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뜻 밖이었다.
세상사에 그리 관심을 두지 않고 사는 '나'지만 지난 몇 달전부터, ICP에서 그리고 몇 명의 한국사진가들에게서 Atta Kim의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온 터였다. 그러던 중 ICP에서 초대장이 왔다. 일단 내 눈을 끈 것은 제일 위에 써 있는 이 한국인작가의 이름. 신선했다.
목요일 밤, 나는 수업 중 잠시 학교를 빠져나왔다. 워낙은 헌터대학으로 가서 가르치기로 한 학생을 ICP로 불러왔던 터였다. 7시 30분부터 9시까지 짧게 있는 아타김 전시 오프닝에 잠시 들르기 위해서였다. 전시장을 가니 커다란 덩치의 한 눈에도 띄는 사람이 인사를 나누고 있었고 이미 그 주위에는 여러 한국아티스들이 몰려와 인사를 하고 있다. 시간이 없었던 터라 10분 정도 전시를 보고 짧은 인사를 나누었다. 다른 이들과의 이야기 속에서 가끔씩 들려오는 경상도 사투리가 정감어리게 들렸고 난 그에게 '자랑스럽다'는 감상을 전했다. 연락처를 어시스턴트인 아로씨와 효정씨에게 받아 간단한 소개와 함께 이메일을 보냈다.
살아가면서 나에게는 많은 행운이 따랐다. 나에게 있어 '행운 또는 운명'은 아타김이 '일'이라 부르는 것들이지만 나에게는 모두 '행운'이고 '운명'이다. 그와의 만남도 그러했다. 어느 날 아침 받은 두 통의 이메일에서 그는 '예사롭지 않은 서정과 정감'을 발견하였고 만나자 하였다. 더불어 곧 다가올 월간지의 기사작성도 제의했다. 뜻 밖의 제안에 나는 'Consider it done (이미 된 것으로 알아도 좋습니다)'라는 완벽한 신뢰의 답장을 보냈다. 우리는 그렇게 만나게 되었다.
당일 오후 유니언스퀘어에서 그와 만났다. 그가 물어보았다.
"블로그에 있는 것들은 모두 자네가 직접 한 것인가?" 그는 나의 사진과 글에 긍정적인 평가를 주었다. 인사치례로 폄하하는 나의 발언에 "나는 그냥 하는 말은 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못하네"라고 하셨다. 글을 쓰기 위해 잠시 만날 것이라고 생각한 예상과는 달리 그는 맥주에 식사까지 사주신다.
그러면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경청하는 사람이다. 듣기만 하려고 만났는데 내가 주절거리게 된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다가 미래계획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작가되기를 그만두고 사업을 하겠다는 나에게 꾸지람을 했다. "당신같이 삶을 절절히 쓰는 사람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잖아!"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사진은 생명인데 그만두기로 한 사람이 왜 사진을 가르치나, 사진도 가르치지마라!" 나는 휘청거렸다. 자신이 부끄러워졌고 눈물이 핑 돌았다. 비즈니스에 대한 견해차이는 차치하고 작가로서 힘들어 비겁하게 숨으려는 내 자신을 뚜렷이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오래 전 그의 사진작품들을 보았을 때를 기억한다. 그 때 주위의 사진가들은 유명한 작가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들은 김아타, 배병우, 이불, 구본창 등 유명한 사진가들에 대해 지나가듯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유명세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특히 국내에서만 유명세를 쌓는 작가들은 특히 좋아하지 않는다. 자기동네에서 자리를 틀어잡고 터줏대감이 된 것 같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흘려듯곤했다. 그럼에도 난 우연히 아타김의 사진을 본 적이 있었고, 아주 인상적이며 마음에 들어온다고 말했다. 그들은 '너의 사진과는 아주 다른데..'라며 의아해했다. 난 그룹핑(Grouping)이 싫다. 대가들이라 좋아하는것이 아니라 그들은 공감이 갈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놓기에 좋다. 인간이란 어차피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 아닌가?
지금도 하는 생각이지만 나는 그의 뮤지엄프로젝트(Museum Project)가 세계사에 남을 사진이라 생각한다. 지금 하는 여러다른 작업도 있지만 난 그가 뮤지엄프로젝트를 연장하여 작업하였으면 한다. 그건 지나가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lifetime works가 되어야 한다. 그는 그로써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와 더불어 100개국 100명을 찍어 한 장으로 만든 'Self-Portrait'도 아주 좋다. 어느날 내가 그의 신문기사 중 그 100명 합성 얼굴사진을 나의 학생에게 보여준 적이 있다. 그가 하는 말이,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요"라고 한다. 난 그 한마디에 큰 충격을 받았다. 100개국의 100명을 합성하여 만든 얼굴이지만 한 눈에 친숙하다는 사실, 대단하지 않은가? 이것을 간파하고 만들어 낸 작가의 역량을 존경한다.
어떤 사람에게 공감이 간다는 것은 그 사람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닫혀있는데 공감이 갈 리가 없다. 그 점에서 그는 솔직한 사람이다. 살아온 삶도 다른 작가들과 많은 비교가 된다. 부르조아적이지도 않고 미술을 전공으로 시작하지도 않았다 (물론 이 두가지에 반해야 옳다는 말이 아니다.) 적어도 삶을 찾아가는 태도가 열정적이며 진지하다는 것이다. 순수성, 그건 작가에게 있어 생명이다. 난 예술에 대한 자신의 순수성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그의 순수성에는 진창에서 부터 시작된 인간애가 있다. 이해하기 어렵거나 돌려 말하지 않아도 되는 인간자체에 대한 애정은, 죄송한 말이지만, 다른 거대한 작가들에게서는 너무 미화되어 더이상 찾기 힘들다. You are all Shallow!
25년 경력의 작가가, 그것도 최고의 자리에 선 작가가, 이름도 없는 짧은 경력의 사진가에게 '좋다' 평한 것에 나는 우쭐하지 않는다. 그보다 나는 그에게 존경을 표한다.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용기. 그렇다, 난 이걸 '자신감'이라 부른다. 자신감있는 사람만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다듬어지지 않은 감성이지만, 난 현대예술계에서 조작되어진 일편화된 전시사진들을 보고 코웃음을 치곤 한다. 그들의 작품은 이쁘게 화장시켜 놓은 시신과 같다. 무엇을 만드는지도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세련되지 못한 나의 취향은 전시를 보는 중에도 "쓰레기", "병신들"이란 말을 툭툭 튀어나오게 한다. 적어도 나는 숨을 쉰다. 나는 세월에 연연해하지 않고, 인연으로 멈추어지지 않는다.
작가에게는 두 가지의 신념이 있어야 한다. 첫째는 자신에 대한 신뢰이다. 이건 망상과는 구별된다. 진심어린 의도와 그것을 표출해낼 수 있는 재능에 대한 믿음이다. 나는 예전에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작업만으로 내 자신이 바위(Rock)처럼 느껴진다"라고. 바위는 타인의 - 특히 피상적 예술세계에 빠져 눈이 먼 - 시각에 의해 판단되거나 동요되지 않는다. 살아가기가 힘들고 슬퍼도 삶의 얼룩으로 의기소침하지 않는 그런 신뢰이다.
두번째는 다른 눈이다. 그들에게 영향받지 않는다 해도 나에게 있어 예술의 의도는 '공유와 위로'로 시작되었다. 그러기에 그들의 동의 또는 공감이 나에게 절대적 생명력이다. 난 전문인들, 예술가들보다 평범한 사람들이 좋다. 유명인들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공산품같아 싫다. Flashi한 사람보다 소박한 사람이 좋다. 그들에게는 이해관계가 없고 따라서 자유롭다. 예술가들, 특히 사진가들은 가장 졸속한 형태의 인간들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음에도 다른 이의 작품을 폄하한다. '작가정신이 모자른가, 이미지가 열등한가.' 그렇다면 손가락질하라. 그들에게 비판은 없고 단지 인기에 영합하는 유아적 시기심이 있을 뿐이다.
자유로운 영혼은 '모두' 통하게 되어있다. 의사소통의 절단은 죄악이다.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몇 년간의 유명세와 삶의 안정은 봄의 아지랭이와 같이 사라질 것이고 그에 얽매여 시간을 보낸 당신은 구속된 노예로 죽을 것이다. 문득 이상한 냄새가 난다면 자신의 팔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보라. 썩는 내가 요동할 것이다.
열등감은 열등하기에 생기는 것, 난 열등한 당신을 증오한다.
며칠 전 TV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 세상의 모든 것은 '대화와 타이밍에 의해 결정된다'(It's all about communication and timing)라고. 내가 빠리로 가 모든 것을 버리는 순간 나에게는 끊임없는 대화와 타이밍의 절묘한 순간들이 열렸다. 아타김과의 만남은 나에게 그런 의미가 되었다. 산술적 2년과 직관력의 아집에만 빠진 나를 흔들어 깨워 주었다.
그가 나에게 물어보았다.
"이제는 무얼 할 것인가?"
"모르겠습니다. 사진을 글의 연장으로 생각하고 하였으니 이제는 그림을 그리듯 글을 쓰면 어떨까 합니다"
그는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는 급박한 원고마감으로 그가 맡겨준 사진예술의 기사를 하룻밤만에 꼬박써내렸다.
미처 다듬지 못한 세부적 fact의 부족한 면은 그가 친절히 붙여 주었다.
빠리로 떠나기 이틀전 다시 만난 자리에서 그가 나보고 말했다.
"자네, 글을 쓰라. 감상적인 부분을 조금 절제하면 사람들 속을 뒤집어 놓는 힘이 있는 글을 쓸 수 있을걸세"
감상적. 그렇다, 그 말이 적절하다. 난 그의 말을 듣고 다시 '사진'을 바라보았다.
아주 오래된 연인처럼, 난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다 알고 있고, 멀리 떨어져 살아도 그녀의 냄새를 기억하는데..
그녀의 눈빛만으로 날씨의 변화마저도 알아챌 수 있는데...
시간이 다 된 것처럼 나는 그녀를 뒤로 떠나보내는 것이 아쉬웠다.
상념에 잠겨 있는 나를 깨우듯,
그는 강철로 단단히 만들어진 내 수동카메라위 손때를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의 웃음에서 나는 Leica만큼이나 진중했던 지난 2년의 시간에 대해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웃으며 다시 잔을 들었다.
2006년 6월. 아타김은 나의 팬이 되었고, 나는 그의 제자가 되었다.
뉴욕의 마이스그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