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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Chambre d'Ech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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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e grey (dannewyork)
A Place for Blessed Outsiders. Echoes..Reflections..and yourself. 한글은 조선까페 http://cafe.chosun.com/orange 에 있습니다. micegrey@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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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스크랩]    몸 (corp)    2007/01/12 14:02 추천 0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dannewyork/1762871
 원문출처 : Short Happy Life of Mice Grey
 원문링크 : http://cafe.chosun.com/club.menu.pds.read.screen?p_club_id=orange&p_menu_id=7&message_id=305515

 

하나님은 나에게 약한 몸을 주었다.

 

공원의 차가운 바람은 단 한번만으로 나에게 치명적이다. 초저녁에 잠을 자고나서는 더 좋아지지 않았다.

잠도 나에게는 약이 아니다.

밤새도록 계속되는 구토와, 어지러움, 심하게 끓어오르는 열과 두통.

'Well, it's a Jackpot!'

화장실에는 길다란 거울이 전혀 다른 모습의 사람을 보여주었다.

 

자다 일어나다를 몇 번이나 했을까. 이미 흉하게 일그러진 Futon 침대는 나의 적이 된 지 오래다.

밤새도록 나의 몸을 쥐어짜듯, 그는 불만이 많았다.

누가 그랬던가,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으니... 아프면 아픈데로 신의 은총을 기억하리라'하고.

 

하지만 난 약하다. 약해서 그의 은총도...기억하지 못한다.

아프면 그저 사라지고 싶다.

나의 침대도, 쉬~잉 차가운 바람을 내뿜는 창문도 모르는 곳으로...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에메랄드빛 바다,

수평선,

시끄러운 갈매기도 없는 조용한 나만의 바다가 있는 곳,

나무그늘에는 Hammock 이 두 개 있고 난 생기로 빛나는 몸을 놓고 떠 있을 수 있는 곳.

햇살은 어떤 칙칙한 기억도 막아버리는 힘이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음식에 대한 욕심이 사라진 것, 

난 - 오랜만에 -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는 내 자신을 자랑스러워 할 뿐이다. 

 

 

 

뉴욕의 마이스그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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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스크랩]    파리 16구의 '잡화'상자    2007/01/12 14:00 추천 0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dannewyork/1762864
 원문출처 : Short Happy Life of Mice Grey
 원문링크 : http://cafe.chosun.com/club.menu.pds.read.screen?p_club_id=orange&p_menu_id=7&message_id=319908
 
날씨좋은 토요일 오후, 나는 16구에 있는 친구의 집에 들러 그동안 쌓아놓았던 짐을 풀어보기로 했다. 지하 창고로 가니 빨간 쥐약이 놓여있고 손바닥 만한 열쇠를 돌리니 두꺼운 나무문이 열렸다. 엄두가 나지 않을만큼 짐으로 가득찬 방. 가만히 서있다 조그만 상자 몇 개만 열어보기로 하고는 꺼내보았다.
 
나의 이름 석자와 '잡화'라는 설명이 적혀 있는 상자, 열어보니 참 여러가지 있다. 오래전 상자를 열어보는 일은 신비스럽다. 항상 나의 책상 서랍속에 있었던 조그만 물건들이 기억 저편에 묻혀있다가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나는건, 누군가 나의 얼굴을 향해 '그동안 어디갔다 왔니'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사진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사진 테이프, 고무접착제, 여행을 갔던 프랑스 남부의 지도, 뉴트로지나 바셀린, 수중일회용카메라 등이 튀어나온다. 좀 더 보니 동네어귀에 있는 허브가게에서 샀던 약물이 있었다. 향으로 치료하는 그 곳은 모든 것을 직접 처방하고 만드는데 병 위를 보니 'Anxiety'라고 써있다. 내가 그랬던가? 그리고는 비닐봉지에 쌓여 나온오래된 양복바지. 소위 잘 나가던 시절, 파리로 출장와서 샀던 Hugo의 부띠끄 옷들이다. 이제는 허리도 맞지 않을텐데 하면서 웃었지만 그래도 '다시 필요할 지 모르니' 하고 챙겨본다.
 
그러다가 문득 바닥어귀에서 나온 유리병 하나! 당신은 예상치 못한 무엇인가를 보고 반가와 소리쳐본 적이 있는가? 난 거의 소리를 질렀다. 그 유리병은 나폴리타나 스파게티소스가 들어있던 병이지만 지금 그 안에는 동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노란색의 구리빛이 역력한 것을 보니 모두 성띰(유로의 센트)짜리들이다.
 
파리에 와서 나는 거의 외식을 하지 않았다. 집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느라 항상 오후 늦게 나와야 했고, 외부에서는 커피만 마실 뿐이었지만 때로는 그마저 부담이 되었다. 집세내기도 모자른 지경이 아닌가? 담배도 갯수를 정해 나누어 피워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만나 식사를 해야만 했던 사람들과의 만남 마저도 나에게는 부담이 되었고 어쩌면 항상 정확히 나누어 내려는 나를 보고 그들은 '차가운 사람'이라 했을지 모른다. 물론 나의 사정을 아는 한 친구는 '먹는건 잘 먹어야 한다'며 몇번씩이나 밥을 사주기도 하지만, 모두가 빠듯한 파리에서는 이런 경우가 흔하지 않다.  소주 한 병도 16유로씩 하는 유럽땅에서 무얼 먹겠는가. 나는 이런 점에서 프랑스인들이 좋다. 그들은 돈에 대해 철저하나 동시에 관대하다. 무엇이든 외부에서 만나 푸짐하게 밥을 사먹어야 하는 우리와는 달리, 집에서 와인 한 병과 몇 조각의 치즈만으로도 훌륭한 만남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어쨋든 이제 이 커다란 유리병은 내가 파리에 있는 동안 모든 에스프레소를 책임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동전이 가득 찬 유리병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정말 무겁다. 난 두 개의 렌즈로 이미 무거운 카메라가방의 중간칸을 비운다. 그 곳은 필름이 들어있는 곳인데 필름은 다른 잡화백에 넣어버리고는 두 개의 렌즈 사이에 스파게티소스 병을 끼워넣었다. 다시 어렴풋이 생각이 났다. 그 때 내가 버리라고 했던 동전을 그녀는 유리병 안에 넣어주곤 했다. 유로짜리 동전은 넣지 말라고 했는데 이제 그 나머지 것들이 가득차 있었다. 동전을 모았던 그 아이는 조그만 걸 소중히 여기던 친구였고, 무겁고 커다란 가방도 아무런 말 없이 기꺼이 들고 다니곤 했다. 나도 그녀를 생각하며 어깨에 가방을 걸치고 카메라를 목에 매고 또 다른 잡화백을 들고 걷는다. 무거운 어깨만큼이나 마음도 든든해진다. 마치 무엇이든 살 수 있는 기분, 무게가 주는 여유...
 
즐거운 마음으로 72번 버스에 올라타 Chatelet역까지 왔다. 그 곳에 보니 예전 살 때 자주가던 까페 Sarah Bernhardt가 있다. 난 그 곳에 들어가 마음놓고 까페 한 잔을 시킨다. 2유로 10센트. 난 카메라가방을 열고 가운데 커다란 테이프로 덮여 있는 동전병을 열고는 20센트짜리 동전 9개에 10센트짜리 동전 6개를 꺼내 20센트의 팁까지 함께 놓았다. 동전이 많을 때는 1유로씩 쌓아놓으면 계산하기도 편하고 그리 많아보이지도 않는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확실히 다르다! 어제 Avenue Montaigne에서 마셨던 커피맛과는. 마음이 흐뭇해 웃으니 이상했는지 옆 자리의 사람들도 나를 보고 웃는다. 화장실에 내려가 창고에서 묻은 먼지도 닦아내었다(물론 hand sanitizer로 소독한 상태이긴 하나 물리적으로 씻어야 할 때가 있다). 감기가 걸리려는지 목이 조금 아파왔다.
 
그러고보니 오늘은 참 운이 좋은 날이다. 뜻하지 않은 보물스파게티병을 만나게 되었으니. 하지만 이 병은, 이제는 이 곳에 없는 단 한사람의 배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언젠가 나도(또는 나의 사진과 흔적이) 다른 이들에게도 먼 훗날의 배려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이 답답할 정도로 밝았던 토요일 오후, 난 무거운 가방을 메고 터벅터벅 걸어오며 난 오래전 그녀에게 감사했다.  '고마와'
 
 
 
이제 마지막 남은 중요한 한가지 변수는 '프랑스 출국시 공항세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파리의 마이스그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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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스크랩]    PARIS가 가르쳐 준 것들    2007/01/12 13:59 추천 0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dannewyork/1762858
 원문출처 : Short Happy Life of Mice Grey
 원문링크 : http://cafe.chosun.com/club.menu.pds.read.screen?p_club_id=orange&p_menu_id=7&message_id=321453

뉴욕입니다.

 

 

짧고 긴 파리에서의 여행은 저에게 몇 가지를 남겨 주었습니다;

 

- 부서진 몸

- 단단해진 다리

- 많지 않은 10여롤의 사진

- 파리 친구들의 우정

- 몇 개의 공모 및 전시

- 담배의 절제

- 배고픔   등 입니다.

 

약해졌으나 강해졌습니다. 벨빌집으로 오르내리는 192개의 계단이 커다란 이민가방의 무게와 함께 저의 오른쪽 어깨에 상처를 주었습니다. 통증이 심해 뉴욕에 와서 친구에게 보였더니 어깨가 빠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리는 강해졌습니다. 처음에는 헐떡 거리며 오르던 계단이 나중에는 수월해졌습니다. 

 

담배도 피지 않게 되었습니다.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 개피를 남겨왔습니다. 친구에게 주려고 그랬습니다. 따로 줄 선물이 없었는데 담배 한개피를 남겨 8일 정도 가지고 다녔습니다. 많이 참았지요. 제가 줄 선물은 그거 밖에 없다고 했는데 그래도 좋아하더군요. 고마운 일입니다.

 

사진은 욕심만큼 많이 찍지 못했습니다. '허기'라는게 우습게 방해가 되더군요. 게다가 마지막 주 부지간에 주머니에서 흘러나온 일주일짜리 지하철 패스가 분실되면서 움직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심한 감기몸살에 걸렸던 것도 일조를 했습니다. 그래도 제 속의 게으름이 가장 큰 이유겠지요.  

 

대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됩니다. 함께 살던 독일친구, 스페인 친구, 프랑스친구, 파리의 오랜 벗들, 나를 찾아 온 여러 예술가들에게서 정겨운 우정을 느꼈습니다. 낯선 나를 오랜 친구로 대하며 많은 이야기를 해주던 그들은 이제 나의 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여행 기간 중 공교롭게 겹쳤던 전시와 몇 개의 공모들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지만 뉴욕과 파리 친구들의 도움으로 결국 보내었습니다. 콜로라도의 갤러리와 덴버국제공항의 그룹전이 열렸는데 그 중 제 사진이 몇 장 있었고 이를 위해 담당자인 Grace와는 분주히 이메일을 주고 받았고 전시가 시작되었습니다. 공모 또한 A4지 한 장에 하나의 이미지를 프린트해 보냈어야 하는데 저는 한 장에 9개의 이미지를 달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가지고 있던 이미지의 크기가 작았기 때문인데 이 또한 저의 나태한 준비성 때문입니다. 그래도 보내었다는 충만감이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사람이 사는 이유, 생각해보셨습니까?

오늘 제가 말하는 이유는 본질상의 이유가 아니라 생활에 대한 이유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삶의 본질이 '자신을 찾는 것'일텐데 생각해보면 생활은 정반대의 것을 향해 돌진하는 코뿔소 같습니다. '내 주위 사람을 위해 사는 것' 말입니다. 그들에게 더 이상의 부담을 고통을 주지 않고 힘이 되고 싶은 마음.

 

요즘 들어 부쩍 생각하던 '사진을 그만두어야겠다'라는 생각, 그 이유가 무었일까...

처음에는 배고픔 때문인 줄 알았는데 파리에서 생활해 보니 그건 견딜만 합니다. 그보다 그게 부모이건, 자식이건, 친구이건,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다'는 바램, 그것이 이유입니다.  

 

     '손에 쥐고 있는 두 개의 눈을 기꺼이 던져 버리고 장님이 되는 것..'

 

 

오늘 아침,

마음만큼이나 텅빈 16 St./8Ave.의 스타벅스에서

저는 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뉴욕의 마이스그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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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스크랩]    나의 첫 공연 무대, 그리고 지금    2007/01/12 13:57 추천 0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dannewyork/1762848
 원문출처 : Short Happy Life of Mice Grey
 원문링크 : http://cafe.chosun.com/club.menu.pds.read.screen?p_club_id=orange&p_menu_id=7&message_id=298932

 

기억도 할 수 없을 만큼 오래 전,

빛과 소금의 컨서트를 보러 간 적이 있습니다.

동숭동의 극장,

그 날도 오늘처럼 눈발이 날렸던 것 같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던 때라 퇴근 후 바쁘게 정장차림으로 도착했습니다.

 

공연 중 그들이 마련한 퀴즈와 노래시키는 코너가 있었는데,

멤버 중 한 명인 장기호씨가 그러더군요,

"거기, 양복 입으신 분..나오시죠"

난감하더군요. 안 그대로 숙맥인 저는 혹시나 하고 다른 사람을 부르나 옆을 두리번 거렸습니다.

"맞아요, 거기 두리번 거리시는 분, 나오세요..."

 

앞으로 나갔습니다.

빛이 가득한 무대에서는 관객마저 잘 보이지 않고,

강한 조명만이 제 얼굴을 비춥니다.

"무슨 노래를 부르실거죠?"

제가 기억하는 노래라고는 이 노래 하나였기 때문에

"그대에게 띄우는 편지.."라고 하자,

작곡자인 장기호씨가 웃으며 그러더군요, "어, 그거 어려운 노래인데..."

 

아시겠지만 조용한 노래일 수록 미묘한 음색까지 보입니다.

선곡이 최상이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제가 좋아하는 노래 아닙니까.

가까스로 어렵사리 마쳤습니다.

제가 300명의 관중앞에서 부른 처음이자 마지막 무대였습니다.

 

세월이 지나,

이제는 반듯하게 다린 양복도, 반짝거리는 무거운 구두도 없습니다.

때로는 아침에 일어나 여기가 파리인지, 서울인지 몰라 식은 땀을 흘리며 깨기도 합니다.

그러면 이 음악을 틀고 조용히 무대를 생각합니다.

 

이제 무대에는 약간의 변화가 있습니다.

내가 마이크를 잡은 무대에는,

모든 관객 한 분 한 분이 - 언제든지 - 올라와 노래할 수 있습니다.

조명도 골고루 주어져 그들의 웃는 모습을 어둠 사이로 조금씩 보입니다.

아시죠..

이 공간이 저와 여러분의 무대라는 걸 말입니다.

비록 조금 떨리는 목소리더라도,

편안하게 들어주십시오.

 

공연이 끝날 때 까지는 말입니다.

 

 

 

                 ***

 

그대에게 띄우는 편지 _ 빛과 소금

 

이렇게 우린 멀리 있지만
그대의 모습 그릴수 있어


저 밤하늘에 우연히
그대에 모습이
내맘을 적시고 멀리 사라져


나그대와 함께 있을때 난 알 수 없었지.
무엇이 내게 소중한 것인지
언제나 그대와 있을때

난 깨닫지 못했지
내삶의 의미를


내마음속에 장미보다 더 귀한 그대를
내기억속에 영원히 남으리
나 그대와 함께 있을때 말할 수 없었지
무엇이 내게 소중한 것인지
언제나 그대와 있을땐

깨닫지 못했지
내삶에 의미를...


이렇게 멀리서 바라보니
모든걸 이해할것만 같아
나 그대 위해 모든걸 다 바칠수있어
오늘 밤도 두 손 모아 기도해

 

 

        ***

 

 

'때로는 가까이서 보는 사랑도 - '사무치게' - 그리울 수 있다'

 

 

 

 

 

a city named 'new.york.

dani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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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스크랩]    벽 이야기 하나 - 콜로세움의 벽    2007/01/12 13:55 추천 0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dannewyork/1762839
 원문출처 : Short Happy Life of Mice Grey
 원문링크 : http://cafe.chosun.com/club.menu.pds.read.screen?p_club_id=orange&p_menu_id=7&message_id=288288
 
약 한 달 전 저는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에 다녀왔습니다. KL이라고 불리우는 그곳은 저에게 호주에서 유학하던 학창시절 같은 Doman Hall이란 기숙사에 있던 친구를 기억나게 했습니다. 긴 머리의 그는 맨발에 항상 담배를 물고 다니곤 했지요. 그 친구 한 말 중 이 말이 기억나더군요 'don't tell me you take a shower once a day' (호주의 여름은 더웠고 그래서 불평한 적이 있었지요).
 
이런 조그만 기억말고는 저는 말레이시아와는 아무런 연관조차 없었습니다. 도착하여 커다란 두개의 빌딩이 하늘을 찌르는 페트로나스타워 앞에 숙소를 잡았습니다. 역시 덥더군요. 처음 이틀 그 빌딩과 연결된 KLCC 쇼핑센터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여름이면 다시 고개를 들던 천식때문에 몸이 안 좋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조용히 멈춰있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삼일째 물어 물어 여기저기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지도를 보고 혼자 어디 어디를 정합니다.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갑니다. 실망.. 제가 예상했던 곳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하기야 여행자가 자신의 생각에 여행지를 맞추려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닐지 모릅니다. 어쩌면 이건 저의 못된 습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시가 나에게 주는 vibe 10%는 저로 하여금 무언가를 기대하게 만들고 저는 그것을 찾아 다닙니다. 거리의 누군가가 시장지역에 가보는게 어떻겠냐고 말합니다. 그곳으로 걸어갑니다. 지하철 역으로 두 정거장 되는 멀지 않은 거리였으나 갑자기 폭우가 내립니다. 그들이 말했던 부띠끄풍의 shop들도 평화시장의 것보다 훨씬 낙후된 구석에 박혀 빛조차 들어가지 않는 곳들입니다. 떨어지는 빗속에서 카메라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투덜대며 종종걸음을 하며 뒤를 돌아봐도 택시들은 서지 않습니다. '그래 그냥 걷자...'
 
한 300미터 정도를 내려갔을까. 눈앞에 번쩍 들어오는 곳이 있습니다. COLISEUM CAFE. COLISEUM 극장 옆에 고풍스런 까페가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이상한 예지력이 있는지 모릅니다. 저는 그 장소를 본 순간 그 곳을 좋아하게 됩니다. 아주 허름한 3층의 건물중 1층은 까페이자 레스토랑이고 2,3층은 저렴한 모텔입니다. 그 까페 맞은 편 길에 서서 저는 사진을 몇 장 찍었습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허름한 건물이 빗속에서 휘청거리는 것 같습니다. 찻길을 가로질러 문을 언뜻 보니 닫혀있는 것 같더군요. 옆문으로 들어가려하니 어떤 사내가 서서 그 옆에 오줌을 눕니다. '흠...'
 
까페는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하나는 bar가 있는 까페와 벽을 지나 저쪽에는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곳은 KL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스테이크 레스토랑이라고 합니다. 1921년에 세워진 곳이니 가히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까페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시켰습니다. 젊은 참으로 가벼워보이는 중국청년이 하얀 가운을 입고 옵니다. 자세히 보니 가운은 더이상 그리 하애보이지 않더군요. 가져다 준 커피에서 발냄새가 나더군요. '내가 무얼 잘못했나'하고 피식 웃었습니다. 나의 정면으로는 까페의 바가 보입니다. Bar 너머로 그 청년과 아주 연로하신 할아버지 한 분, Bar의 오른쪽으로는 중년의 중국인, 그 중 한 명은 어릴 적 보았던 형사 콜롬보의 목소리와 아주 흡사한 그러나 아주 큰 소리로 말을 하고 있어 조용한 오후의 까페가 쩌렁쩌렁 울립니다. 긴 Bar 왼쪽의 줄로는 어떤 할아버지가 뒤를 돌아 내 쪽(정문쪽)을 보며 연신 코를 파고 있고, 그 옆에는 인도인으로 보이는 양복의 신사가 차를 마십니다. 그들을 그냥 보고 있어도 한 시간이 그냥 가더군요. 하지만 웬일인지 저는 사진을 찍지 않았습니다. 그건 제가 원한게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들을 바라보며 두 시간을 있었습니다. 제 테이블위에는 이미 커피는 가고 콜라가 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양 옆의 벽을 보았습니다. 그 벽들 ! 시간만이 만들 수 있는 벽위에 있던 그 흔적들 ! 그건 저에게 경외에 가까운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먼지의 흔적, 그 하얀색의 벽은 이미 누렇게 되어 있었고 그 위에 여러가지 알 수 없는 거무죽죽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갑자기 숨이 멎습니다. 그리고 아드레날린이 솓구치기 시작합니다. '이거다..내가 이 곳으로 이끌려 온 이유는 .. ' 하지만 저는 여전히 사진을 찍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매일 저는 그 곳으로 돌아옵니다. 4일 동안. 전 여전히 사진을 찍지 않았고 그들과 낯을 익히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같은 모양새로 여전히 같은 시간에 있었습니다. 신기하리만큼 같은 모양새.. 마치 그 벽과 함께 그 곳에 멈추어 있는 사람들처럼.  매일 저도 같은 자리에 앉아 Bar를 바라보며 2~4시간씩 있었습니다. 남들이 들어가보지 못한 시간으로 저는 서서히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어떤 그림안으로 들어가 앉는 듯한 느낌. 이제 그들은 나를 보면 조금씩 웃기도 하고 눈짓으로 아는 척도 합니다. 3일째가 되는날 저는 나오며 이 곳의 manager의 번호를 물어봅니다. Madame Chong. 그녀가 이곳의 operator라고 합니다.
 
다음날 저는 그녀와의 약속을 하고 아침 10시에 그곳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왠일인지 오늘은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일단 정문이 막혔고 그 위로 여러가지 공사건축물이 쌓여 있습니다. 옆문으로 들어가보니 까페는 열려 있지만 레스토랑 쪽은 이미 난리가 난 상태입니다. 공사를 하고 있더군요. 저는 부리나케 Madame Chong과 앉아 자초지종을 물어봅니다. 그녀의 말이, '우리는 새로운 얼굴이 필요합니다' 하더군요. 그녀의 말은 그 곳의 벽들이며 내장을 모두 공사하여 바꾸는 공사를 하는 거라는 말입니다. 저는 목이 바짝 말라오기 시작합니다. 저의 사진을 보여준 뒤, 저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했습니다.
 
"왜 이 아름다운 것을 바꾸려고 합니까. Coliseum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매력은 시간이며 추억입니다. 그건 무엇과도 바꾸지 못할 것이지요. 한 번 생각해보세요 사람들이 왜 이곳을 오기 원합니까. 전통이 있기 때문이며 그들은 이 곳이 맥도날드처럼 반짝거리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이방인이 와서 자기 레스토랑의 벽에 대해 연설을 늘어놓으니 이 아주머니도 기가 막혔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빙긋이 웃더니 '당신이 사진을 찍는다면 그럼 우리에게는 무엇이 돌아옵니까'하고 물어봅니다. '중국인들이 어디갈까' 생각들더군요. 저는 대답합니다, "당신에게 많지 않은 돈을 줄 수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난 그렇게 시간을 사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만일 당신이 1921년부터 있었던 당신의 기억이 묻혀 있는 벽이 그리울 때는 저 밖에 기댈 사람이 없을지 모릅니다"  그녀는 호쾌하게 웃더니 저에게 사진촬영을 허락했고 종업원 한 명과 함께 모텔 방까지 들어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습니다.
 
1921년부터 있었던 그 까페는 그 날 멀리서 온 이방인이 사진찍는 것을 구경합니다. 형사 콜롬보의 목소리를 가진 Peter도, 그 촐삭거리는 인상의 하얀가운 웨이터도, 80세는 족히 되어 보이는 Bar뒤의 할아버지도 가만히 자신의 벽들이 저의 조그만 카메라에 담기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저는 이미 며칠동안 계획했던 세개의 벽을 주제로 노트를 펴 놓고 벽 끝에서 벽 끝을 오가며, 또 노트를 하나씩 지우며 그렇게 오래된 벽을 담았습니다. 80년 이상을 버텨왔던 그 벽은 단 한 시간만에 저에게 담겨졌습니다. 하지만 제 손끝은 마음은 '80년이 그대로 이 곳에 잘 담겨야해'하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잠시 후 ... 레스토랑 쪽을 공사하던 인부들은 까페와의 경계선에 서서 저를 보며 기다리고 있었고 제가 작업을 마치자 마자 그들은 벽을 바르기 시작했습니다. 번쩍거리는 새하얀 페인트가 여지없이 그 위로 망측하게 그려지고 전 빨리 그 곳을 나오는데 이상하게 마음 깊은 곳이 저미어 오는 것 같습니다. 무엇일까요,
생면부지의 Coliseum Cafe에서 내가 찾던 것은, 그리고 지키려던 것은...
 
다음날, 공항으로 가던 길, 우리는 특별히 운전기사에게 부탁하여 그 곳을 들렀습니다. 공사가 여전히 진행중이지만 많은 부분이 마친 상태입니다. 저는 그 곳 사람들과의 반가운 눈짓을 하며 안쪽 까페로 앉아 간단히 아침을 먹습니다. 후라이 두 개와 차 한 잔. 나에게 모텔방을 보여주었던 사람도 그대로 있었습니다(그는 이 까페에서 34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는 것 처럼 보였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들의 눈에는 그 이전의 벽이 그 뒤에 잠시 숨어있는 것일뿐, 여전히 선명히 보일지도 모릅니다.
 
 
'예, 그들은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습니다.' 
 
 
 
뉴욕의 벽들이 아른거린 rainy day,
daniel
 
 
* 'Coliseum의 벽'은 아직 작업 중에 있으며 2~3주 후에 선보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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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스크랩]    비오는 싱가폴의 日記    2007/01/12 13:54 추천 0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dannewyork/1762836
 원문출처 : Short Happy Life of Mice Grey
 원문링크 : http://cafe.chosun.com/club.menu.pds.read.screen?p_club_id=orange&p_menu_id=7&message_id=282303
 
세상의 모든 시간들이 정지했다.
 
내가 멈추어서자 머리속에서 파리와 뉴욕, 워싱턴DC, 필라델피아, 말레이시아와 싱가폴이 함께 멈추어섰다. 
창문을 여니 비가 내린다.
천천히 내리는 비가 가느다란 바람을 커다란 창문 사이로 들여보내면 난 발코니로 들어오는 빛을 본다.
발코니는 차이나타운 중심 3층에 서있지만 나의 약한 눈은 빛에 겁을 먹고 나가지 못한다.  
 
저녁이 되면 마을 정자 마당에 할아버지들이 모인다. 중국인들은 할아버지가 할머니보다 더 오래사시나보다. 사방에는 온통 웃통을 벗고 반바지를 입은 할아버지들이 정지된 시간안에 있다. 살아있는 것을 아는 것은 그들이 아주 천천히 움직일 때, 마치 그림인 줄 알았던 것이 조금씩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은 것, 난 그들 사이를 무례할 정도로 빨리 지나가는 것은 아닌가 ? 땀 마저 흘리지 않는 그들사이에서 난 물 속을 걷는 것 처럼 헉헉대고 있다.  '병~신 ~'
 
차가운 물을 튼다. 사람이 냉수에 적응하는 시간은 20초, 하지만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물은 아직도 뜨겁게 발등 위로 떨어진다. '그래, 나에게는 아직 열기가 있어, 난 아직 살아있다.' 가끔 난 나의 삶 자체가 꿈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의 몸도 실상은 연기 뿐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이 열기가 아직 확인시켜 주며 말을 한다, '이봐, 왜 이래, 아직 끝나지 않았어...'
 
 
사라져감을 느끼는가. 잃고 있음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는가.
멍청한 인간들은 실제로 잃고 있는지 모른다.
잃는 것은 앞 쪽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등 뒤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모른다.
그저, 눈 앞의 것으로만 몸이 쏠려 있다.
지나고 나야 - 그것도 한참 지나거나, 또는 죽을 때가 되서야 - 알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현실이라 생각했던 것은 가식덩어리, 그들의 마음에서 진실은 이미 오래 전에 자취를 감추었다.
 
 
'이런 날 쳐지는 노래는 듣지 않겠다.'
난 바비킴의 I'm Still Here'를 크게 틀고서 마지막 남은 한 대의 담배를 꼬나문다.
뜯어진 손톱은 아직 아프지만 나의 마음은 편하다.
 
 
 
  ...... 자유롭기에 난 잃을 것이 없다.
 
 
 
 
2005년 8월 30일 싱가폴 차이나타운,
dani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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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스크랩]    파리를 기다리며    2007/01/12 13:53 추천 0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dannewyork/1762833
 원문출처 : Short Happy Life of Mice Grey
 원문링크 : http://cafe.chosun.com/club.menu.pds.read.screen?p_club_id=orange&p_menu_id=7&message_id=275751

 

떠나는 것... 내 앞에 그게 있다.

 

 

어디론가 떠날 때에는 시간의 물결이 급류로 변한다. 내가 항상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들이 이제 내 눈 앞에서 없어질 걸 알기 때문이다. 내 눈 앞뿐 아니라 버스를 타고 다섯 정거장을 가도 이제 볼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떠남'은 남겨진 것들에 대한 고마움이다.

 

뉴욕과 파리. 그 사이를 오가기 몇 번인가 ?

사실 뉴욕은 떠날때 서운한 도시는 아니다. 내가 처음 뉴욕을 온 것은 파리에서 부터 였고 그래서인지 뉴욕은 다시 돌아올 때에 더 큰 감회를 느끼게 된다. 돌아올 적 마다 택시를 타고 이 거대한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보며 '나를 아직도 기다리고 있었구나...'라며 되뇌이는 건 그 때문이다.

 

동시에 파리는 '떠남'이 슬픈 도시다.

처음의 떠남이 그래서일까, 이 곳은 떠날 때마다 매번 슬프다.

이제 다시 돌아가는 데, 벌써 헤어짐을 걱정하고 있다.

 

 

다시 갑자기 바빠졌다.

'정규교육'이라는 걸 믿지 않는 내가 큰 맘먹고 수강한 '갤러리 프린팅'에 대한 수업이 끝나면 바로 다음날 떠나야 하게 되었다. '멕시코 사진들도 20분의 1도 프린트하지 못했는데 어쩌나..' 덕분에 떠나기 한 주 전은 가장 바쁘고 어두운(암실작업)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다.  

 

파리에서 쓰던 메트로카드도 다시 찾아보았다. 사진이 잘려나갔다. 잘난 '대한민국'사진전에 보낸답시고 그 사진을 떼었던 기억이 났다. Stupid ! 파리 지도책도 찾아야한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짐은 거의 없을게다. 어제 필름을 사니 700불이 나왔다. 공항스캐너를 통과해야하면서도 그렇게 산 이유는 그나마 이 곳이 싸기 때문이다. 여전히 고감도 필름(TMAX 3200)은 현지에서 사야한다. 그 가난한 나라 멕시코에서도 필름가격은 뉴욕의 두배였고 파리 또한 모든게 비싸다. 어쨋든 그것만 해도 대단한 부피와 무게이며 거기에 카메라와 렌즈를 넣으면 기내여행용가방 하나에 가득 찰 게 분명하다.

 

내 짐이라곤 오랜세월에 몇 번이 찢어진 청바지 두벌과 티셔츠 세개, 그리고 내의 정도이다. 랩탑이 문제다. 조그만 사이즈지만 여전히 여행에는 큰 무게다. 하지만 두 달이란 시간을 버텨야한다면 가져가야 할 것 같다. 이 모든 장비를 가지고 유스호스텔을 간다는 건 간 떨리는 일이지만 싱글룸을 구할 수 있다면 충분히 할 만한 일이다. 단 하나의 위안은 여전히 파리핸드폰이 터진다는 점이다. 뉴욕에서 전화없이 산 지 1년이 지났고 핸드폰은 여전히 나에게 사치스러운 느낌이 들지만 'connect'가 된다는 점은 참 좋은 것 같다. 1년만에 핸드폰을 받는 느낌은 재미있을 것이다.

 

파리로 떠나기 일주일 전.

이별과 회귀는 나를 차곡차곡 크게 하고 때마다 다른 눈을 가지게 한다.

중경삼림의 한 장면처럼 세상의 모든 것이 빨리 지나가는 사이 난 가만히 몽상에 잠긴다. 지나간 일들이 봉글봉글 하나씩 올라온다. 'You're alright, buddy'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건네면 난 가만히 젖은 눈을 닦고 담배를 한 대 입에 문다.

 

'이게 마지막 담배다'

 

이제 할 일을 해야 할 시간이다.

 

 

 

첼시의 조그만 방,

Dani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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