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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에 노아가 배운 것들    2007/02/26 11:41 추천 0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dannewyork/1885160

    노아의 하루

 

 

노아아, 일어나야지. 학교 갈 시간 다 됐다.” 분주히 움직이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 또 아침이구나, 학교 가기 싫은데

마루에선 벌써 음식냄새가 나고 있었고 그 냄새는 방에까지 스며들어오고 있습니다.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 아니나 다를까 세수하러 가면서 안방을 슬며시 들여다보니 벌써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과, , 그리고 된장이 차려져 있습니다. 노아는 중학생이 될 때까지 다른 모든 집에서도 국과 찌게를 매일 함께 먹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노아네 집은 언제나 그렇게 국과 찌게가 함께 나왔습니다.

 

욕실에 들어가 잽싸게 고양이 세수를 했습니다. 엄만 항상 귀 뒤하고 목을 닦으라고 하셨지만 그건 죽기보다 싫었는데 가장 싫었던 건 목을 씻으면 항상 목가의 옷이 젖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하고 씻을 수 있을까’, 노아는 궁금합니다.

세면대 위에 벽에는 아빠, 엄마, 누나, 노아의 차례대로 칫솔이 걸려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빨 닦으랬으니까 닦아야지고양이 세수를 한 후 배가 고파오는 것을 느끼는 노아는 이빨을 대충 닦지만 갑자기 "잘 닦아야 다시 주사맞지 않는다"하신 치과선생님 얼굴이 떠올라 다시 야무지게 칫솔을 잡습니다.

 

방안에 들어가니 이미 다들 앉아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 모두 기도하자,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이렇게 먹을 것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노아를 오늘도 아버지께서 잘 지켜주시고 이 밥 먹고 힘내서 공부 잘하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늘은 아빠가 기도하는 날입니다. 노아는 아빠가 기도할 때가 제일 좋습니다. 짧게 하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할 때면 정말이지 죽어버릴 것만 같습니다.  왜그리 오래하는지, ‘해도 어떻게 그렇게 말이 끝없이 나오는 것일까노아는 궁금합니다. 하루는 기도하다가 눈을 뜨고 엄마를 본 적이 있습니다. 어디에 써놓고 하는 것은 아닌가 확인하려고 말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보아도 엄마 손에도 그리고 앞치마 옆에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고추어딨어, 고추? ”

, 참 또 깜빡했네요. 잠깐만 기다리세요아버지는 고추없인 아무 것도 안 드시는 분입니다.

왜 매일 그걸 찾으실까, 창피하게스리’, 노아는 생각합니다.

한번은 아빠를 따라한다고 고추를 한 입 베어먹었다가 노아는 죽을 뻔 했습니다.

기도 했지만 결국 목에 고춧가루가 끼어서 불이 난 걸 끄려고 물을 한 대접이나 먹고 또 배가 터져 죽는 줄 알았습니다.

노아는 결국 아빠가 한다고 다 옳은 일은 아니라는 것을 그 날 배웠습니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걸어서 정확히 7분이 걸립니다. 아버지께서는 노아에게 항상 쎄븐이 럭키넘버라고 하십니다. ‘럭키가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좋은 것임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항상 웃으시면서 그 말씀을 하시니까 말입니다. 테레비를 봐도 그런 선전이 있는 걸 보면서 노아는 내가 행운아이긴 한가보다라고 생각합니다. 노아네 집은 좀 높은 곳에 있어서 집을 나서면 저 먼 아래 학교가 보입니다. 보이긴 해도 그 사이 구불구불한 길을 걸어가는 건 힘든 일입니다.

그냥 슈퍼맨처럼 확 일직선으로 날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노아는 마음속으로 벌써 망또를 입고는 앞 팔을 주욱 편 채 날아가고 있습니다.

 

학교는 긴장의 연속입니다. 정문에 들어서기 전 주번누나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고, 들어서면 노아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먼지가 엄청나게 날립니다. 모르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 햇살이 창사이로 들이비추면서 먼지들이 연기처럼 촤악 펼쳐집니다. ‘우악, 저걸 내가 다 마신다니그 순간부터 노아는 숨이 턱하고 막히고 일분에 한 여섯번정도만 숨을 쉽니다. 집에서도 유별나다고 하지만 노아는 더러운 건 딱 질색입니다. 먼지도 그렇지만 누구랑 밥 먹을 때도 찌개를 같이 먹는 것도 노아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숟가락을 하나의 뚝배기에 넣고 휘휘저어먹는걸 보면 으~~~ 정말이지 노아는 그 순간 수저를 탁하고 놓은채 온종일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노아 때문에 결국 집 식구들도 모두 조그만 그릇을 하나씩 옆에 놓고 뚝배기에는 들어먹는 수저 또는 국자를 놓고 먹습니다.

 

그런데 이런 노아도 어떻게 못할 때가 있습니다. 대구에 계신 할머니가 올라오시는 날에는 어쩔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는 쌈을 싸먹다 손가락에 묻은 된장을 입으로 빨아 드시고는 그 손으로 이것저것을 또 마구 싸서 노아에게 주십니다. 지난번에는 보신탕을 하시고는 노아에게 아무 말도 안하고 먹게 하려다 들키셨고 그래서 이제 노아는 할머니가 주시는 건 아무 것도 믿고 먹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2교시가 끝나는 종이 울립니다. 노아는 부리나케 3반 앞으로 뛰어갑니다.

아이들이 정신없이 떠들고 있습니다.

남자아이들은 뛰어다니고 여자아이들은 삼삼오오 뭉쳐서 정신없이 얘기하고.. 그러다가 노아는 그만 얼굴이 빨개져 버렸습니다. 바로 보러 갔던 그 여자아이가 노아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눈은 난 네가 왜 왔는지 다 알아, 그리고 거기 왜 그렇게 서서 우리 반을 쳐다보는지도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은경이는 노아가 무지 좋아하는 여자아이입니다. 얼굴은 하얗고 볼은 빨갛고 머리는 구불 구불 길고 색깔은 조금 노란빛이 나는 세상에서 제일 이쁜 아이입니다. 지난번에는 시험을 보고 옆 반과 시험지를 바꿔서 채점한 적이 있었는데 노아는 은경이 것을 기어코 찾아 일부러 점수를 많이 준 적도 있습니다.  ---  근데 오늘은 그냥 보고 있는데 은경이도 노아를 보고 웃고 있습니다.

, 노아는 갑자기 정신이 없고 가슴이 콩당 콩당 뛰는 걸 느낍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노아는 여전히 은경이의 웃는 얼굴만 생각합니다.

노아아, 오늘 교회가야지. 수요일인데

, 수요일인데 왜 교회를 가라는 걸까.’ 엄마는 좀 심하게 교회에 빠져있는 것 같다고 노아는 생각합니다.

밥 먹을 때 하는 기도도 모자라서 새벽에도 기도를 하러 가시고, 수요일에는 저녁예배를 우리 모두 데리고 가시는데 누난 꾀를 써서 잘 빠집니다.

오늘은 나도 절대 가지 말아야지하고 노아는 생각합니다.

 

엄마, 저 배가 너무 아파요. 약 좀 주세요.” , 결국 엄만 노아를 놔두고 교회로 가십니다.

, 이 쾌감. 노아네 집은 길게 생긴 복도가 있고 안방, 누나방, 그리고 아빠 서재가 있습니다.

물론 노아는 아빠 엄마랑 같이 잠을 자지만, 막상 다 가고 집이 텅 비니 조금씩  무서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래, 귀신은 불을 무서워한다고 그랬어저기 탁자 위에 있는 팔각성냥이 눈에 들어옵니다.

엄마가 어제 사 놓으셨는지 성냥이 빽빽이 차 있어서 꺼내기도 힘듭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꾀병을 부린 건데 정말 노아의 배가 조금씩 아파 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건 엄마가 분명히 나 혼내려고 기도하셔서 그런 가부다..나는 하나님한테 벌을 받는거야

노아는 성냥을 가지고 화장실을 들어가서 앉습니다. 성냥을 아래에 놓고 하나를 꺼내서 불을 붙이고 또 하나를 꺼내서 불을 붙이고... 불장난은 언제나 재미있습니다.

, 화장실이 이래서 좋구나. 옆에는 물도 있고 타일에는 성냥 부스러기를 놔둬도 금방 치울 수 있으니까.’

 

노아는 갑자기 신이 나서 놀다가 무심코 성냥하나를 팔각성냥각 중간에 가져다 대었습니다.

화아악학~~ 팔각성냥 전부에 불이 옮겨붙었고, 아주 조용하게 터지는. 그 무수한 성냥개비들이 한꺼번에 타면서 아래를 쳐다보고 있던 노아의 얼굴로 불길이 확 덮쳤습니다. 노아는 순식간, 반사적으로 일어나 옆에 있는 물을 가져다가 부었습니다. 다행히 불은 꺼졌지만 얼굴이 따가워 오기 시작했다. 거울로 가서 얼굴을 본 노아는 깜짝놀랍니다. 얼굴이 마치 계란 귀신같았기 때문입니다. 눈썹도 다 타고, 앞머리도 다 타고, 얼굴을 벌겋게 벗겨진 게.

 

따가운 얼굴에 안티프라민을 잔뜩 바른채 잠자리에 누운 노아는 두 손 모아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죄송해요, 교회도 잘 나가고, 거짓말도 안하고, 불장난도 이제 하지 않을께요"

 

결국 다음날 노아는 누나가 그려준 눈썹을 붙이고 학교를 가야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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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신자들 (2장)    2006/07/31 11:49 추천 2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dannewyork/1312079

 

미련은 같은 곳을 서성거리다. 

 

 

몇 년 전이었을까바닷가를 서성거린 적이 있었다. 다만 그녀는 그 곳이 아닌 수천마일 밖 다른 나라에 있었다. 미련이었다. 미련의 주체는 언제나 시간이며 목적어는 자신이다. 미련은 나약함이 아니라 마지막 남은 양심이며 시간에 대한 이별사이다. 난 그녀와 그리고 내가 나란히 있던 바닷가 앞 정원벤치에 앉아 사흘을 보냈다. 그 때 우리 눈 앞에 있었던 바다만이 여전히 변하지 않은채 나그네와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신이 들었을 때 즈음 난 햇살 아래에서 두통을 느끼고 있었다. 3일째 나는 이 곳 이스트빌리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요일 아침은 한적하다. 대낮이지만 거리에는 사람이 몇 보이지 않는다. ‘빛이 너무 밝다’, 무한한 어둠의 가능성을 산산히 조각내버리는 빛 속에서 나는 이내 무료함에 빠진듯 중얼거렸다. 길 옆 문이 열리며 어린 아이를 손에 잡고 걸어나오는 여인, 그녀의 배는 불러있고 그들은 쉴 새 없이 웃어댄다. 그들의 웃음이 낯설다.  

 

St. Marks 책방이 보인다. 하지만 난 그 곳으로 가지 않는다. 미련은 그 주위를 도는 것만으로 충분히 힘들다. 건너편을 보니 정원이 있는 스타벅스가 보였다. 바람이 불었다. 나를 부르는 것 같다. 조그만 에스프레소를 한 잔을 끌어놓고 한 가운데 앉는다. 마법에 걸린 듯 일요일 아침 주위로 사람들이 앉는다. 그들은 조용히 신문을 보고 있을 뿐 자신의 평화를 조용히 다루겠다는 듯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새 두 마리가 내 주위로 왔다. 바게뜨를 떨어뜨렸기 때문인데 이는 순전히 실수였다. 나의  굶주린 손은 며칠 동안 가방속 딱딱하게 굳어버린 빵을 꺼내는 순간 흥분했음에 틀림없다. 쪼개진 바게뜨의 반이 떨어져버린 것이다. 앞 쪽 펜스에 커다란 사인이 보였다. ‘Do Not Feed Pigeons’(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 따라서 난 그 빵을 집었들어 테이블위에 놓고는 옆 사람이 남기고 간 뉴욕타임즈로 빵을 덮는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생각을 해보아도 이해가 가지 않는내가 던지는 빵은 비둘기에게 생명이 될 수 있는데 왜 사람들은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고 할까. 새들의 뛰어난 번식력에 위협을 느끼기 때문일까. 나의 우둔한 머리는 햇살아래서 더욱 작아지고 숨쉬지 못한다.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고보니 비둘기들은 언젠가부터 인간의 큰 적이 된 셈이다. 그들의 발과 부리가 징그럽다 하여 미움을 받고, 모래를 집어먹는 다하여 지저분하게 취급당하며, 도시 사방를 허옇게 만드는 배설로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이제 우리 인간은 적극적이고 전략적으로 그들을 죽이기로 하였다. 전기충격 장치를 달아 발을 자르기도 하고, 지붕마다 바늘과 같은 침들을 수도 없이 꽂아 찔려 죽게 한다. 이제는 항상 눈이 배울 수 있도록 곳곳에 사인을 달아 홍보를 하며, 먹이라는 근본적인 생존의 영역까지 몰수하였다. 

 

속에서 무엇인가 부글거린다. 난 신문을 젖힌 후 커다란 빵 덩이를 다시 집어 바닥에 던진다. 주위에 있던 비둘기 대여섯마리가 몰려들어 열심히 먹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모두 주의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강력한 非同意의 눈빛으로 나를 응시한다. 그들은 여전히 나에게 동의를 요구하지만, 난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했다. 내가 빵을 던지는 순간 인간은 나를 비둘기의 편으로 몰아버렸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난 생명의 편에 선 것일뿐, 나의 힘없는 몸짓하나로 누군가 생존해 나갈 수 있다는 건 옳은 일이 아닌가. 인간은 생존을 위해 별 짓을 다하지 않는가. 훔치고, 상처주고, 살해하며 몸을 판다. 순간 비위가 상했다. ‘난 기꺼이 새의 편이 되겠다’, 남은 조각마저 땅을 향해 던졌다. 이에 대하여 내가 동의를 구할 이유가 없다. 떨어진 빵 조각은 새들에 의해 삽시간에 없어지고 사람들이 인간으로서 주제를 넘은 나에 대해 관심이 헤이헤질 무렵 누군가 나에게 와서 말을 걸었다.

 

담배불을 빌릴 수 있을까요?”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그녀의 허벅지였다. 커다란 키에 입은 짧은 반바지, 그녀의 얼굴이 이내 눈 앞으로 들어와 앉았다. “미국에서는 담배피우는 것도 새 모이를 주는 것 만큼이나 위험한 일이지요하얀 얼굴에 짧은 금발머리를 한 젋은 여자는 하얀 운동화를 신고 나를 향해 웃었다. 초록색의 눈동자가 깨끗했다. 난 그녀에게 불을 건네주었다. “하나 필래요?” 그녀는 선뜻 나에게 담배를 권하고 나는 받아들인다. 하나의 담배가 타들어가는 동안 나는 여전히 말을 건네지 않고 있다. 나의 무반응에도 아랑곳 않고 그녀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는 카키색 가방에서 책을 노트북을 꺼내어 놓는다. 그녀가 담배를 다 피고 난 한참 후까지 난 담배를 물고 있는데 이는 풀 수 없는 미스테리 중 하나이다. 왜 담배는 나에게로 오면 한참 타들어가는가.. 담배를 다 피고 난 후 난 그녀에게 말했다, “고마와요”. 나의 눈을 들여다 보던 그녀의 눈은 잔잔하다. 그녀는 다시 자신의 노트북을 응시한 채로 나에게 말을 건넨다. “당신, 특별한 사람이군요

 

우리는 서로의 다른 세상 이야기로 나누었고 난 이내 행복해졌다. 비둘기에 대해, 사람에 대해, 삶과 예술에 대해 우리는 두서없이, 그러나 편하게 말을 나누었다. 그녀의 태도는 성숙했고 흥미로왔다. 나는 존재를 충실히 이루고자 하는 인간의 의도, 상대방 존재의 의미와 영향에 대해 이야기를 말한다. “이방인(L’Etranger)에 보면 이런 얘기가 있어요. 집을 떠나온 지 오래된 어느 남자가 결국 자수성가하여 성공한 후 고향으로 돌아가지요. 여전히 힘들게 여관에서 일하고 있을 사랑하는 엄마와 누이를 생각하니 더욱 감회가 새로왔어요. 손님으로 가장하여 여관에 들어가 하루를 자고 다음날 놀래켜주어야겠다 생각했어요. 하지만 너무 오랫만인지 엄마와 누이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고 그날 밤 망치를 가지고 방에 몰래 들어와 그의 머리를 내려쳐 죽였어요. 이 이방인의 행색이 부유해보였기 때문이예요. 남편과 함께 온 부인이 다음날 아침에 오고 그들에게 이야기를 전했어요.

당신의 아들이 어제 당신을 만나러 이 곳에서 잤다라는 사실을. 그 소리를 들은 엄마는 목을 매달았고 누나는 강물에 몸을 던졌어요.” 엊그제 사서 읽은 이방인을 인용하며 난 그녀에게 질문했다. “이것이 과연 누구의 잘못일까요. 까뮈의 말처럼 처음부터 손님으로 가장했던 아들의 거짓인가요, 아니면 자신의 자식이자 형제도 분간하지 못한 모녀의 책임인가요. 아니면 그의 돈을 뺏기 위해 쳐 죽였던 도덕성(人倫)의 부재때문인가요?”

 

나를 한참 들여본 그녀가 나에게 던진 건 답이 아니었다. “당신, 참 흥미로운 사람이군요그녀는 이 이야기를 기억한다 하였다. 하지만 그런 질문을 들어보지는 못하였다고 말했다. 결국 그녀의 답은 듣지 못하고 우리는 또 다른 이야기를 나눈다. 난 루이즈 부르주아즈의 천정으로 뻗은 사다리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1942년엔가 그렸던 연필뎃셍 있잖아요?”

 

그녀는 진지하게 대답해준다, “그 작품이라면 He Disappeared into Complete Silence라는 것일거예요, 1947년作으로 알고 있어요. 루이즈부르주아 여사는 1940년대 말에 Painting을 그만하기로 마음 먹었는데 그림이 가져다 주는 현실성(level of reality)가 과히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어요그녀는 참으로 친절히 그러나 열정적으로 루이즈에 대해 설명해준다. 이제 그녀의 시선을 내가 가지고 그녀를 바라본다. 가만히 듣고 있는 나를 보고는 멋적은 듯, 그녀는 콜롬비아大에서 문학비평을 강의하고 있어 알게 되었다고 설명해준다. 물론 난 그 제목까지 기억하진 못하였다. 어차피 잠시 보고 유령처럼 사라진 책이 아닌가. 더구나 난 이름이나 숫자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니 부끄러울 것도 없다. 에스프레소 두 잔을 비울 때까지 그녀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페미니즘에 대한 그녀의 관심을, 그럼에도 겪었던 열병같은 사랑과, 지금 기르고 있는 고양이에 대한 특별한 애정까지..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마음의 문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나도 그녀를 보고 웃는다. 서로에 대한 경험은 에스프레소 두 잔의 시간이지만 우리의 시간은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았다. 페미니스트가 얼마 섹시할 수 있는가, 그녀는 무한한 매력을 두 눈에 담고 있다. 난 그녀를 들여다 보며 며칠 전 이 부근 서점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바르뜨와 까뮈와 내가 잃어버린 독신자들(Bachelors)‘란 책으로 인해 내가 가장 아끼던 책방의 빛깔마저 변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책에서 보았던 마펠토프의 사진과 신디셔먼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들이 상실감에 더욱 무게를 주었다고 말했다. 

 

순간 다시 눈을 들어 그녀를 보니 말없이 반짝이던 초록색 눈이 당황한 듯 커져 있었다. 나는 말을 멈추었다. 우리는 한동안 그렇게 말을 멈추었지만 그녀는 나를 계속 바라보고 있다.

  

 

잠시 후 젖은 그녀의 눈가에 잔잔한 미소가 어울렸다. 안도한 나에게 그녀가 조용히 말을 건넸다.

 

 

                                         만나서 반가와요. 내 이름은 로즈라고 해요.”

 

 

                                                                                 (계속) 

 

 

 

 

뉴욕의 마이스그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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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스크랩]    독신자들 1장.    2006/07/20 01:49 추천 1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dannewyork/1282465
 원문출처 : Diane Arbus의 사진을 본 날
 원문링크 : http://cafe.chosun.com/club.menu.bbs.read.screen?p_club_id=orange&p_menu_id=10&message_id=339252

 

호감은 하루를 넘기지 못한다.

 

하루가 되었을 뿐인데 그 새 몸이 달아 올라왔다눈 앞에 두 권의 책이 있다.   세번째 책을 찾는다. 'Bachelors'  때로 낯선 책이 가져다 주는 감흥은 신비롭다. 20년간 살던 동네에서 여지껏 보지 못한 길을 발견한 것 같은 느낌... 어젯밤 난 그런 느낌으로 그 길에 서 있었다.  

 

11, 뉴욕의 East Village.

첼시의 대기 속에서는 샴페인내가 역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이 곳으로 온다.. 이 두 곳은 눈으로 보이는 모든 것이 다르다. 주욱 곧게 뻗은 길로 가다 내려 비를 맞으며 5블럭을 걸었다. 몇 달전 비 오는 날 죽었던 젊은 여인이 생각났다. 본 적도 없는 사람이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아팠다. 세상이 떠들석하게 그 죽음에 대해 보도하고 있던 날, 그 날에도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이스트빌리지는 첼시보다 불빛이 적다. 흐느적거리며 거리를 걷다 일본편의점에 들어가 스파게티를 먹는다편의점 스파게티는 넉넉한 여유를 준다일상과 다르다는 여유,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여유롭게 먹고 난 후 박카스 한 병을 땄다. 이건 편의점 식사의 완결점이다무어라 모를 일본글자로 박혀있는 병에는 두가지 단어만 이해할 수 있다. 'Energy' 그리고 '~藥品會社'. 에너지란 마음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고 마음은 눈이 지시하는 것이다. 에너지드링크를 한숨에 털어넣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검정색 거리를 걷는다빨간 눈을 가진 인간들이 계단에 앉아 있다. 기다렸다는 듯 그들은 나를 응시한다. 나도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눈을 떼지 않는 건 오해를 살 만한 사진가의 못된 버릇이다. 하지만 난 사진가의 눈으로 그들을 보지 않는다. 인간을 보는 눈에는 애잔함만이 있을 뿐.

 

자세히 보니 그들의 눈은 고정되어 있다자신의 세계속에 응시되어 움직이지 않는 눈들그들은 그 세계속에 갇혀 나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니, 나오려 하지 않으려는지 모른다. 그러한 눈들을 무수히 지나 St. Mark's 서점에 다다르다.  

 

자정에 문을 닫는 유일한 서점에는 몇 명의 나그네들이 서성거린다. 밤의 산책과 함께 이 곳을 즐겨찾는 이유는 흥미로운 책들이 맛깔스럽게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시신경은 빛의 밝기에 다르게 반응하나보다. 모든 것이 문을 닫은 어둑한 밤이 되어야 마음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보면. 우리는 두 개의 세계에서 산다. 정반대의 세계, 자신의 변화에 놀라면서도 인간들은 천재적인 절제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제한된 빛을 나누어 받아 반사되는 글은 눈을 통해 뇌에 정서에 인각된다이 밤도 그랬다. 이 곳은 흥미로운 책들이 한 권씩만 꽂혀 있다. 벽을 덮는 전집들도 없다. 어릴적 아버지 서재속, 수십권씩 쌓여있던 전집들 속에서 난 무서움에 울곤 했었다. 죽음이 피어오르는 것 같은 그 좁은 방, 그 방에서 나는 첫경험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소름이 끼치는 일이다. 그 때문인지 난 그녀를 결코 좋아한 적이 없다. 그 때 그 방의 책내음은 - 결코 - 나에게 위로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 곳은 다르다까뮈의 이방인과 바르뜨의 Mythologies가 편한 향기처럼 눈으로 들어온다. 새로 번역되었다며 호들갑을 떠는 파랑표지의 '이방인'을 보며 프랑스문학에 대해 면역이 모자란 미국인들이 보였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Barthes의 책그는 죽었으나 여전히 살아있는 몇 사람 중 하나이다그의 자연스러운 문체는 입술을 깨물고 무엇인가를 쓰려는 다른 작가들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큰 축복이다, 있는 자기를 몇 줄씩 쓰고, 그로서 전체의 자신을 그려내는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계획에 능한 마케터작가들과는 다르다. 이들이 천재다.

 

그리고 Bachelors. 하늘색 책장위 낯선 저자의 이름을 보였다. Rosalind Krauss. 문학비평란에 꽂혀 있는 조그만 책을 한 장씩 넘긴다. 우연히 펼쳐진 책의 중앙에 천장으로 뻗은 루이즈부르주아즈의 사다리가 보였다. 마지막 그녀를 만났을 때 96세의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제대로 서지 못하던 주름진 얼굴 속으로 번쩍이던 눈, 난 그녀를 기억해내었다.  

 

5 장으로 만들어진 책에는 주로 몇 유명한 예술가들의 작품, 그들의 사진과 이들을 기준으로 적은 작가의 생각을 나열되어 있다. '귀엽다그게 내가 받은 첫 인상이다. 그녀의 문체며 내용은 가볍지 않으나 바로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 책을 보며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때 희열을 느낀다. 새로운, 소박한 책 한권에 대한 첫인상이다. 

 

 

그 때였다. 누군가 나의 어깨를 잡아 흔든다많이 듣던 음성과 회색빛 눈. Breda였다. 아이리쉬계의 그녀는 뉴욕으로 온지 20년이 된 50대의 독신이다그래, 얼마전 빌리지로 이사갔다는 그녀의 말을 떠올랐다. 들썩놀란 어깨를 잡으며 그녀는 웃고 있다. 뉴욕에 처음 왔을 때 32인치였다던 가슴은 과식증으로 40인치가 넘는다 했다. 술과 단 것은 매일 입에 달고 살았던 그녀는 얼마전 Dumbo의 디렉터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며 호들갑을 떨었었다.  사탕을 씹고 있는 입에서 술냄새가 밀려왔다. "여전하군" 대수롭지 않은듯, 방해를 받지 않겠다는 나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생글웃으며 비쥬를 했다.

 

중요한 손님을 만나고 오는 길이라 했다. ‘세상의 모든 술과 남자를 사랑한다’했던 그녀 아닌가. 뉴욕의 예술계에서 느낀 것은 에로티즘이 깊이 스며들어 있다는 점이다. 당신은 기꺼이 몸을 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어쩌면 이러한 그녀의 취향조차 만들어진 acquired taste일 지 모른다. ‘누가 물어봤나?’ 여전히 난 방해를 받고 싶지 않다. 하지만 오늘따라 할 말도 어지간히 많다. 술 취한 여자의 입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 중 하나이다. 페스티벌처럼 말의 폭죽이 끊이지 않는다.

 

내 손에 들린 책 세권을 뺏어 보더니 그녀는 하늘색 책을 집어내며 말한다. "이런 책은 이혼해도 헤어저도 누구도 가져가지 않을걸" 그녀는 계속해서 비꼬아댄다빈 손으로 멍한채 서 있는 내 머리속에는 한가지 생각뿐이다. ‘탈출하자, 무슨 수를 쓰든간에…’  산책의 여유는 침해받고 싶지 않다.

 

에스프레소가 마시고 싶었다. 그녀는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듯, 하늘색 책을 쥐고 보고 있다. 난 가봐야겠다며 다른 책들을 잡고는 나온 것이다.    

 

 

어제의 끔찍한 악몽이 되살아난 건 오늘 이 곳 St. Marks Bookstore로 돌아왔을 때다. 그 책이 없어진 것이다. K란을 뒤지고 R란을 뒤져도 없다. 급한 마음에 난 주인에게 달려가 물어본다. “이 책은 어제 팔렸고 MIT에서 나온 한정판이라 다시 주문하기도 어렵습니다”

 

상실감은 인간에게 치명적 슬픔이다. 당신은 책 한권으로 느낄 수 있는 절망을 아는가. 난 절망했다. 눈 앞 세상의 色이 한 순간에 모두 변한다. 서점을 빽빽히 채운 모든 책들이 쓰레기로 보였다. 알 수 없는 무명의 저자 한 명으로 인해, 얋은 하늘색 책 한권에 의해, 아니 무엇보다 내 손에 쥐고서 놓쳤던 자신에 대해 절망한다. ‘유약한 인간, 멍청이’, 결국 그건 나의 의지도 아니었지 않은가. 다른 사람으로 인해 내가 만날 수 있던 새로운 세상을 버린 셈이다. 예상했던 밤의 산책의 완결된 행복은 순식간에 비극적 어두움으로 모습을 바꾸다.

 

세상의 모든 건 너무 빠르게 변한다. 언젠가 워싱턴파크에서 꽃 한송이를 찍은 것이 기억났다. 한 밤 중 환하게 빛나던 하얀 꽃, 난 어딘가 아쉬운 마음에 다음날 밤에 간 적이 있었다. 단 하루의 시간 속에서 꽃은 시들어져 있었고 어제의 모습이 없었다. 단 하루로 받은 상실감은 시스템속에 적체되었고 내 눈은 그 꽃의 모습을 잊은 적이 없다.

 

더 이상 서 있을 기운이 없다. 이 곳은 더 이상 위안의 장소가 되지 못했다. 까뮈도 바르뜨도 슬픔을 막진 못한다. 뛰쳐나왔다. 여전히 비가 쏟아지고 있다.

더 이상 비를 가릴 이유가 없었다.

 

                                                       패잔병은 모자를 벋어버린채 집으로 걷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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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스크랩]    엑스포인트 (Point X)    2006/07/20 01:48 추천 0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dannewyork/1282463
 원문출처 : Diane Arbus의 사진을 본 날
 원문링크 : http://cafe.chosun.com/club.menu.bbs.read.screen?p_club_id=orange&p_menu_id=10&message_id=333889

***

 

바람 부는 날,

발걸음이 멈추는 곳이 있다.

4거리 중심에 선 나의 '엑스포인트', 자유의 정점,

그 곳에서 모든 바람은 나를 향해 모이고 내 주위로 돈다.

 

***

 

오늘 아침도 예외가 아니다.

간 밤의 폭풍우가 흩어지며 해가 저 편에 기대고 있었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이 아침엔 왠지 그들의 얼굴에 기쁨이 가득하다.

 

머리를 휘날리며 걷는 사람들,

자전거를 타는 젊은 이는 희망의 힘찬 페달링(pedaling)을 하며,

노란 택시는 황금색으로 빛나고 달리며,

짐을 끄는 사람도 땀을 흘리지 않는다.

숙녀와 함께 걷는 강아지마저 웃고 있다.

 

'바람이다.'

나를 자유케 하는 바람,

14로/8번가의 지하로 들어가려던 발걸음을 멈춘다. 

바람은 나의 주위에 와 온 몸 구석으로 스며든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추어 꼼짝하지 않았다.

두 손을 양 허리 아래로 내리고 하늘을 향해 얼굴을 든다.

이 곳의 모든 기운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듯,

나는 엑스포인트에서 꼼짝 않고 있다.

 

눈을 감았다.

저 멀리 빌딩 위 초록색 가든이 느껴지고,

그 아래 지나는 사람들의 마음 속, 찰랑거리는 시냇물이 보인다.

기쁨의 전율이 흘렀으나 난 발꿈치도 들썩거리지 않았다.

'나의 자유를 단 한방울도 흘리고 싶지 않다.'

 

눈을 떴다.

내 눈 앞에서 지난던 모든 이들이,

나와 똑 같은 표정으로 눈을 감고 팔을 내린채

자리에서 꼼짝없이 서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그들의 얼굴에는 평화의 기운이 넘치고,

'고요하나 활기차다.'

그 순간

햇살의 광선이 엑스포인트로 비추었고

우리는 모두 10센티 이상씩 떠 있다.

 

 

나의 자유는, 

엑스포인트를 충분히 덮을 만큼,

그 안의 당신을 자유롭게 할 만큼,

흥겨웁게 움직인다.    

 

난 당신을 뒤로 한 채  - 미소를 머금고 -  

땅 속으로 들어갔다.

 

 

 

뉴욕의 마이스그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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