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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말하는 가치에 대해 논해보자"    2007/02/22 01:11 추천 1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dannewyork/1873976

     “Let’s Visualize the Values You are Talking About” 

   당신이 말하는 가치를 들여다보자.

 

 

현대인들이 삶을 직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추상적 생각이나 꿈이 아니라, 자신감의 결여이며 두려움때문입니다. 이것은 사실 최초 당신의 책임은 아니었습니다. 사회가 그렇게 당신을 조형화 시켜놓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우리가 이상으로 삼고 있는 많은 가치들, 예를 들어 인간본성, 실존, 자각, 주체와 객체, 영원 등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고 있지 못합니다. 그보다는 피상화된 물신주의로 팽배하여 거의 완벽하게 폐쇄되어 있습니다. 이 시스템은 인간의 지식이 역사를 가진 하나의 객관적 사실임을 부정하며 자신이 마치 영원할 것인양 신비화합니다.

 

이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현실은 두가지 즉, 명품을 쓰는 사람과 할인점에 가는 사람, 획득하는 사람과 (소비해)버리는 사람 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차지하고는 얼마가지 않아 소비해버립니다. 당신이 느끼는 갈증은 목을 축여도 10분후면 다시 돌아올 갈증입니다. 외형상 보이는 다양함은 사실상  소비자본문화속에 얽혀 굴러가는 사실 너무나 단순화된 시스템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 또한 역사속에서 변증법적으로 발전하는 하나의 단계임을 당신은 알아야 합니다. 제가 말하는 발전이란 우리가 피상적으로 느끼는 더 나아진다는 개념이 아니라 진행을 의미합니다. 이는 영원할 것이 아니며 우리의 영혼을 걸만한 것은 더욱 아니란 말입니다. 이 메카니즘의 아주 작은 소용돌이 속에 당신이 태어나고 자랐으며 당신은 이를 영원으로 현실로 믿게 되었습니다.

 

과연 현대 자본사회가 당신에게 가르쳐 준 가치가 당신을 구해줄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자신이 진정한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까? 힘들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쳐놓은 여러가지 안전장치 또는 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당신은 이 덫을 자신이 빠져나갈 수 있는 수십가지의 선택으로 여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실 이 시스템이 말하는 가치대로 움직일 경우 당신은 탈출하기는 커녕 자신을 더욱 깊은 땅구덩이에 파넣게 됩니다. 랭보의 말대로 ‘On ne part pas – we never leave’ 우리는 절대 떠날 수 없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언젠가 그곳에 가면은 사실 절대 오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지금 이곳에서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이 메세지를 전하는 저의 급박한 마음을 아십니까?

 

그들에게 말과 행동은 별개의 것이고 그렇게 나뉘어져야만 공존이 가능합니다. 이상은 이상이어야 하고 꿈은 꿈이어야 하며 현실은 현실이어야 합니다. 현실에 영악한 ‘reality-savvy’ 者는 성공한 사람으로 인정받습니다. 당신은 저에게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그래도 살아야하지 않겠습니까하지만 바로 그 말 한마디로 당신은 죽게 되었다는 것을 모릅니다. 당신은 자신의 삶이 오염되어있고 상업/물질주의에 의해 보기좋게 분류화되어 있음을 보지 못합니다. 당신은 자신의 삶을 수치로 나누어 어떻게 하면 정해진 시간안에 가장 많은 것을 소유할 것인가부단히 고심합니다. 당신은 사랑은 물론, 이제 혼자 있을 자유마저 돈을 주지 못하면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 가슴속에는 느낌, () 또는 sense가 있고 이것은 진정한 가치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바로 당신의 센스가 당신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안에서 끝없는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불쌍합니다. 

 

가치란 그 자체가 생명이기에 목숨을 걸고 구할 만한 것이어야 합니다. 가장 절망스러운건 누구도 이 곳을 탈출하기를 포기했다는 사실입니다. 대중속에 묻혀져 개인은 더이상 찾아볼 수 없습니다.그러나 시스템에서 도저히 답을 찾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심지어 예술가들까지 결국 고독과 無 nothingness로 귀결하며 자포자기하게 됩니다. 앙리프파브르가치는 우리 위에 또는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뒤에 버려져 있다고 하였습니다. 당신의 가치는 저 앞에 있습니까 아니면 지나온 먼 옛날 시궁창에 던져버렸습니까?

 

그렇다면 이 곳을 어떻게 탈출해야 합니까. 단 하나의 해결책은 개방과 나눔’ openness & sharing 입니다. 먼저 당신자신을 자신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합니다. 당신이 지금까지 배운 유한적 삶의 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 배움은 수적, 양적 배움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멀리서 다시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개인적 삶에서의 자신뿐 아니라 역사적 정점에 서 있는 자신을 보아야 합니다. 신호와 상징으로 가득 찬 도시와 그 속에 바둥대며 살아가는 자신을 보기좋게 해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당신이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칠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뉴욕의 마이스그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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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대한 불만    2007/02/13 06:28 추천 0    스크랩 1
http://blog.chosun.com/dannewyork/1851679

 

커다란 불만이 하나 있다

마지막에 집착하는 것.

사람들은 마지막만을 생각하며 살아간다

시작은 기억도 없이 유종의 美만 나불댄다

책의 마지막 장을 펴 보고는 다 읽었다고 한다

 

어떤 일을 하는 것도 무언가를 위해서만 해야한다

가치는 행동이 아닌 결과로만 정당화된다

사랑도 마지막에 의해 지난 모든 시간까지 심판 받는다

구원마저도 마지막 순간에만 온다고 강변한다

 

그렇게

마지막이 중요하다고들 한다

오지도 않을 마지막만 보라한다

 

그들 덕분에,

내 나이 아직 마흔도 되지 않았는데

나는 매일

마지막만 생각하고 산다.

 

 

 

       뉴욕의 마이스그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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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스크랩]    시간의 공식    2007/01/13 08:22 추천 0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dannewyork/1764578
 원문출처 : Short Happy Life of Mice Grey
 원문링크 : http://cafe.chosun.com/club.menu.pds.read.screen?p_club_id=orange&p_menu_id=9&message_id=383173

 

요즘들어 시간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연도가 바뀌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여러가지 현실적 문제들사이에서 갈등하며 그 사이 흐르는 시간을 생각합니다.

 

저는 얼마전 누군가에게 '시간의 공식'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누어졌다고 하지만 시간이란 공평한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신비로운 이유는

자신이 '가지고'있다고 생각하는 시간이,

사실은 소유한 것이 아니며, 비로소 다른 사람에 의해서만 증산(增産)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무단히 다른 사람에 의해 기억되어지며, 살고,

내가 고단히 고민하는 10분은, 천명, 만명이 나누게 되면서 결국 물리적 10분을 훌쩍 뛰어넘게 됩니다.

작가는 '이 10분'을 생각합니다.

 

나의 시선이 나만의 시선이 아니듯,

내 마음이, 경험이 나만의 것이 아니듯,

작가는 - 사람들이 '현실'이라 부르는 거대한 벽을 과감히 외면한 채 -

그 생산적 10분을 찾아 부단히 움직입니다.

 

고단합니다. 

 

(그 10분을 찾아) 잠시 뉴욕을 떠나있을 생각입니다.

 

 

          "Give me a chance to Catch my breath"

 

 

 

 

뉴욕의 마이스그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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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스크랩]    아타김(Atta Kim), 어디서 본 듯한 얼굴    2006/06/29 00:41 추천 0    스크랩 3
http://blog.chosun.com/dannewyork/1224492
 원문출처 : Diane Arbus의 사진을 본 날
 원문링크 : http://cafe.chosun.com/club.menu.pds.read.screen?p_club_id=orange&p_menu_id=9&message_id=333459

어느 날 아침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뜻 밖이었다.

 

세상사에 그리 관심을 두지 않고 사는 '나'지만 지난 몇 달전부터, ICP에서 그리고 몇 명의 한국사진가들에게서 Atta Kim의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온 터였다. 그러던 중 ICP에서 초대장이 왔다. 일단 내 눈을 끈 것은 제일 위에 써 있는 이 한국인작가의 이름. 신선했다.

 

목요일 밤, 나는 수업 중 잠시 학교를 빠져나왔다. 워낙은 헌터대학으로 가서 가르치기로 한 학생을 ICP로 불러왔던 터였다. 7시 30분부터 9시까지 짧게 있는 아타김 전시 오프닝에 잠시 들르기 위해서였다. 전시장을 가니 커다란 덩치의 한 눈에도 띄는 사람이 인사를 나누고 있었고 이미 그 주위에는 여러 한국아티스들이 몰려와 인사를 하고 있다. 시간이 없었던 터라 10분 정도 전시를 보고 짧은 인사를 나누었다. 다른 이들과의 이야기 속에서 가끔씩 들려오는 경상도 사투리가 정감어리게 들렸고 난 그에게 '자랑스럽다'는 감상을 전했다. 연락처를 어시스턴트인 아로씨와 효정씨에게 받아 간단한 소개와 함께 이메일을 보냈다.  

 

 

살아가면서 나에게는 많은 행운이 따랐다. 나에게 있어 '행운 또는 운명'은 아타김이 '일'이라 부르는 것들이지만 나에게는 모두 '행운'이고 '운명'이다. 그와의 만남도 그러했다. 어느 날 아침 받은 두 통의 이메일에서 그는 '예사롭지 않은 서정과 정감'을 발견하였고 만나자 하였다. 더불어 곧 다가올 월간지의 기사작성도 제의했다. 뜻 밖의 제안에 나는 'Consider it done (이미 된 것으로 알아도 좋습니다)'라는 완벽한 신뢰의 답장을 보냈다. 우리는 그렇게 만나게 되었다.

 

당일 오후 유니언스퀘어에서 그와 만났다. 그가 물어보았다. 

"블로그에 있는 것들은 모두 자네가 직접 한 것인가?" 그는 나의 사진과 글에 긍정적인 평가를 주었다. 인사치례로 폄하하는 나의 발언에 "나는 그냥 하는 말은 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못하네"라고 하셨다. 글을 쓰기 위해 잠시 만날 것이라고 생각한 예상과는 달리 그는 맥주에 식사까지 사주신다.

 

그러면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경청하는 사람이다. 듣기만 하려고 만났는데 내가 주절거리게 된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다가 미래계획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작가되기를 그만두고 사업을 하겠다는 나에게 꾸지람을 했다. "당신같이 삶을 절절히 쓰는 사람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잖아!"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사진은 생명인데 그만두기로 한 사람이 왜 사진을 가르치나, 사진도 가르치지마라!" 나는 휘청거렸다. 자신이 부끄러워졌고 눈물이 핑 돌았다. 비즈니스에 대한 견해차이는 차치하고 작가로서 힘들어 비겁하게 숨으려는 내 자신을 뚜렷이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오래 전 그의 사진작품들을 보았을 때를 기억한다. 그 때 주위의 사진가들은 유명한 작가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들은 김아타, 배병우, 이불, 구본창 등 유명한 사진가들에 대해 지나가듯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유명세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특히 국내에서만 유명세를 쌓는 작가들은 특히 좋아하지 않는다. 자기동네에서 자리를 틀어잡고 터줏대감이 된 것 같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흘려듯곤했다. 그럼에도 난 우연히 아타김의 사진을 본 적이 있었고, 아주 인상적이며 마음에 들어온다고 말했다. 그들은 '너의 사진과는 아주 다른데..'라며 의아해했다. 난 그룹핑(Grouping)이 싫다. 대가들이라 좋아하는것이 아니라 그들은 공감이 갈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놓기에 좋다. 인간이란 어차피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 아닌가?

 

지금도 하는 생각이지만 나는 그의 뮤지엄프로젝트(Museum Project)가 세계사에 남을 사진이라 생각한다. 지금 하는 여러다른 작업도 있지만 난 그가 뮤지엄프로젝트를 연장하여 작업하였으면 한다. 그건 지나가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lifetime works가 되어야 한다. 그는 그로써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와 더불어 100개국 100명을 찍어 한 장으로 만든 'Self-Portrait'도 아주 좋다. 어느날 내가 그의 신문기사 중 그 100명 합성 얼굴사진을 나의 학생에게 보여준 적이 있다. 그가 하는 말이,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요"라고 한다. 난 그 한마디에 큰 충격을 받았다. 100개국의 100명을 합성하여 만든 얼굴이지만 한 눈에 친숙하다는 사실, 대단하지 않은가? 이것을 간파하고 만들어 낸 작가의 역량을 존경한다.

 

어떤 사람에게 공감이 간다는 것은 그 사람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닫혀있는데 공감이 갈 리가 없다. 그 점에서 그는 솔직한 사람이다. 살아온 삶도 다른 작가들과 많은 비교가 된다. 부르조아적이지도 않고 미술을 전공으로 시작하지도 않았다 (물론 이 두가지에 반해야 옳다는 말이 아니다.) 적어도 삶을 찾아가는 태도가 열정적이며 진지하다는 것이다. 순수성, 그건 작가에게 있어 생명이다. 난 예술에 대한 자신의 순수성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그의 순수성에는 진창에서 부터 시작된 인간애가 있다. 이해하기 어렵거나 돌려 말하지 않아도 되는 인간자체에 대한 애정은, 죄송한 말이지만, 다른 거대한 작가들에게서는 너무 미화되어 더이상 찾기 힘들다. You are all Shallow!

 

25년 경력의 작가가, 그것도 최고의 자리에 선 작가가, 이름도 없는 짧은 경력의 사진가에게 '좋다' 평한 것에 나는 우쭐하지 않는다. 그보다 나는 그에게 존경을 표한다.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용기. 그렇다, 난 이걸 '자신감'이라 부른다. 자신감있는 사람만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다듬어지지 않은 감성이지만, 난 현대예술계에서 조작되어진 일편화된 전시사진들을 보고 코웃음을 치곤 한다. 그들의 작품은 이쁘게 화장시켜 놓은 시신과 같다. 무엇을 만드는지도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세련되지 못한 나의 취향은 전시를 보는 중에도 "쓰레기", "병신들"이란 말을 툭툭 튀어나오게 한다. 적어도 나는 숨을 쉰다. 나는 세월에 연연해하지 않고, 인연으로 멈추어지지 않는다.

 

 

작가에게는 두 가지의 신념이 있어야 한다. 첫째는 자신에 대한 신뢰이다. 이건 망상과는 구별된다. 진심어린 의도와 그것을 표출해낼 수 있는 재능에 대한 믿음이다. 나는 예전에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작업만으로 내 자신이 바위(Rock)처럼 느껴진다"라고. 바위는 타인의 - 특히 피상적 예술세계에 빠져 눈이 먼 - 시각에 의해 판단되거나 동요되지 않는다. 살아가기가 힘들고 슬퍼도 삶의 얼룩으로 의기소침하지 않는 그런 신뢰이다.

 

두번째는 다른 눈이다. 그들에게 영향받지 않는다 해도 나에게 있어 예술의 의도는 '공유와 위로'로 시작되었다. 그러기에 그들의 동의 또는 공감이 나에게 절대적 생명력이다. 난 전문인들, 예술가들보다 평범한 사람들이 좋다. 유명인들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공산품같아 싫다. Flashi한 사람보다 소박한 사람이 좋다. 그들에게는 이해관계가 없고 따라서 자유롭다. 예술가들, 특히 사진가들은 가장 졸속한 형태의 인간들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음에도 다른 이의 작품을 폄하한다. '작가정신이 모자른가, 이미지가 열등한가.' 그렇다면 손가락질하라. 그들에게 비판은 없고 단지 인기에 영합하는 유아적 시기심이 있을 뿐이다.     

 

 

자유로운 영혼은 '모두' 통하게 되어있다. 의사소통의 절단은 죄악이다.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몇 년간의 유명세와 삶의 안정은 봄의 아지랭이와 같이 사라질 것이고 그에 얽매여 시간을 보낸 당신은 구속된 노예로 죽을 것이다. 문득 이상한 냄새가 난다면 자신의 팔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보라. 썩는 내가 요동할 것이다.

 

열등감은 열등하기에 생기는 것, 난 열등한 당신을 증오한다.

 

며칠 전 TV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 세상의 모든 것은 '대화와 타이밍에 의해 결정된다'(It's all about communication and timing)라고. 내가 빠리로 가 모든 것을 버리는 순간 나에게는 끊임없는 대화와 타이밍의 절묘한 순간들이 열렸다. 아타김과의 만남은 나에게 그런 의미가 되었다. 산술적 2년과 직관력의 아집에만 빠진 나를 흔들어 깨워 주었다.

 

 

그가 나에게 물어보았다.

 

"이제는 무얼 할 것인가?"

"모르겠습니다. 사진을 글의 연장으로 생각하고 하였으니 이제는 그림을 그리듯 글을 쓰면 어떨까 합니다"

그는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는 급박한 원고마감으로 그가 맡겨준 사진예술의 기사를 하룻밤만에 꼬박써내렸다.

미처 다듬지 못한 세부적 fact의 부족한 면은 그가 친절히 붙여 주었다.

빠리로 떠나기 이틀전 다시 만난 자리에서 그가 나보고 말했다.

 

"자네, 글을 쓰라. 감상적인 부분을 조금 절제하면 사람들 속을 뒤집어 놓는 힘이 있는 글을 쓸 수 있을걸세" 

 

 

감상적. 그렇다, 그 말이 적절하다. 난 그의 말을 듣고 다시 '사진'을 바라보았다.

아주 오래된 연인처럼, 난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다 알고 있고, 멀리 떨어져 살아도 그녀의 냄새를 기억하는데..

그녀의 눈빛만으로 날씨의 변화마저도 알아챌 수 있는데...

시간이 다 된 것처럼 나는 그녀를 뒤로 떠나보내는 것이 아쉬웠다.

상념에 잠겨 있는 나를 깨우듯, 

그는 강철로 단단히 만들어진 내 수동카메라위 손때를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의 웃음에서 나는 Leica만큼이나 진중했던 지난 2년의 시간에 대해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웃으며 다시 잔을 들었다.

 

 

2006년 6월. 아타김은 나의 팬이 되었고, 나는 그의 제자가 되었다.

 

    

 

 

뉴욕의 마이스그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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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거리, 한 밤의 전화    2006/06/26 08:33 추천 0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dannewyork/1217701

 

한 밤. 더위에 뒤척이다 잠이 깨었다.

문득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정한 아들로 맘 상하셨을 어머니...

마지막 들었던 어머니는 암센터 호스피스병동에서 자원봉사를 하신다 하였다.

암을 앓고 계신 분이 그래도 되는가 생각이 들었지만 말리지 못했다.

난 아직도 머리가 다 빠졌을 때의 어머니 모습을 기억한다.

마음만 있고 연락도 없는 아들... 소용있을까.

하지만

안 그래도 요즈음 열심히 아르바이트 하여 번 돈 몇 푼이라도 보내드리려고 전화하려던 참이었다.

 

문을 열고 나갔다.

이 동네는 한 밤인데도 사람들이 많다. 첼시의 특징이다.

게이퍼레이드가 며칠 앞이라 그런가, 유난히 붐빈다.

페인트가 묻은 도마뱀 무늬의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머리는 부시시하여 나갔으니 볼 상도 사납다.

 

얼마전 친구가 준 국제전화 카드 비밀번호를 들었다.

핸드폰으로 1-800- 번호를 찍고는

비밀번호를 넣었다. '20 달러가 남았습니다'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는 번호를 눌러야 하는데,

그게 문제다.

 

0082를 눌렀다. 안된다.

82와 번호를 해도 안되고,

0182를 해도 안되고,

00182도 안된다.

 

 

'젠장'

'얼마나 전화를 안했보았으면 이것도 모를까' 생각이 들고,

난 이내 서글퍼진다.

'혹시 어머니 전화가 문제가 있나?'싶어,

아버지에게 한다.

안된다.

 

'그래, 이 참에 그리운 사람들 모두에게 전화하자.'

찾을 수 있는 번호, 기억할 수 있는 번호는 다 찾아고는

전화를 돌린다.

나의 친구 리스트에는 차별도 편견도 없다.

하지만 그들에게 나는 어떨 것인가?

배에 힘을 주고 나와의 절교를 선언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세월에 묻혀 나를 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여전히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나는 번호를 눌렀다.

여러 나라, 다른 시간에 사는 그들 중 누구라도 받기를 원하며...

이 곳에 와 1년 이상 전화조차 없이 살았던 내가

계시를 받은 듯 새벽 첼시거리에 서서

전화를 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보기에도 우스울 게다.

 

                          안된다.  

 

 

그 날 밤,

나는 그들에게 전화를 했다. 분명히.

그들은 몰랐고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

가족도 연결되지 않았고,

친구도 연결되지 않았다.

 

잔인한 밤,

우리는 여전히 끊겨져 있고,

당신도. 나도 여전히 혼자이다.

 

 

 

 

뉴욕의 마이스그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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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미드타운, 한 밤의 몽상(夢狀)    2006/06/14 15:05 추천 0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dannewyork/1192021
寒氣에도 불구하고 반팔차림으로 난 스투디오에 앉았다.
 
밤에 보는 미드타운은 영락없이 '뉴욕이다'.
 
반쯤 열어놓은 창문은 내 눈에 걸쳐져
아래로는 어두운 거리를
그 위로는 형광의 백색을 겹쳐놓았다.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나의 오른쪽 귓가로 와 무어라 속삭이는 듯,
뉴욕은 그만큼 가까이 와 있다.
나도 모르는 새,
눈가가 축축해져 버렸다.
 
"왜 그리 슬퍼하는거지?", 너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니, 슬퍼서가 아니야. 기뻐서."
"..."
"이 곳에 내가 이렇게 살아 서 있고, 너가 가슴속에 있고, 차가운 바람이 정신을 깨어있게 하기때문에. 정적의 밤 속에 분연히 살아움직이는 그림자들(影)이 보이기에."
 
"이제 우리의 시간은 - 다시 - 우리만의 것이 되었기에..."
 
 
 
Daniel
 
***
 
 
선생님,
 
 
한 밤,
미드타운에 있는 미국 NEA 아티스트의 스투디오를 빌려,
주신 일을 하던 中,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라 잠시 몽상에 잠겼습니다. 
 
이제 하던 일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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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조각    2006/05/30 03:44 추천 1    스크랩 1
http://blog.chosun.com/dannewyork/1154574

 

작가는 죽을 때 그의 일부분을 가지고 간다.

 

당신의 바램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심지어 작가 자신의 바램에도 불구하고), 그 부분은 지니고 간다. 

 

보들레르가, 브레송이 떠났을 때, Kertesz가 죽었을 때 동시에 그들의 부분도 함께 사라졌다.

 

모든 것을 남길 수 없는 것, 그것은 인간이 가진 가장 비극적인 면임에 틀림없다.

 

 

                              그리워 할 수 마저 없는 부분...

 

 

 

나에게는 아끼며 신뢰하는 후배가 한 명있다.

 

며칠전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다,

 

 

"오빠,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벌써 4년이 지났다.."

 

"그래, 삶이란 그런 것이지. 헤어지고 얼마후 다시 만나게 되는.."

 

"월드컵말야. 난 월드컵이 있어 고마와. 그 때마다 아버지를 기억하게 되기 때문에..."

 

" ... "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녀에게는 한없이 그리운 아버지의 기억이 남아있음을.

 

월드컵만으로 채워지지 않을 커다란 조각이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음을.

 

 

 

 

On Memorial Day.

 

뉴욕의 마이스그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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