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브랜드 컨설팅 그룹인 '인터브랜드'사 조사 발표입니다. 연말 발표 자료 인듯 한데, 우연히 자료 서치 하다 발견했어요. 이코노미스트 등 유명 경제 저널과 합동 조사하는 등 유명한 업체죠. 매번 보던 브랜드도 순위로 매기고 보니 좀 색다르게 다가오네요. 새롭게 등장한 브랜드 중 푸마는 'PPR'그룹(구찌 생산)에 인수되면서 각종 콜래보이레션 등으로 이미지가 좋아졌고, 버버리의 경우 125주년 기념식 등을 치르며 최근 불황에도 불구하고 조금 탄탄해 진 것 같네요. 글로벌 그룹 사이에서 럭셔리 그룹으로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루이 비통 존경하게 됐고요^^;;; 역시 불황으로 은행 업계가 부진했던 것과 자라의 약진도 돋보입니다. 티파니 카르티에등 명품 업체들 작년에 힘들었다더니 이 표를 보니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네요...
최근 회사에서 싣고 있는 '에세이' 시리즈에 오른 디자이너 폴 스미스 경의 글입니다. 10월 초에 글을 써달라고 부탁해서 한달 열흘 지난뒤에야 받았습니다. 원문은 이것보다 약간 더 긴데, (가게를 여는 과정이 좀 더 디테일합니다) 분량에 맞춰 조금만 덜어내고 그의 글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제가 이 분에 대해 아는 게 부족해서 그랬는지, 그가 보내준 글 덕에 그의 인생에 대해 돋보기를 들이댄 듯 보게 됐습니다. 또 파노라마 사진 지나가듯 그의 육십 인생을 후다닥 봤다고나 할까....그가 아이 있는 연상의 여인과 동거하고, 그녀를 통해 디자인을 배우고, 인생을 계획해 나갔다는 걸 뒤늦게야 알았습니다. 폴 스미스 하면 그저 무지개빛 스트라이프 줄무늬만 떠올리고, 영국의 심장같은 발랄한 스타일만 생각했는데 그의 무지개 뒤엔 이런 게 있었더군요. 일부에선 그가 창의력이 부족해 보인다고 한다지만 60이 넘어서도 언제나 젊은 기조를 유지하는 게 쉽지는 않은 거 아닌가요. 무엇보다 그의 아내에 대한 애정과 존경이 살아있기에 이렇게 경쾌하고 러블리한 디자인도 나오는 것 같고. 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난 유치하지 않다. 아이 같을 뿐이다(not childish, only childlike) 유치한건 저열하고 치졸하지만, 아이같은 건 새로운 세계에 눈뜰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이다. 난 항상 호기심 가득한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나중에 찾아보니, 그는 아내 폴린과 파트너 관계를 30년간 유지하다가 기사 작위를 받은 다음날(그는 sir지요) 결혼했다고 하는 군요. 우왕*@@*
폴스미스 제품들-뉴욕 매거진 작품. /구글 펌
입력 : 2009.12.13 22:32 / 수정 : 2009.12.14 00:06
나는 곧 그녀와 열렬한 사랑에 빠졌고, 런던에서 온 최고로 아름다운 아가씨는 나와 우리 부모님이 있는 집에 들어와 함께 살게 됐다. 나보다 6살이 많은 그녀와 8살, 5살짜리 두 아들 그리고 두 마리의 아프간하운드 강아지, 두 마리의 페르시안 고양이가 우리 집에 한꺼번에 들어온 것이다! 약간 소름이 돋지 않는가? 이 엄청난 책임감이란! 하지만 이 모든 사랑스러운 이들을 한 번에 품 안에 안게 되다니 그 또한 얼마나 환상적인가!그때 폴린은 말했다. 당신은 무척이나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고 열정적이고 아이디어로 똘똘 뭉쳐 있으니 당신이 가게를 열면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곳으로 커 나갈 것이라고. 그동안 모은 총 600파운드의 자산을 가지고 나는 딴에 '숍'이라 부르는(실제로는 3㎡가 안 되고 창문도 없는) 가게를 열었다. 크기가 뭐가 중요한가. 당신이 무언가에 발을 내디뎠을 때 그것이 시작 아닌가.우리는 가게를 금·토요일에만 열기로 했다. 그 당시 팔던 옷은 내 디자인은 아니었고, 내 고향 노팅엄에 젊은 디자이너들의 작품이었다. 물론 그걸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 바보 같은 행동이라고? 대신 이건 월·화·수·목에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아내는 내게 디자인을 가르쳤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하기 시작했다. 또 밥벌이가 되는 일은 뭐든지 했다. 사실 디자이너 외의 일은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 기간에 난 다양한 분야에서 엄청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6년이 지나니 내가 해야 할 일이 뭔지 감이 잡혔고, 주변 잡다한 일을 정리할 능력, 내 컬렉션을 준비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됐다.처음 내가 만든 건 재킷 두 벌과 바지 두 벌, 여섯 가지 셔츠와 두 벌의 니트였다. 여러 나라 이곳저곳 다양한 숍을 다니며 파리 호텔에 전시돼 있는 내 컬렉션을 보러 오라고 초청 카드를 돌렸다. 난 쇼룸을 호텔 침실에 꾸며, 검정 시트가 깔린 침대 위에 옷을 올려놓았다. 4일을 기다렸지만 누구 하나 보러 오는 사람이 없었다. 컬렉션이 끝난 마지막 날 오후 5시. 실망하고 짐을 싸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게 아닌가? 한 손님이 들어와 주문을 했고, 그 순간, 마침내 '폴 스미스'의 역사가 시작됐다.난 디자이너로서 정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폴린이 내 전부였다. 그녀는 내 스승이자 내 멘토이자 뮤즈였다. 어떻게 재단하고, 어떻게 모양을 내야 하고, 비율을 잡아야 하는지 알려줬다. 그녀 덕분에 내 첫 작품들은 매우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았다.사실 당시에는 나보다 훨씬 창조성이 뛰어난 디자이너들이 많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객들이 자주 환불을 요구했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상업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불행하게 사그라졌다. 자투리 일을 하면서 받았던 훈련이 내겐 진실로 도움이 됐던 것이다.폴린은 지금도 내겐 엄청난 영감을 불어 넣어주고 있다. 내 사랑, 내 아내 폴린은 현재 아티스트다. 하지만 절대 전시회 같은 건 열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기쁨을 위해 작품 활동을 할 뿐이다. 2000년 내가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을 때 나는 그녀에게 청혼했다. 내 모든 것을 만들어준 그녀에게. 자, 그럼 나를 따라하라. 말하라. 당신의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당신 덕분에 내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노라고.
이 밑에는 그가 보내준 사진 입니다. 어린 시절이네요.
자전거 타는 어린 아이 폴 스미스
뉴욕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급 짧은 기간이라 많은 걸 보진 못했지만, 역시 크리스마스의 위력은 대단하여, 그동안 얼어붙었던 사람들의 소비심리를 좀 녹이지 않았나 싶습니다.(그래도 쇼핑욕을 자제했던 터라 뉴욕의 세일도 ㅠ.ㅠ)
게다가 삭스 백화점에 들러 '60%까지 할인'이라는 글자에 마음이 혹해 복도에 나와있는 옷을 뒤지다 (평소에는 잘 사지 않았던) 멋스런 랄프 로렌의 재킷형 카디건에 눈이 돌아가 덥석 집어들었건만, 800달러라는 가격은 그렇다 치더라도 레이블에 붙어있는 '메이드 인 차이나'를 보고 !@#$^$#^&#$ 라는 생각에 쇼핑 욕구가 뚝 떨어졌습니다. 명품 공장들이 중국으로 이전했다는 건 하루 이틀 이야기가 아니고 또 전혀 모르는 바도 아니지만, 그래도 참 심리적인 마지노선이라는 게 웃겨서, 아무리 명품 고 퀄리티라 하더라도 '차이나'라는 글자에 줄 수 있는 돈은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음. 고급 캐시미어에 라인도 잘 빠졌고'라고 혼자 떠들다 '뭐야~~~!!!'라는 짤막한 외침과 함께 갑자기 그 물건이 길표 같아 보이는 이 뇌구조는 어떻게 된 걸까요. 이제 명품은 국경선이 애매해지고 품질 관리 시대에 돌입했다 하지만 그 동안의 관점은 쉽게 버릴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여튼
숙소가 5번가에 있었던 터라 백화점 겉모습 구경은 실컷 하다 왔습니다. 그중에서도, 뉴욕의 겨울을 흥미롭게 해주는 백화점 윈도 디스플레이에 감탄하느라 눈요기는 꽤 배불리 했다 할 수 있죠. 뉴욕 백화점들이 편집숍이나 플래그십에 밀려 이전의 위용을 자랑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런 디스플레이는 백화점의 캐릭터를 한껏 드러내는 요인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블리커 스트리트에 있는 마크 제이콥스의 할로윈 디스플레이나 미트패킹에 있는 여러 숍들의 디스플레이도 아름답다 하겠으나, 백화점은 어떤 브랜드에 얽매이는 게 아닌, 그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자신들의 이미지를 마음껏 과시할 수 있으니 좀 더 다채롭다 하겠죠.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 백화점은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게 크리스마스 트리 정도? 2~3년 전부터 관심을 끌었던 LED도 요즘엔 다소 시들해 진듯 하고. 우리 구조가 1층에 창이 거의 없는데다, 있다 하더라도 명품 전시관이니(음... 요건 눈요기는 좀 되겠군요^^;;;) 별달리 백화점의 캐릭터를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아보입니다. 성냥갑 아파트라 하지만, 백화점들도 거기서 거기인 듯. 메쉬같은 걸로 겉 포장을 어떻게 하는가 좀 다른 것도 있지만, 캐릭터가 확실한 백화점은 그닥... 갤러리아가 명품 전문관으로 이미지메이킹을 하긴 하였으나 요즘엔 그도 좀 시들한 듯하고. 신세계가 내부 구조를 바꾸면서 새롭게 시도를 하는 것 같은데 이것도 좀 더 두고봐야 할 일이고요. (그래도 내부는 뉴욕보다 우리 백화점의 매장 배치가 나아 보입니다. 적응의 문제인가..?) 윈도를 장식하는 게 돈낭비다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관광객을 모으는데는 한몫할 테고, 또 요즘 같이 아카이브가 중요한 시대에 윈도 디스플레이만 모아 전시해도 그 백화점의 역사와 그당시 문화를 잘 알수 있으니 멀리보면 손해는 아니겠죠.
그럼, 그 중에서도 단연 관광객들의 발길을 끄는 버그도프 굿맨을 들여다 봅시다.
이건 바니스 뉴욕/다른 사진작가 작품. 구글 이미지
이 위는 블루밍 데일
너무 오랫만에 블로깅을 해서 인지 왜인지 모르겠으나 벌써 에러가 나서 6번째 다시 만드네요. 2번째 에러 난 뒤에 글은 저장해서 그나마 다행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