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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하루
“노아아, 일어나야지. 학교 갈 시간 다 됐다.” 분주히 움직이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 또 아침이구나, 학교 가기 싫은데’
마루에선 벌써 음식냄새가 나고 있었고 그 냄새는 방에까지 스며들어오고 있습니다.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 아니나 다를까 세수하러 가면서 안방을 슬며시 들여다보니 벌써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과, 국, 그리고 된장이 차려져 있습니다. 노아는 중학생이 될 때까지 다른 모든 집에서도 국과 찌게를 매일 함께 먹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노아네 집은 언제나 그렇게 국과 찌게가 함께 나왔습니다.
욕실에 들어가 잽싸게 고양이 세수를 했습니다. 엄만 항상 귀 뒤하고 목을 닦으라고 하셨지만 그건 죽기보다 싫었는데 가장 싫었던 건 목을 씻으면 항상 목가의 옷이 젖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하고 씻을 수 있을까’, 노아는 궁금합니다.
세면대 위에 벽에는 아빠, 엄마, 누나, 노아의 차례대로 칫솔이 걸려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빨 닦으랬으니까 닦아야지’ 고양이 세수를 한 후 배가 고파오는 것을 느끼는 노아는 이빨을 대충 닦지만 갑자기 "잘 닦아야 다시 주사맞지 않는다"하신 치과선생님 얼굴이 떠올라 다시 야무지게 칫솔을 잡습니다.
방안에 들어가니 이미 다들 앉아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 모두 기도하자,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이렇게 먹을 것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노아를 오늘도 아버지께서 잘 지켜주시고 이 밥 먹고 힘내서 공부 잘하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오늘은 아빠가 기도하는 날입니다. 노아는 아빠가 기도할 때가 제일 좋습니다. 짧게 하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할 때면 정말이지 죽어버릴 것만 같습니다. 왜그리 오래하는지, ‘해도 어떻게 그렇게 말이 끝없이 나오는 것일까’ 노아는 궁금합니다. 하루는 기도하다가 눈을 뜨고 엄마를 본 적이 있습니다. 어디에 써놓고 하는 것은 아닌가 확인하려고 말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보아도 엄마 손에도 그리고 앞치마 옆에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고추어딨어, 고추? ”
“아, 참 또 깜빡했네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아버지는 고추없인 아무 것도 안 드시는 분입니다.
‘왜 매일 그걸 찾으실까, 창피하게스리’, 노아는 생각합니다.
한번은 아빠를 따라한다고 고추를 한 입 베어먹었다가 노아는 죽을 뻔 했습니다.
맵기도 했지만 결국 목에 고춧가루가 끼어서 불이 난 걸 끄려고 물을 한 대접이나 먹고 또 배가 터져 죽는 줄 알았습니다.
노아는 결국 ‘아빠가 한다고 다 옳은 일은 아니라’는 것을 그 날 배웠습니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걸어서 정확히 7분이 걸립니다. 아버지께서는 노아에게 항상 쎄븐이 럭키넘버라고 하십니다. ‘럭키’가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좋은 것임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항상 웃으시면서 그 말씀을 하시니까 말입니다. 테레비를 봐도 그런 선전이 있는 걸 보면서 노아는 ‘내가 행운아이긴 한가보다’라고 생각합니다. 노아네 집은 좀 높은 곳에 있어서 집을 나서면 저 먼 아래 학교가 보입니다. 보이긴 해도 그 사이 구불구불한 길을 걸어가는 건 힘든 일입니다.
‘그냥 슈퍼맨처럼 확 일직선으로 날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노아는 마음속으로 벌써 망또를 입고는 앞 팔을 주욱 편 채 날아가고 있습니다.
학교는 긴장의 연속입니다. 정문에 들어서기 전 주번누나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고, 들어서면 노아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먼지가 엄청나게 날립니다. 모르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 햇살이 창사이로 들이비추면서 먼지들이 연기처럼 촤악 펼쳐집니다. ‘우악, 저걸 내가 다 마신다니’ 그 순간부터 노아는 숨이 턱하고 막히고 일분에 한 여섯번정도만 숨을 쉽니다. 집에서도 유별나다고 하지만 노아는 더러운 건 딱 질색입니다. 먼지도 그렇지만 누구랑 밥 먹을 때도 찌개를 같이 먹는 것도 노아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숟가락을 하나의 뚝배기에 넣고 휘휘저어먹는걸 보면 으~~~ 정말이지 노아는 그 순간 수저를 탁하고 놓은채 온종일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노아 때문에 결국 집 식구들도 모두 조그만 그릇을 하나씩 옆에 놓고 뚝배기에는 들어먹는 수저 또는 국자를 놓고 먹습니다.
그런데 이런 노아도 어떻게 못할 때가 있습니다. 대구에 계신 할머니가 올라오시는 날에는 어쩔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는 쌈을 싸먹다 손가락에 묻은 된장을 입으로 빨아 드시고는 그 손으로 이것저것을 또 마구 싸서 노아에게 주십니다. 지난번에는 보신탕을 하시고는 노아에게 아무 말도 안하고 먹게 하려다 들키셨고 그래서 이제 노아는 할머니가 주시는 건 아무 것도 믿고 먹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2교시가 끝나는 종이 울립니다. 노아는 부리나케 3반 앞으로 뛰어갑니다.
아이들이 정신없이 떠들고 있습니다.
남자아이들은 뛰어다니고 여자아이들은 삼삼오오 뭉쳐서 정신없이 얘기하고.. 그러다가 노아는 그만 얼굴이 빨개져 버렸습니다. 바로 보러 갔던 그 여자아이가 노아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눈은 ‘난 네가 왜 왔는지 다 알아, 그리고 거기 왜 그렇게 서서 우리 반을 쳐다보는지도’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은경이는 노아가 무지 좋아하는 여자아이입니다. 얼굴은 하얗고 볼은 빨갛고 머리는 구불 구불 길고 색깔은 조금 노란빛이 나는 세상에서 제일 이쁜 아이입니다. 지난번에는 시험을 보고 옆 반과 시험지를 바꿔서 채점한 적이 있었는데 노아는 은경이 것을 기어코 찾아 일부러 점수를 많이 준 적도 있습니다. --- 근데 오늘은 그냥 보고 있는데 은경이도 노아를 보고 웃고 있습니다.
아, 노아는 갑자기 정신이 없고 가슴이 콩당 콩당 뛰는 걸 느낍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노아는 여전히 은경이의 웃는 얼굴만 생각합니다.
“노아아, 오늘 교회가야지. 수요일인데”
‘칫, 수요일인데 왜 교회를 가라는 걸까.’ 엄마는 좀 심하게 교회에 빠져있는 것 같다고 노아는 생각합니다.
밥 먹을 때 하는 기도도 모자라서 새벽에도 기도를 하러 가시고, 수요일에는 저녁예배를 우리 모두 데리고 가시는데 누난 꾀를 써서 잘 빠집니다.
‘오늘은 나도 절대 가지 말아야지’하고 노아는 생각합니다.
“엄마, 저 배가 너무 아파요. 약 좀 주세요.” 힛, 결국 엄만 노아를 놔두고 교회로 가십니다.
야, 이 쾌감. 노아네 집은 길게 생긴 복도가 있고 안방, 누나방, 그리고 아빠 서재가 있습니다.
물론 노아는 아빠 엄마랑 같이 잠을 자지만, 막상 다 가고 집이 텅 비니 조금씩 무서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래, 귀신은 불을 무서워한다고 그랬어’ 저기 탁자 위에 있는 팔각성냥이 눈에 들어옵니다.
엄마가 어제 사 놓으셨는지 성냥이 빽빽이 차 있어서 꺼내기도 힘듭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꾀병을 부린 건데 정말 노아의 배가 조금씩 아파 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건 엄마가 분명히 나 혼내려고 기도하셔서 그런 가부다..나는 하나님한테 벌을 받는거야’
노아는 성냥을 가지고 화장실을 들어가서 앉습니다. 성냥을 아래에 놓고 하나를 꺼내서 불을 붙이고 또 하나를 꺼내서 불을 붙이고... 불장난은 언제나 재미있습니다.
‘햐, 화장실이 이래서 좋구나. 옆에는 물도 있고 타일에는 성냥 부스러기를 놔둬도 금방 치울 수 있으니까.’
노아는 갑자기 신이 나서 놀다가 무심코 성냥하나를 팔각성냥각 중간에 가져다 대었습니다.
화아악학~~ 팔각성냥 전부에 불이 옮겨붙었고, 아주 조용하게 터지는. 그 무수한 성냥개비들이 한꺼번에 타면서 아래를 쳐다보고 있던 노아의 얼굴로 불길이 확 덮쳤습니다. 노아는 순식간, 반사적으로 일어나 옆에 있는 물을 가져다가 부었습니다. 다행히 불은 꺼졌지만 얼굴이 따가워 오기 시작했다. 거울로 가서 얼굴을 본 노아는 깜짝놀랍니다. 얼굴이 마치 계란 귀신같았기 때문입니다. 눈썹도 다 타고, 앞머리도 다 타고, 얼굴을 벌겋게 벗겨진 게.
따가운 얼굴에 안티프라민을 잔뜩 바른채 잠자리에 누운 노아는 두 손 모아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죄송해요, 교회도 잘 나가고, 거짓말도 안하고, 불장난도 이제 하지 않을께요"
결국 다음날 노아는 누나가 그려준 눈썹을 붙이고 학교를 가야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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