 사라지게 해주는 향일암이 난 너무나 좋다.

 

이 책은 타이티를 배경으로 한 여인의 솔직하면서 순수한 사랑 얘기를 다룬 책이다. 저자는 미나카미 에이코라는 여자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불륜도 내용이 어떠하느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순수한 사랑일 수 있다고 말한다. 에이코는 자신의 직장 무지개의 오너인 다카다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처음엔 불륜이란 관계 때문에 가까워지는 걸 망설인다. 하지만 다카다가 알면 알수록 괜찮은 사람이고 둘 다 똑같이 동물과 식물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는 조금씩 마음을 연다. 그리고 과로로 인해 지친 몸을 쉬게 하는 동시에 사랑으로 인해 생긴 마음의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에이코는 타이티로 향한다.

 

그곳에서 에이코는 경치를 감상하는 것은 물론이고 다카다가 과거에 타이티에서 어떻게 생활을 했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본으로 돌아와 무지개란 가게를 차리게 되었는지를 생각한다. 그리고 에이코는 가네야마라는 할머니를 우연히 알게 되어 다카다의 과거와 그의 사람 됨됨이를 듣게 된다. 이를 통해 에이코는 그동안 망설였던 사랑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로 마음을 정한다.

 

이 책은 파트가 따로 나눠져 있지 않다. 지금부터 난 내가 주목한 것들 위주로 그 내용을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성공 비결에 대한 에이코의 생각’을 언급한 부분이다. 여기서 에이코는 “땅의 힘과 사람의 힘, 어느 한쪽이 없어서는 성공할 수 없다.”라고 생각한다. 나도 이에 대해 같은 생각이다. 우리 집이 딱 그랬고 지금도 그런 상황에 직면해있기 때문이다. 예전의 우리 가게는 목이 엄청 안 좋았다. 그때 부모님은 의욕은 하늘을 찌를 듯 높았지만 사람이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 가게를 차리셔서 내리 3년을 고생하셨다. 그런데 지금은 목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좋다. 시내와 가깝고 공공기관이 뒤에 있어 사람 걱정은 하지 않는다. 헌데 불행히도 이번엔 어머니가 아프셔서 가게 운영이 제대로 되질 않고 있다. 이런 걸 보면 땅의 힘과 사람의 힘이 동시에 작용해야 성공이 가능한 것 같다.

 

두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오너가 부인의 뱃속에 있는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아님을 고백한 장면’이다. 에이코는 사모님과 그녀의 비서가 적절하지 못한 관계임을 눈치 챈다. 그러나 확신이 없어서 오너가 에이코에게 사랑고백을 했을 때 불륜임을 거론하며 거절한다. 이에 대해 오너는 부인의 뱃속에 있는 아이는 자신의 아이가 아님을 고백하는데 난 이 점이 참 못 마땅하다. 아무리 사람이 착해도 그렇지 어떻게 외도를 한 것도 모자라 남의 아이를 밴 여자를 그냥 내버려 둘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애정이 식었다고 해도 이건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이 취할 대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편 남의 자식을 배고도 이혼을 안 해주려고 하는 오너 부인의 태도는 뻔뻔함을 넘어 가증스럽게 느껴진다. 상류층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자신의 부와 명성을 지키기 위해서 이런 식의 삶을 사는 것을 보면 그들의 삶이 그다지 부럽지 만은 않다.

 

세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인간의 성격에 대한 에이코의 생각’을 말한 부분이다. 여기서 에이코는 오너에게 “인간의 성격은 변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동물과 식물을 좋아하는 것이라 이야기한다. 인간의 성격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나도 동감한다. 성격은 한 번 굳어지면 좀처럼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변화시키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잘 안 고쳐지는 것이 바로 성격이다. 성격개조는 큰 충격이나 깊은 깨달음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계발서를 읽고도 사람이 변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원래 잘 변하지 않는 것을 변화시키려고 한 것이니 당연한 결과다. 만약 자기계발서가 성격개조에 탁월한 효과를 보였다면 지금처럼 자기계발서가 홍수를 이루진 못했을 것이다. 인간이 성격이 지금처럼 변하지 않는 한 자기계발서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러니 너무 자기계발서에 집착하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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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아동성폭력을 근절시키기 위해선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함을 일깨워주는 책    2009/11/07 17:48 추천 3    스크랩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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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도가니
공지영 | 창비 | 2009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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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은지 사건이 벌어진지 1년 만에 대한민국 땅에서 또 다시 이와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 사건은 바로 조두순 사건으로 이번에도 국민들의 반응은 자못 뜨거웠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은지 사건에 이어 조두순 사건도 저지른 만행에 비해 죄 값이 너무 가벼웠다. 왜 그럴까? 왜 우리나라를 들썩이게 하고 모든 언론이 집중하게 한 사건이었는데도 처벌의 수위는 이렇게 전과 다름없이 약하기만 한 것일까?

 

그 이유는 국민들의 무관심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건이 터지면 그 사건을 구심점으로 순식간에 벌떼처럼 달려들어 관심을 가진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언제 관심을 가졌느냐는 듯 그 사건에 대해서 관심을 거두어버린다. 이런 국민들의 성향은 아동성폭력과 같이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일에는 치명적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사건이 전개가 되면 국회의원들은 국민들이 잠깐 관심을 가질 때만 사건에 관심을 가진 척한다. 그리고는 잠잠해지길 기다렸다가 국민들이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게 되면 바로 그 일에서 손을 떼버린다. 이러다보니 걸려도 처벌이 약한 것을 믿고 아동성폭행범들이 아이들에게 짐승만도 못한 짓을 계속해서 해대는 것이다. 만약 국민들이 은지 사건이 벌어졌을 때 아동성폭력에 대해 재판이 끝날 때까지 관심을 가지고 덤볐다면 그리고 언론이 여기에 합세해 끊임없이 사건에 관심을 집중시켰다면 법은 상당히 강화되었을 것이고 그로 인해 조두순 사건과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번 조두순 사건도 은지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사건이 흐지부지 되어 처벌을 담당하는 분들이 일을 어영부영 처리할까봐 심히 걱정된다.

 

이 책은 장애아동들이 당하는 성폭력의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일깨워주는 사회고발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성폭력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된 장애아동들의 실태를 낱낱이 밝히면서 우리들에게 그 심각성을 인식시켜주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이 책은 최근에 핫이슈로 떠올라 장안을 시끄럽게 한 조두순 사건과 맞물려 더욱 의미를 갖게 한다. 특히 성폭행을 당하고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청각장애아들의 어려움을 잘 드러내 이들을 위해 특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아울러 저자는 아동성폭력에 대한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없이는 이런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 책은 119개의 소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부터 난 내가 주목한 것들 위주로 그 내용을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박선생이 강인호에게 농인을 편견지어 말하는 부분’이다. 박선생은 이제 막 농아학교에 부임한 강인호에게 “앞으로 여기 계시면 알게 되겠지만 모든 장애인들 중에서 가장 피해의식이 심한 것이 농인들이에요. 같은 언어를 쓰는 것을 민족이라고 하면 그들은 수화를 쓰는 이방인, 얼굴 생김새가 같지만 다른 민족이죠.”라고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늘어놓는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거짓말이 그들의 풍습 중 하나’라고 단정 지어 말한다. 박선생의 이와 같은 발언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만 나온다. 이게 농아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이라는 사람이 할 소리인가? 아니 아이들을 편견 없이 사랑하고 가르쳐도 모자랄 판에 선생이라는 작자가 이따위 썩어빠진 생각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쳐도 되는 것이냐 이 말이다. 박선생의 논리를 적용시키면 악인은 나쁜 짓만 골라하니 민족이 다르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말을 못하는 것하고 거짓말을 하는 것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인가? 이건 외국인과 의사소통이 잘되지 않는 것을 두고 그들이 거짓말을 해서 그런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이렇게 인간으로서도 자격이 한참 미달인 이런 사람이 사랑으로 감싸주고 아껴줘야 하는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두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장경사가 서유진에게 한 지역의 실세인 아동성폭력범과의 싸움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장면’이다. 여기서 장경사서유진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은 정직도 정의도 아무것도 아니에요. 어쩌면 그들은 더 많은 재물은 가끔 포기할 수 있어요.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거예요.”라고 말하며 현실을 일깨워준다. 이 대목에서 난 97년 외환위기 때 가진자들이 술자리에서 “건배!” 대신“이대로!”라고 외쳤다고 한 것이 떠올랐다. 세상은 정말 그런 것 같다. 사회적 약자가 아무리 사회문제에 대해 수정과 대책을 요구하고 요청해도 기득권들이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한은 사회는 변하지 않는다. 장애아동들의 성폭력 문제에 대해서도 기득권의 태도는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권력자들은 장애아동들이 성폭력을 당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 기득권 중 하나가 이런 성폭력문제에 휘말려 세상에 그 실체가 드러나면 단지 운이 나빴다고만 생각할 뿐이다. 기존의 틀을 바꿔가며 투쟁해야 할 이유가 기득권들에겐 전혀 없기 때문이다. 실세의 자식들이 성폭력을 당하지 않고는 아동성폭력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현실이 너무나 씁쓸하다.

 

마지막 세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자애학원에서 장애아동들을 대상으로 성폭력을 휘두른 이강석, 이강복, 박보현이 죄에 비해 턱없이 약하게 처벌받은 장면’이다. 이강석 이강복 형제자애학원을 운영하면서 수많은 장애아동들을 셀 수도 없이 많이 유린하고 짓밟았다. 그런데도 판사는 이들을 강하게 처벌하기는커녕 그들의 아버지가 사회복지단체인 자애학원을 설립했다는 점을 감안해 처벌의 수위를 낮추어준다. 이 장면은 사람을 참으로 어이없게 한다. 자애학원이 처음 설립했을 때 자비를 털어서 만들어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설립 후 이들은 국가로부터 운영자금을 매년 40억씩 받아왔다. 다시 말해 공짜로 장애아동들을 입히고 먹이고 가르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들은 이런 사회적 장치를 악용해 복지를 한다는 명목을 내세워 몇 십 년에 걸쳐 사회적 약자인 장애아동들을 학대하고 성폭력까지 가했다. 헌데도 두 형제의 아버지와 이들이 사회에 이바지한 바가 크다고 처벌을 낮추어 준 것은 우리사회의 수준이 이 정도 밖에 안 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부끄러운 대목이다. 자비를 털어서 장애아동들을 먹이고 가르쳤다면 이런 판결이 납득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로부터 거금을 받아가며 아동성폭력이라는 파렴치한 짓거리를 저지른 자들을 경범죄를 저지른 자들과 비슷한 수위로 처벌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사형까지는 아니더라도 중형을 내려 다시는 이들이 사회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판사는 이들에게 공이 있으니 벌을 감해줘야 한다는 식의 논리를 펼친다. 이렇게 처벌이 약하니 어찌 아동성폭력이 끊길 수 있겠는가! 재발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 아동성폭력이 완전히 근절되려면 궁형이 부활해야 한다고 본다. 그날이 오길 고대하는 바이다.

 

사회적 약자에겐 너무나 가혹한 것이 바로 대한민국 법이고 사회적 강자에게 너무나 관대한 것이 또한 대한민국 법이다. 만약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아동성폭력은 이 땅에서 절대 근절되지 않는다. 은지 사건과 조두순 사건과 같은 일들이 이 대한민국 땅에서 다시는 일어나지 않길 원한다면 관심을 보여주는 차원에서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지속적인 관심만이 법 개정을 촉진시킬 수 있다. 우린 이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인상적인 글귀

 

“우리나라가 그렇게 좋은 나라가 아닌 줄은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로 그지 같은 줄은 몰랐어.”

 

“진실이 가지는 유일한 단점은 그것이 몹시 게으르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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