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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경 (hansu0001)
- 우리 대통령을 나는 무조건, 무한정 지지한다. - 단, 박그네를 따라다니실 땐 절대 반대한다. 망하는 길이니까. 또 친아랍도 나는 반대다. 망하는 길이니까. - 이스라엘을 나는 무조건, 무한정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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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희귀 사진    2010/02/10 00:38 추천 0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hansu0001/4508315

1947년 희귀 사진

 

 

히틀러가 죽은 후 영국은 팔레스타인에 이민오는 유태민족을 막기 위해 해변에 철조망을 치고 경계를 세웠다.

- 영국은 국제사회에 약속한 유태민족국가 설립이란 약속을 이행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

밀입국했어도 발각되면 다시 사이러스 섬으로 되돌려 보내졌다. .

많은 낡은 배들이 바다 위에서 헤매었으며 심한 경우 침몰까지 했다.

 

아래 사진은 타임지194.10.20 판에 나온 것으로 바로 한주전 유태인들 4,500명을 실은 배 메디나 예후딧(**유다 국가)호가 영국의 해안봉쇄선 바깥에서 봉쇄선을 열어달라고 애원하는 사진이다. 하이파에 도착하기 전, 영국왕실 해군은 갑판위에 올라갔으며 거기에서 도발을 하였다. 최투탄을 창문으로 투하하는 바람에 6개월된 여아 하비바 스테인이 가스를 들이마셔 사망했다. 바다에 묻을 수 없어 보존한 죽은 아기를 유태인들이 배가 수일 후 하이파에 도착하자 영국군 병사 면전에다 흔들면서 "당신이 그녀를 죽였소!"라고 외치고 있다.  붉은 선 안은 확대한 것.  영국의 만행을 알 수 있다.  파아란.  

5-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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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섭다    2010/02/09 12:47 추천 0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hansu0001/4506747

내가 무섭다

 

 

글을 쓸 때마다 제가 무섭습니다. 왜 이렇게 나는 비난하는 글만 쓰는지, 나는 더 형편없는데 왜 내가 이 역을 맡아야 하는지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의 종들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최근 저도 그 대열에 섰습니다.  물론 한국교회 문제 많습니다. 물론 큰 주의 종들도 약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 분들은 우리보다 훨씬 큰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 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아까운 그 분들이 아차 실수로 이상한 길로 가게 된 것을 용서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일년전에 하목사님이 이상하고 교만한 이를 귀한 남녀종 처럼 여기고 계시다는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왜 그런 일이 생겼을까. 그것도 이제는 납득이 갑니다. 그 분이 큐티에 매여계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큐티 아니 명상은 영을 흐리게 합니다.

 

온누리 교회가 큐티를 최초 한국에 들여온 것이나 같고 그것을 한국 교단 전반에 뿌리는 역할을 한 바나 같다는 것도 저는 큐티 반대글 여러 편을 쓰고 난 후에 어느 회원님의 댓글로써 알은 사실입니다. 엊그제에야 파악했습니다.

 

물론 큐티 운동이 가져다 준 좋은 영향도 있을 것입니다. 그 분들이 하여놓은 일이 훨씬 더 클 수 있습니다.  어쩌면 큐티 아니었으면 하루종일, 일주일 내 성경 한줄 안 읽을 사람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제가 읽은 대로는, 동양종교 식의 명상은 아닙니다. 그저 성경읽고 그저 기도하고 그저 회개하는 것. 주의 말씀을 마음에 품고 순종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원하시고 선지자들이 하여오던 것이지, 눈을 감고 이미지를 그리고, 마음을 집중하고 계시를 들으려 집중하는 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귀신접신주의자들이 귀신의 영과 접하기 위해 하는 그 자세일 뿐입니다. 이것을 기독명상 예찬론자들은 마귀가 (명상) 하는 이유가 유익이 크기 때문에 (기독교를) 따라 하는 것이라고 떠들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에는 그런 식의 명상이란 것 성경으로는,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방종교들이 하는 것, 모양도 따라 하지 말라고. 요즘은 요가도 따라하는 이들 많은데, 위험한 일입니다. 요가는 힌두교에서 수천가지나 되는 귀신을 숭배하는 각각의 귀신을 숭배키 위한 기기묘묘한 동작에서 나온 것입니다.

 

요시야 왕이 성전을 청소하기 전, 예루살렘 성전의 상태는 거기 잡다한 이방우상까지 뜨락에 갖다 놓고 거기 절하는 것들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여길 정도로 사람들이 방만했습니다.  요시야는 그것을 청소했습니다.

 

아무 데나 하나님을 대입한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아닙니다. 

 

큐티의 유래를 알기 위해 한국 웹사이트를 검색하면 교회마다 등장하는 큐티 유래라는 것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습니다. 1822년 캠브리지 대학생 둘이 "경건한 시간"으로 큐티를 시작했고 그리하여 그것이 퍼져 큐티가 되었고 그 두 사람은 큐티 덕분에 중국 선교사로 나랐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이 설명을 저는 다른 영어 검색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름들도 찾을 수 없습니다.  나아가, "Q.T"라고 하는 명칭 조차, 영어 웹사이트에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모종의 측이 한국에 명상;meditation을 들여오기 위해 고의로 이름을 Quite Time로 바꾼 것 같다는 느낌을 그러므로, 저는 받았습니다.

 

QT 전도사격 된다는 로렌 커닝햄의 첫 책은 "당신입니까. 주여"라는 제목입니다. 그 책의 설명은, 그 책이 보통 일반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알려준다고 나와 있습니다.

 

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아니라고 말하기가 쉽겠습니까. 게다가 그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이 이룩하지 못한 일, 미션을 달성한 사람들입니다.

 

제가 갖는 의문에 큐티의 유래- 이토록 한국에는 널리 퍼졌는데 반해 왜 외국 웹사이트에는 전혀 Quite Time이 등장하지 않는지? - 에 대해 정확히 외국의 그 출처를 누가 알려주어 저로 하여금 확인하게 해준다면 다행이겠습니다.

 

참, 위키대백과에 나온 중국역대 선교사 명단에는, 한국 큐티 사이트마다 설명하고 있는 큐티를 제일 처음 만들었다는 저, 후퍼와 도르튼이란 선교사 명단 나오지 않습니다. 참조: http://en.wikipedia.org/wiki/List_of_Protestant_missionaries_in_China 

 

도대체 어디에서 시작된 설명인지나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무서운 사람인 건지, 아님, 한국사람 속성이 무서운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Meditation이 왜 한국에만 큐티;QT;Quite Time으로 둔갑해 퍼졌는지 아십니까 ? 누가 한 일입니까? 한국인들이 "명상"을 원래 잘 아는 민족인 것을 경계하여, 일부러 명상;Meditation이란 영문 명칭을 큐티로 일부러 위장한 것 아닌가 의문이 듭니다.

 

2010.2.09. 파아란 한은경.

  

동영상] 세파르딕 유태계를 노래함.

Yehoram Gaon - 'Avre tu puerta - Canción Sefaradí - Sephardic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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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기독교의 영매주의자들    2010/02/08 22:31 추천 0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hansu0001/4505363

 

현대판 기독교의 영매주의자들

 

 

 

영매란, 귀신이나 죽은 영혼과 산 사람 사이를 연결해주는 짓을 하는 사람이다. 영매에 관해 모세율법은 돌로 쳐 죽이라 되어 있다.

 

남자나 여자가 접신하거나 박수무당이 되거든 반드시 죽일지니 곧 돌로 그를 치라 그들의 피가 자기들에게로 돌아가리라[레위기20:27]

 

또 그것을 따는 자들은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고 하였다. "접신한 자와 박수무당을 음란하게 따르는 자에게는 내가 진노하여 그를 그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레위기20:6]

 

큐티, 즉 QT라고도 하고,Quite Time이라고 하는 용어는 교활한 용어이며 그 실제 의미는 Meditation: meditate; 명상에서 온 것이다. Meditation은 라틴어 meditatio에서 온 것으로 원래 육체적, 지적 경험의 어떤 타잎을 뜻하는 말로 쓰이다가 후에는 "응시"라는 뜻으로 바뀌었다. medi는 중간에 낀 매개자를 뜻한다. -itate는 급격하게 변해가는 경우에 쓰이는 접미어다. 곧 메디테이션이란 말에는 중간에 낀 매개자가 양쪽을 연결하고 "응시" 내지 "집중"하여  자신을 급격하게 변화시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명상에 이르는 기법은 범세계적으로 매우 흡사하고 보편적이다.

 

깬 의식으로 호흡을 규칙적으로 할 것- 규칙적인 호흡법은 명상에 필수다- . 자기 주문을 걸 것, 지금 이 곳에서, 마음에 떠오르는 이미지나 지각, 현장의 어떤 것에 주의를 집중할 것, 자기성찰, 사전에 선택한 특정한 대상을 집중할 것, 명상에 "집중"할 것.

 

곧 큐티의 대상은 "집중"이지 성경이나 하나님이 아니다. 그들이 집중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열어놓은 상태로 두는 상태이지, 성경말씀이나 예수님이 아니다.  큐티가들이 설령 자기들은 그것이 성경말씀이나 예수에게 "집중"하는 것이라 말한다 하더라도, 그럴 경우에는 그 집중하는 성경이나 예수 그리스도 조차, 한갓 제 3의 객체, 즉 자기 마음을 집중하고 비우는 한 수단으로 전락할 뿐, 큐티의 목표는 오직 그들의 마음 조절과 명상에 있는 것이다.

 

이것을 불교용어로는 "자기성찰;염불선;사미아크스마티, 삼마사티"라고 한다. 이것은 "정확" 또는 "옳음"을 상징한다. 한 사람이 그의 신체, 느낌, 의식에 담긴 것들, 또는 양심까지 전부 깨어서 주시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것은 기독교 큐티 전도사들이 성경을 펴놓고 "깨끗한 양심"으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라고 가르치는 말과 거의 똑같다.

 

"다시 말씀 앞에 무릎꿇고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말씀의 능력을 입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 하용조, 출처: http://blog.naver.com/chorok027/40066881161

 

물론 성경에도 매우 드물긴 하지만,  "깨끗한 양심"이란 말이 나오기는 한다.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딤전3:9]

 

그리고 이 말씀은, 큐티같은 자기를 돌아보라는 뜻으로 쓴 것이 아니라 장로를 선출할 때의 기준을 가르친 말씀이다.

 

명상을 주로 하는 이슬람의 바하이교(19세기 시작)는 명상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명상은 마음을 신비에로 향하는 문을 열게하는 키다.  그 길은 인간이 스스로 자신을 매혹시키는 단계다. 인간으로 하여금 바깥의 모든 소란에서 자신을 비우고 영적 삶의 무한대양에로 자기를 열중시킨다. 그러면 "그들 안의 신비"의 비밀들이 풀려나온다." - 압둘 바하이"

 

그러므로 하용조 목사님의 성경을 펴놓고 "깨끗한 양심"으로 자기를 돌아보라는 가르침은 진지하게 말해, 성경적이지 않다.

 

성경은 처음이나 마지막이나 인간의 절대 타락, 즉, 인간 양심의 절대 타락을 말씀한다. 제대로 기도해본 사람들이라면, 인간이 얼마나 속속들이 타락했는지,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고서는 "깨끗한 양심"으로 보존하기란 거의 불가능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깨끗한 양심으로 자기를 돌아보라는 가르침은 그러므로 아무리 보아도 기독교적이 아니고 불교적 명상에 가깝다.

 

하용조 목사가 자주 인용하는 로렌 커닝햄은 예수전도단[YWMA]의 창설자다. YWMA에서 명상에 관해 가르치는 단계는 다음과 같다.

 

1] "하나님께 그의 말씀을 당신이 공부할 때 계시를 달라고 부탁하라. 그리고 그가 하실 것에 감사하라." "그는 항상 우리에게 말씀하시길 원하신다."  "그는 "우리의 명상을 통해" 우리에게 "통찰력"을 주길 원하신다!" "명상은 단순히 앉고 읽고, 그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NO! "모든 것을 창조한 그 하나님"이 당신의 명상에 "참여하는 중"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그에게 당신을 그의 계시로 채워달라고 그저 부탁하라! -그리고 그의 앞에 있음을 감사하라! 이것을 잊지 말라! 때로 명상에서 아무 얻는 것이 없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이 실패하는 이유는 그들이 감사하란 중대 원칙으로 시작하는 일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2] "천천히 읽고 성경을 "그림화"해라." "신의 계시로 들어가는 다른 방법은 (이 세상에) 없다." "하나님의 말씀안에 "명상"할 때 당신은 "천천히 내려가야" 한다. 말씀의 풍성함을 체험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다."  "내가 나를 "천천히 하강"시키는 한가지 기술을 제안하는데 그리하면 읽는 그 페이지를 실제로 맛보게 된다.  그 말씀을 당신의 마음에서 "그것을 그림화할 때까지" 거듭 읽고 읽으라주님께서 당신의 마음에 한개 이미지로 가득 채우기 시작할 때까지 그 페이지에 머물러라. 성경은 온통 아름다운 설명, 놀라운 이야기, 위대한 지혜의 비유들로 가득 차 있다."

3] "그 말씀을 필기하라. 나는 보통 한번에 말씀 한 두 구절 위에서 명상하며 전체 장으로는 "절대" 하지 않는다. 때때로 신은 나에게 어떤 특정한 주제에 관해 명상할 것을 지시한다. 그러면 나는 그 주제에 관한 여러 다른 절들을 찾아보고 그들 모두 위에서 명상한다. 당신이 훈련받아진 어떤 실익이 나오면 있는대로 그 이상 다 쓰라. 그리하면 당신은 성령이 당신에게 말할 더 많은 기회를 드리는 것이다. 깊은 길로 당신이 그것에 관해 생각난 것들을 써 "내려" 갈 때, 당신은 그것이 훨씬 주의깊어지면서 자신의 생각에로 훨씬 침투가 잘 되어진다는 것에 놀랄 것이다."

4] "특정 절에서 당신이 이해한 내용을 쓰라." "이 시점에서 당신은 생각키를, 이 생각은 전혀 새로운 게 아니야. 왜 이걸 써내려야 하지? 비범한 새론 다른 생각이 날 때까지 기다릴 테야.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당신이 써내려간다면 당신의 "마음"은 또 다른 주제위로 "흘러 떠내려가기" 시작할 것이다." "당신은 곧 하나님이 한 절을 놓고 당신에게 계시하는 그것에 곧 매우 충격받을 때까지 한 가지 생각이 또 다른 생각에로 "흘러 떠가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예를 들면, 나는 내 전 삶에 내가 인용했던 요한복음3:16이나 시편23 같은 매우 익숙한 부분에서 명상하였을 때 이미 매우 잘 아는 절들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마음에 떠오른 것들을 밈음적으로 써내려가기 시작하자, 주님께서는 내가 이전에 알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통찰을 내게 주셨으므로 나는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그에 경탄하였다. "

5] "이해한 것을 삶에 적용하라."  "당신 자신에게 문의하라, 어떻게 나는 하나님이 내게 보이신 것의 "빛" 안에서 이 특정 상황을 조정할 것인가?를" "하나님의 성품에 관해 당신이 "받은 계시"들 위헤 당신의 행동의 기초를 두라. 하나님의 진리로써 새로워지고 변형되면서 당신은 당신의 어떤 행동들과 관계들이 변화되기 시작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6] "하나님께 응답하라. 십중 아홉은 명상은 당신을 하나님과 새로운 응답에로 개화되도록 명상이 인도해줄 것이다." "예를 들어, 명상은 당신에게 당신이 이전에 알지 못했던 하나님에 관해 알려줄 것이다. 경배와 찬양 속에서 당신이 부흥되기를 바라도록 새로운 계시가 당신을 이끌 것이다. 주저하다 놓치지 말라. 당신의 "모든 마음"이 살아계신 하나님께 응답할 기회를 붙잡으라! "  "하나님은 당신에게 당신이"명상"하는 그 절을 갖고 노래하도록 새 노래를 주실지 모른다. 그러면 그것을 노래하라! "그 명상에서 나온 그 주님에게 응답하라. 당신의 응답은 당신의 명상을 훨씬 생동감있게 살아나게 만들 것이고 그것은 지적 훈련보다 더 훨씬 더 많이 하나님과의 당신간의 관계를 만들어 줄 것이다."

출처: http://www.lastdaysministries.org/Mobile/default.aspx?group_id=1000008837&article_id=1000008590

 

위의 글은 전체적으로 분명히 보편적 "명상"에 관해 설명하는 것이지, 신앙에 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렇게 가르친다.

 

"그 주님은 우리 (마음)들이 "명상"에서 "활동적(능동적) 입장"이 되라고 요구한다."

 

큐티에 관해 설명한 위 귀절은 한국에서 큐티라고 명명되어져 거의 모든 교회에서 떠받들어지고 있는 큐티의 실체가 사실은 "명상"이었다는 것을 각 설명하는 문장에서마다 "명상; meditation"을 언급함으로써 곧, 큐티는 명상이다는 사실을 생생히 보여준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인간의 마음;heart"이 "능동적 명상"을 취해야 하나님이 임재하신다는 것은 성경에는 없는 내용이다. 성경은 인간의 마음이 속속들이 타락했다고 가르치므로 하나님과 관계에서 타락한 인간의 마음이 능동적이 된다면, 하나님 마저 타락에로 끌어내리는 것이 된다.

 

명상을 인용하는 이들은 명상의 인용귀절로 여호수아1:8을 사용한다.

 

"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여호수아1:8]

 

위의 절에 등장한 "묵상"은 많은 성경에서 meditate로 번역했지만, 원 히브리어의 의미는 그것이 현재 우리가 쓰는 명상이란 의미보다는 한탄하다. 낮게 꼬르륵대다, 입밖에 내다, 말하다, 생각하다의 의미가 더 강하다. 이 총체적 의미로 보면 이 단어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한 명상보다는 기도에 더 맞는 단어라고 봐야 한다.

 

또 더 있다. 큐티를 권하는 자들은 이삭이 들판에서 리브가를 만나기 전 "묵상"하고 있었다고 하며 큐티의 타당성을 주장한다.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낙타들이 오는지라."[창세기24:63]

 

여호수아1:8의 명상은 히브리어로 והגית; 베하기타,  창세기 24:63은  לָשׂוּחַ로 서로 전혀 틀리다.

 

여호수아1:8에 나온 명상은 이사야 33:18에 나오는 명상; יהגה 과 같은 히브리어다.

 

"너의 마음에는 두려워하던 것을 생각(명상)하여 내리라. 계산하던 자가 어디 있느냐, 공세를 칭량하던 자가 어디 있느냐, 망대를 계수하던 자가 어디 있느냐"[이사야33:18]

 

창세기24:63의 이삭이 들판에서 "명상"했다고 번역된 히브리 원어는 다음  시편에 나온 명상과 같은 단어다.

 

"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부르짖음;도움을 청하는 절규;  שִׂיחוֹ  를 들으소서"[시편102:1]

 

즉, 성경도 "명상"을 가르친다라고 떠들던 큐티, 관상기도 주의자들이 인용하던 성경 각 절들의 명확한 내용으로 들어가면, 이들 영어성경에서 명상;meditation으로 번역된 언어들은 사실은 명상(특히 오늘날 우리가 쓰는 의미로의)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호수아 1:8의 명상이란 단어는 이사야33:18의 뜻에 비추어, 그것은 실제는 하나님과 일대 일로 만나는 명상이 아니라, 말씀을 "두려워하는" 자세로 마음 속에 밤이나 낮이나 간직하라는 뜻으로 새겨야 옳다.

 

또 창세기24:63의 명상은, 당시 이삭이 어머니 사라를 별세한 후 깊은 슬픔에 빠져 있었으므로, 시편102:1의 기도 처럼, 깊은 슬픔으로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옳은 것이다.

 

성경의 어디에서도 정작, 영어본들의 'meditation" 이나 'meditate'가 현대의 오늘날의 큐티주의자들이 쓰고 있는 '명상'의 뜻으로 사용된 곳은 없다. 이 점만을 보더라도, 큐티주의자들이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은 드러난 것이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경외, 공포와 겸손함이다.  큐티는 이것을 외면했다. 외면했으므로, 외면한 데 나아가 하나님의 영을 마치 사람이 요청만 하면 즉시 즉시 나타나 "계시"를 주는 천한 영같이 몰락시켰다.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인간의 영은 썩었으며 타락했다. 큐티주의자들의 주장 및 성경을 도용한 설명들만 보아도 인간의 영혼이 자칭 거룩해지기 위해 얼마나 거짓말을, - 하나님의 영까지 사칭하며 - 이용하는지 알 일이다.

 

위의 로렌 커닝햄과 그의 YWAM (및 하용조 목사와 온누리 교회 들 등) 이 지향하는 큐티, 명상의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은 제 단계는, 고스란히, 지구 위 보편적 여러 잡종교들에서 전해지는 보편적 명상 제단계와 다를 바가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명상을 통해 계시하지도, 임하지도 않으신다. 명상은 인간 영의 발작, 준동이라 보면 딱 맞다.  인간의 영이 보다 고양된 상태를 얻기(로 오르기) 위하여 벌이는 유일한 개수작이다. 스스로 도취시키는 거짓 행위다.

 

성경이 요구하는 것은 인간들에게 특히 이방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 스스로 "개"들 수준인 줄 깨달아서 겸손해지라는 것이고 겸손히 간구하고 도움을 부르짖으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말씀이다.

 

명상주의자들은, 인간의 영과 또 하나의 다른 신령과의 사이에 선 영의 매개자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거기에서 깨달아진 것들을 일명 "계시"라는 이름으로 내려준다.  하나님의 "계시"는 그렇게 오지 않는다.  만일 그렇게 온다고 우긴다면, 무엄한 일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상황 - 인간의 영이 잠잠하다든지, 인간의 영이 역동적이라든지, 등등 - 에 전혀 제약 당하시지 않는다. 그 분은 계시하고 싶으면 하실 것이고, 침묵하고 싶으시면 침묵하실 것이다. 실제 성경에는 인간이 원하는 데도 침묵하시는 하나님의 침묵에 대해 여러차례 말씀한다.

 

"주께서 침묵하신다고 누가 그를 정죄하며 그가 얼굴을 가리신다면 누가 그를 뵈올 수 있으랴"[욥34:29]

 

"하나님이여 침묵하지마소서.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시고 조용하지 마소서"[시편83:1]

 

"예수께서 침묵하시거늘 대제사장이 이르되"[마태26:63]

 

큐티주의자들의 오만은, 하나님 또는 성령께서 자기네들이 마음속에 "이미지"를 그리기만 하면, 하나님은 와서 떠든다라고 가르치는 데 있다. 무서운 가르침이다.  거기 와서 떠드는 그것이 자기 자신의 영인지, 다른 하나님을 사칭하는 잡령인지, 누가 구분한단 말인가. 무슨 재주로? 자기네가 그것을 구분할 거라고 다시 떠든다면 그들의 영혼이야말로 성경이 가장 경계하는 오만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큐티주의자들에게 물을 말은, 그들이 그처럼 매일 고요한 시간을 정하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호흡을 천천히 하여, 성경의 일 구절로 마음 속에 심상[이미지** 관상기도를 퍼뜨리는 이동원목사가 이미지를 중시한다는 점을 명심할 것] 하나를 만들고, 거기에서 생각이 표류해 이리 저리 떠다니게 하는 그 과정이 바로 영매주의자들이 하던 지랄 - 접신으로 가는-과 너무 같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영매주의자들은, 모세율법을 그들이 무시하지 않는다면, - 예수님 말씀마따나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완성될 것이라 하셨거니와 - 그들이야말로, 돌로 쳐 죽이어야 할 대상인 것이다.

 

하용조 목사님 - 영매주의자로 변한 - 의 다른 말을 소개한다. "우리는 큐티라는 말을 쓰지만, 로렌 커닝햄 목사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십니다. 복음주의 계통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안다'고 하고, 성령파 쪽에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는데 다 똑같은 이야기입니다. 결국은 영으로 듣든, 책으로 듣든, 말씀을 듣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언제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할 것은 매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 출처:  http://blog.naver.com/chorok027?Redirect=Log&logNo=40066885258

 

결국, 하목사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읽으라는 독서로의 큐티가 아니라, 들으라의 의미, 곧, 영과의 교감을 목표로 한 큐티를 말씀하고 있음이 이에서 드러난 것이다.  그 영이 잡령인지, 성령인지,  인간의 영인지 아님, 성령 흉내를 내는 귀신인지는 불문한 채, 그저 성령이겠거니 믿고 들으라는 그것이나 같다. 그리고 그 틀은, 동양종교의 전해내려온 명상의 틀과 - 성령과 성경만 바뀐 채 -  그대로인 것이다.

 

** 실제로 큐티한 사람들이 써놓은 글들 -게시판 상 - 을 읽어보면 성경에 대해 자기들 마음대로 제 각각으로 뒤죽박죽 해석해놓은 것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너무 많이 퍼져 일일이 지적하기란 거의 불가능이다. 그들이 일관되게 전부 성령의 계시를 받아 쓴 것이라면 내용들이 통일되어야 함에도 그렇지 않은 것들을 본다. 얼마나 웃긴가. 잡령, 또는 자기 영이 성령으로 위장하여 그런 계시를 불러 주고 받아 적은 것이라면, 자기 기만의 위선쇼가 되는 것이다.

 

2010.2.07. 파아란 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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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정부와 666 오류    2010/02/07 02:34 추천 0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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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정부와 666설의 오류적 측면 - 다니엘로 본 

 

 

다니엘 2장의 느부갓네살 꿈에 나온 금, 은, 동, 철, 철과 진흙으로 구성된 형상을 해석함에 있어 철과 진흙으로 구성되었다는 발가락부분을, 고래로 줄곧 이의없이 열개 발가락의 10개 국가 출현으로 해석해오고 있음에 대해 반론하는 글이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에 나온 신상 같은 형태는 머리는 금, 가슴과 두 팔부위는 은, 배와 허벅지는 동, 종아리는 철, 두 발은 철과 흙으로 구성되었으며 나중에 하늘에서 날라온 돌에 의해 무너지도록 되어 있다.

 

그것은 차례로 나올 나라들의 형태로 다니엘은 마지막 발가락 부분에 대해 그것이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이며 그 뜻은 "다른 인종과 서로 섞일 것이나 피차에 합하지 아니함"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 나라가 얼마는 든든하고 얼마는 부숴질만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단2:43, 42]

 

이 마지막 등장하는 발가락 위치가 무엇을 상징하나는 점에서 기독교 종래 방식은 하나같이 발에는 당연히 열 발가락이 있으므로 열개 국가 출현이란 식으로 설명해왔다. 이것은 틀린 해석이다.

 

왜 그런가 하면, 그처럼 발가락 열개이기 때문에 열개국가다 는 해석이 맞기 위해서는, 두 다리를 형성한 철의 나라 역시, 두개 국가설로 해석해야 논리의 틀이 맞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  종래 해석들은, 발가락이 열개인 것을 강조하면서 그리 되면 다리 부분 역시 두개의 다리 라는 것, 배(놋으로 된)는 배에다 두개의 넓적다리까지 포함되어 세개가 되어야 할 부분 등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다리가 두개 있는 부분에선 두 개 국가설을 한번도 거론하지 않고, 하나같이 철의 나라는 철기로 전쟁강국을 만든 로마제국이라 단정하면서, 발부분에 와서만 그 발가락들이 열개이니, 열개 국가다 라고 주장한다는 것은 논리의 균일성에 비춰 적합한 해석이 아니다고 본다.  발부분의 10개 국가설이, 1970,80년대까지도 유럽연합 태동과 더불어 유럽연합이라고 지목되더니, 이제는 유럽연합이 별 볼일 없어지니, 심지어 아프리카연합, 아시아연합, 운운하며 각 대륙 연합설까지 나오고 있다. 주먹구구식 해석이다.

 

오히려 진흙이 섞였다, 철이 섞였다는 섞임의 부분을 다니엘은 강조했다. 이것은 그 성격을 보라는 힌트와 같다.  그리고 진흙은 철과 전혀 다른 성분이다.  다니엘이 해석한 그 형상의 행태가 거대한 신상 - 우상숭배를 위한 - 을 뜻한다는 점, 각 나라들이 마지막 돌이 날아와 부술 때까지 지속되리란 점, 하나님에 반대하는 세력의 상징이므로, 반이스라엘, 반유태 집결체라는 점으로 그 특징을 보아야 할 것 같다.

 

열개의 국가나 각 대륙 연합론- 각 대륙별 국가들이 연합하여 열개 연합을 이룬다는 - 따위는 너무 터무니없다.  (** 그것이 아무리 오래 전부터 내려져온 해석이라 할 지라도 논리상 일관되지 않아 실격이다.)

 

그리고 마지막 때에 세계정부가 나타나 전세계를 지배한다는 괴이한 가설도 프리메이슨 괴담과 같이 어우러져 요한계시록의 666까지 덧붙여 기독교 교인들 속에 널리 힘을 얻고 있는데 그것 역시, 다니엘이 설명한 것에 비춰 보면, 틀리다.

 

"서로 섞일 것이나 피차에 합하지 아니함"[단2:43] "다른 인종과 서로 섞일 것"[단 2:42] 

 

지금은 교통과 이민, 그리고 난민이 활발하여 각국가마다 다른 인종들로 뒤범벅되는 속도가 가속화 되었지만, 다니엘은 그것이 한 개의 나라라고 설명하지 않았다.  오히려 합하지 못한다, 즉 하나되지 못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다니엘이 말한 신상에 들어맞는 나라의 순서들이 바벨론, 페르시아, 마케도냐, 로마 라고 보아야 하고 그것이 맞다면, 마지막 발부위에 해당하는 나라 또는 세력이란  한 개 국가는 아니지만, 위 나라들이 점령했던 팔레스타인 땅과 긴밀한 관련이 있는, 즉 팔레스타인 땅을 약탈하는데 가담하는 세력들이라고 보는 편이 더 맞다는 것이 본인의 소신이다. 다니엘의 "피차 합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 예언대로 보면,  실재로 지금 이스라엘 땅에 눈독 들이는 세력들은 파타, 하마스 및 유엔, 카톨릭, 이란, 좌파 기독 등 여러 세력들이고 합하지도 못한다는 점에서 더 들어맞다.

 

그리하여 그것은 금, 은, 놋, 철 같은 국가 뿐 아니라, 하나님이 빚는 개인, 또는 불림받은 자들의 스스로 일컫는 진흙으로 빚은 토기에 해당하는 기독교 세력 - 유태민족 눈으로 볼 때, 중대한 반유태 세력의 큰 축의 하나인 - 과 동시에 각종 안티유태 세력들과 각 나라들의 범벅, 집결체이고 그들의 공통점은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을 대적한다라고 보면 맞을 것이다. 그러므로 다니엘 2장에 나온 신상예언으로 볼 때, 마지막 때 세계정부 등장이란 성경전후로 보아 전혀 맞지 않는 가설이라 본다.

 

기독교가 어찌 이스라엘을 적대하나 라고 반문하겠지만, 한국에서 일부 기독교회와 단체들이 내놓고 친북, 반대한민국 행태를 버젓이 벌이는 것을 보면, 불가능할 일도 아니다. 

 

666 숫자에 대해선, 최근 발견되는 초기 3세기 이전 쓰여진 파피루스 일부 사본들이 616으로 쓰여있는 것이 나와 논란이 생긴 중이다. 특히 이집트 옥시리쿠스  파피루스 사본의 요한계시록[파피루스 #115]에  "666 또는 616"으로 표기되었다. [옥스포드 보고 / 참조: 사진]  666을 네로의 상징이라 보는 관점에 대해, 본인은 그것도 해당되지 않는다고 보는 입장인 것이, 네로는 이 요한계시록이 쓰여지기보다 최소 몇년에서 몇십년 이전에 죽었다. 계시록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쓰였으므로 네로는 계시록이 쓰일 때는 이미 죽고 없는 인물이란 점에서 요한이 말한 '그 짐승의 표'를 '세어보라'라고 한 미래에 대한 주의란 점에서 네로는아닌 것이다.

 

오히려 솔로몬이 년간 금을 666 탈란트 거두었다는 데서 666의 의미를 찾는 편이 더 성경에 부합할지도 모른다. [왕상10:14]

   

적그리스도는 세계정부라기보다 이스라엘 성전 및 예루살렘 회복과 더 관련있을 것이고, 헤롯이 성전을 건축하고 난 후 예수님이 태어나셨듯이 적그리스도가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고 난 후 - 그리고 전세계에 황폐와 저주가 퍼지고 성전에는 3년반 후에 제사가 폐하여진 후 - 재림 메시야로 예수께서 다시 오시지 않을까 싶다. 성경은 의외로 반복적이고 나아가 매우 정확하기 때문이다.

 

2009.8.13. 파아란 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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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옥시리쿠스 파피루스 115 - 붉은 화살표 부분 'H'가 or(또는)을 뜻한다. H 다음 세글자가 600-10-6 이다.  

 

 

 

프리메이슨과 시온프로토콜, 일명 시온의정서=======================================================

 

 

본 필자는 유태인이 세계지배 목표삼은 비밀결사조직 프리메이슨 따위는 없다 라고 지난 글에서 주장했었다. 그런 비상식적인 것이 아닌, 실제의 프리메이슨은 17세기초 유럽에서 시작된 형제단, 일종의 노동조직, 친목조직이었으며, 현대로 와서는 개별적 지부형태로 된 점조직에 불과하다. 당시 유럽에선 사회적 제약 - 유럽 왕실들과 귀족들은 그들의 재정 불리 때문에 장인들에 의한 노조운동을 엄격히 규제했다. - 때문에 비밀스런 성격을 갖추었고 유럽 대부분의 지부들에이 - 오랜 유럽의 유태인 박해 전통에 따라 -  유태인 가입을 차단하거나 엄격한 규제를 두었다.  유태인들이 가담되지도 못하는데 그것이 어떻게 유태인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세계정부까지 꿈꾸는 수준이 되겠는가.

 

유태인들에게 비로소 가입(방문자 자격의)이 허용되게 만든 것은 1830년대 일단의 독일 지식인들이 프리메이슨의 유태인 가입 금지규약에 분개하면서부터다. 그 운동은 홀랜드, 영국, 프랑스로 퍼저나갔고 1848년 프랑스혁명 때까지 일부 지부에서는 유태인을 최소한 방문자로는 허용하게 되었다. 프랑스대혁명은 프리메이슨에서 유태인제외 규약을 느슨해지도록 일조했고 이후 프랑크푸르트 유태지부 같은 것은 기독교 지부에 의해 인정받는데까지 오른다.

 

그러나 넓은 프러시안 지역에 있는 프리메이슨은 줄곧 유태인 가입을 철저하게 차단했다. 프러시안 프리메이슨은 총 인원 만3천명에 164개 지부로 형성되었지만, 단 한 명의 유태인에 대해서도 가입은 커녕, 방문자로도 허용하지 않았다. 원래의 프리메이슨 규약에 의하면 종교차별을 하지 않게 되어 있었으나, 유태인에 관한 한, 그것은 지켜지지 않았다.

 

프러시안 프리메이슨들도 서서히 유태인 방문자를 조금씩 허용하기 시작했으나 1872년 비스마르크시대에 들며 반유태주의는 확산되고 강화되어갔다. 반유태주의의 본격적 시류가 시작되었고 자유결사 정신을 담은 프리메이슨 조직도 안티유태주의로 고착되었다. 대개의 기독교를 믿는 프리메이슨들은 자기들이 인권지향적이라 여겼으면서도 그럼에도 유태인이 가진 유태신앙은 프리메이슨에 해롭다고 보았고 유태인 가입을 반기지 않거나 나아가 금지했다. 이 두 경향은 이후 19세기를 지배했다.

 

1860년대 독일은 유태인과 프리메이슨 양쪽을 - 프리메이슨조직은 오히려 유태을 혐오 했음에도 - 사회기반을 해치는 악으로 동일시하기 시작했다.  이런 인식은 프랑스에도  퍼져나갔다. 프랑스에서는 유태인 메이슨의 위협' 류의 책들이 출판되었고 이 때, 오늘날의 반유태주의 확산에 가장 기여했던 문서인 러시아 비밀경찰 사주에 의한 문건 "시온 원로들의 장전"도 이 무렵 프랑스에서 출판되었다.(1872)  드레퓌스 사건(드레퓌스라는 유태인대령이 프랑스 군에 의해 독일간첩으로 누명쓰고 투옥된 재판, 후에 에밀졸라가 '나는 고발한다'를 써서 유명하다. )은 그런 흐름이 낳은 한 예였다.

 

시온 원로들의 장전- 한국에선 시온의정서로 알려진 - 이란 위작(타인의 것을 표절한 작품)은 유태인들이 따른다며 24개의 선언을 하는 형태로 이루어진 것이다. 러시안 저널리스트 마트베이 골로빈스키에 의해 1895 년부터 1902년 사이에 짜집기 및 표절하고 1903년 러시아에서 첫출판되었으며 1930년 후반 스위스 법정에서 위작한 것으로 판결났지만, 이미 전세계로 퍼져나간 뒤였다.

 

그 법정에서 두 명의 러시안들이 그 위작에 러시아 비밀경찰 표트르 이바노비치 라프콥스키가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것을 증언했다. 라브콥스키는 그 당시 러시아 비밀경찰의 파리 수뇌였다.

 

위작의 원본이었던 작품은 프랑스 풍자작가이자 변호사였던 모리스 졸리가 나폴레옹 3세를 세계지배를 꿈꾼다고 풍자한 내용을 그려 출판한 '마키아벨리와 몽테스키외의 지옥에서의 대화'(1864)였다. 또 모리스 졸리는 그 소재를 1856년에 나온 유진 수의 소설 '사람들의 미스테리'에서 도용했다. 유진 수의 소설에는 예수회;제수잇파 수도승들이 세계지배를 꾀하는 것으로 그려졌지만, 졸리는 그 예수회를 나폴레옹 3세로 바꾸었다.  그리고 모리스 졸리와 유진 수의 원 소설들에는 유태인도 프리메이슨도 등장하지 않았다.

 

러시아 비밀경찰이 만든 위작 '유태원로선언;시온의정서'은 모리스 졸리의 것에다 1872년 러시아어로 번역돼었던 반유태 독일 소설가 허르만 괴드헤의 소설  '비아르쯔' 중 한 장에서 표절했다. 골로빈스키는 졸리가 만든 소설 속의 나폴레옹 3세를 대신, 유태인을 대입시켜 넣었다. 이렇게 한 이유는 당시 러시아 짜르를 위협하던 러시아의 계몽운동, 자유화 바람의 배후에 유태민족이 있다고 의심했기 때문이다.

 

유태인학살 선동으로 유명했던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1세는 26세의 나이로 준비되지 않은 채 짜르가 되었다. 영국의회를 돌아본 경험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지방의회 대표들에게 자기 권력을 나눠줄 생각이 없었다. 러시아에도 유럽과 같은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그것을 니콜라이1세는 유태민족에게 사회적 불안을 씌워 잠재우는 쪽을 택했고, 이 때 벌어진 러일 전쟁의 참패도 국민들 시선을 다른 쪽으로 쏠리게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황실의 내무장관은 신문 지면을 구매, 정기적으로 반유태 선동 기사를 게재하는 수법을 썼다.

 

러시아 황실과 비밀경찰이 만든 시온 원로들의 선언은 그 간 나온 반유태주의 산물 중 가장 효과적인 작품이 되었다. 특히 러시아혁명을 맞으며 황실을 추종하던 백계러시안들에 의해 극동을 당시 점령하고 있던 일본군 손에까지 확산되었다. 

 

일본제국정부는 러시아의 허위작품에 불과한 시온원로들의 선언에 충격을 받고, 오히려 유태인의 힘을 믿어, 유태인들을 적극 보호하는 정책을 편 것은 유명한 일이 되었다. 

 

시온의정서의 내용은, 유태인들이 세계지배를 하기위해 비유태인들의 귀족정치의 특권의 허무주의, 알콜중독을 이용한다. ;다윈니즘, 니체주의 진보주의 사회주의 공동체주의, 무정부주의, 유토피아니즘을 사회질서 파괴를 위한 선동적 아이디어로 적극 사용한다. ;물질주의 전염, ;세계정부 구축, ;세계전쟁 사용, ;거짓을 지렛대로 사용 도덕적 고지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민족간 투쟁과 학살을 유도한다, ;세계적 투표권행사,; 평화의 적을 승리하게 하는 방식으로 시민자유권 제한, ;신문의 자유, 연설의 자유, 인권과 민주주의의 생존을 강조하는 방식을 창출하여 결과적으로 기만과 환상에 사로잡히게 하여 실제적 억압 구축,; 오락선동,; 포르노 확산, ;유다이즘을 최종적으로 구축케 하기 위해 기독교와 이슬람 등 종교와 문화 파괴 후 무신론으로 이행케 한다.; 세뇌,; 경제공황, ;외국채무에 의한 재정적 파탄 유도, 국내은행 붕괴 유도, 화폐시장 교란, 정부신용기관으로 그런 기능들을 대체케 한다. ; 악행 정당화, 및 위대한 신사회를 향한 기대 고취, ; 럭셔리 소비재 생산감축, 생산설비 파괴, 알콜과 마약 확산, 자유원칙이란 위장 하에 폭력 도발, 이 모든 것은 '유태인의 제왕'이 구세주로 등장하게 하기 위한 사회파괴조치,; 유태인의 왕의 초월적 도덕성의 무흠결, 직통승계, 왕의 훈련로 '프로토콜; 이런 내용들이 시온원로선언;소위 시온의정서'의 각 장 선언 형태로 구성된다.

 

시중에 떠도는 프리메이슨에는 유태인들이 세계지배와 세계정부를 구축하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이즘이나 선동, 거짓 등을 다 이용한다는 시나리오로 되어 있는데 위의 내용과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러시아 황실과 비밀경찰이 만든 시온프로토콜, 시온의정서는 이후 십여차례 이상 - 한국에서 나온 소설류까지 합치면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 여러 사람들의 손과 상상력을 거치면서 증폭된 내용으로 출판을 거듭해왔으며 현대에는 아랍의 반유태주의 확산에 힘입어 소설이 아닌 기정사실 처럼 퍼져 버렸다.

 

이 시온의정서를 만든 러시아비밀경찰은 프리메이슨이 비밀집회 성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프리메이슨과 유태인을 결합시키면 그 효과가 배가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유태인들은 아무 비밀결사단체 같은 것이 없었음에도 거기에 프리메이슨을 덧붙임으로써 유태인들 전체를 음침하게 뒤에 숨어 세계지배나 꿈꾸는 괴물종족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고 그럼으로써 사회나 세계에 벌어지는 모든 현상 뒤에 머리좋은 유태인이 숨어 조종하고 있다고 믿게 만듦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어느 곳에서든 유태인을 경계하고 혐오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허위에 의한 명예훼손이 넘쳐나는 현상, - 유태인을 삼키기 위한 - 은 성경상, 이미 이루어진 예언이기도 하고 요한계시록 12장에 나온, 철장으로 온 세상을 다스릴 예수를 낳았으며 열두 지파를 머리에 인 여자 곧 이스라엘을 삼키고 홍수에 쓸려가게 하려는 끊임없는 용의 머리에서 나온 계략 중 하나이기도 한 것이다.

 

이것은 이런 형편없는 중상모략을 당하는 이스라엘의 탄식이기도 하다.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물들이 내 영혼에까지 흘러 들어왔나이다  나는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가니 큰 물이 내게 넘치나이다  " -시편69:1,2

 

2009.7.01. 파아란 한은경.

 

 

유태인이 당하는 세가지 억울함과 로마제국의 유태인두세===========================================================

-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금식이란,

 

 

한 십몇년 정도 당시 유행하던 개신교의 기복교리가 싫어서, 카톨릭으로 갔다가 온 적이 있습니다. 교회에 다닐 동안은 활동을 많이 하던 사람이 카톨릭으로 옮겨가면서는 일체의 활동을 끊고 주일미사만 참석했습니다. 그러면서 한 일은, 성인전을 닥치는 대로 읽어나간 것이었습니다. 

 

성인, 성녀전을 열심히 읽은 이유는, 그 분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사랑했기에 성인의 반열까지 올라갔는가가 궁금해서 였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자 그리했을 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저의 스타일을 정의하자면, 마음에는 주를 향한 열정이 그득한데 행실에는 전혀 없는 그런 허접 류에 해당한다 할 것이고 지금도 비슷합니다.

 

주님께서는 어떤 것을 기뻐하시는가.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사야 58:6]

 

이사야는 어떤 것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인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금식같은 종교적 활동 이전에 사회의 그릇된 일들을 풀어주는 것 고통당하고 억압에 묶인 사람을 푸는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제가 이스라엘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이스라엘이 부당한 억울함을 당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당하는 억울함은 부당하게 씌워진 멍에, 억압과도 같습니다. 삼십몇억 이슬람 인구가 주세력이 된 국제사회에서 소수 약소민족이 된 이스라엘이 왜곡당하고 불의, 불공정하게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에게 씌워진 가장 암울한 혐의는, 첫째는 정체없는 프리메이슨 괴담, 유태세력이 모든 것의 뒤에 숨어 세계지배정부를 꾀하고 있다는 것이고 - 이것에 대하여는 나중에 자세히 쓸 날이 있을 것입니다. - , 둘째는 있지도 않은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을 강제로 재산몰수하고 강제로 쫓아낸후 그 땅을 차지했다는 것이고, 세째는 지금도 잔인하게 팔레스타인 아랍인에게 총질하고 학살한다는 누명입니다. 

 

그 있지도 않은 부당한 혐의에 근거해 미국의 오바마는 이스라엘의, 우리 경상남북도 크기 정도 밖에 안되는 그 손바닥 만한 땅을 - 그 땅의 60%는 하마스, 헤즈볼라의 미사일 겨냥지대이고 - 뚝 떼어, 예루살렘까지 포함시켜 팔레스타인 난민이라 우기는 무뢰배들에게 내어주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 땅이란, 원래 60-70%가 사막에다 모기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늪지대여서 아랍인들이 살기도 기피한 그런 대지로 구성되었었습니다. 그것을 이스라엘인들이 피나는 개척과정을 거쳐 옥답으로 이뤄놓았더니 강탈해가겠다고 그런 삼십억 이슬람 요구에 오바마가 앞장선 강도짓이나 같습니다.

 

그런데 최근  새로운 고통이 - 유태에 대한 - 저의 가슴에 와 얹혔습니다.

 

그것은 로마제국이 예루살렘 멸망후 유태민족에게 그리고 유태교 형식을 따르는 이방인에게까지 유태민족세금을 부과함으로써, 유태교를 기독교가 어떤 식으로 완전히 결별하고 버리게 되었는지 깨달으면서 입니다.

 

로마는 유태인이란 것을 알게되면 어린아이로부터 노인까지 남녀구분없이 일인당 이틀 치의 벌이에 해당하는 인두세를 거뒀는데, 이것은 한 집의 가장에게 할아버지부터 어린아기까지 열명의 대식구가 있을 경우 대략 한달벌이를 그대로 로마에 바쳐야 한다는 규정이며 그것을 못 내면 감옥에 갇혔습니다. 게다가 그 바친 세금은 무슨 용도였는가 하면, 쥬피터 같은 이방신전의 건축이나 제사비용에 사용되었습니다. 

 

이런 규정은 로마의 세금 거두는 사람들, 세리들로 하여금 특히 유태인에게 관련된 일과 특히 유태회당과 유태교의 형식을 따르는 사람들에 대해 밀착 감시하도록 만들었으며 유태교로 개종하려는 이방인들의 발길을 묶었으며, 나아가 갓 출범한 예수를 구주로 아는 유태인들과 이방인들의 묶음을 와해되게 하였던 것입니다. 

 

나면서부터 유태인이고 하나님 앞에 정결함을 지키려던 유태인들은 일년내 열심히 일하여 그 한달치분을 자신과 가족을 위해 세금으로 바쳐야만, 그나마 감옥에 갇히지 않는 고역을 평생 견디어야 했습니다. 또, 모세율법을 지키면서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섬기려 했던 유태인과 이방인들 조차도, 그 세금부담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 로마의 세법, 피스쿠스 쥬다이쿠스 제도를 알고 나면, 사도 바울이 유태인이면서 왜 거듭 율법에서 벗어나고 믿음만을 위주로  살도록 강조하는 글을 주로 썼던지 그 배경에 대해 보다 이해하게 하여 줍니다.

 

그리하여, 결국, 오늘날 우리가 보는 유태교와 철저하게 분리된 기독교 양태란, 곧, 로마, 또는 로마를 내세운 사탄의 이간계획이 성공적인 결실을 맺은 바로 그 결과물인 것을 알게 됩니다.

 

유태인으로 오신 예수를 모세율법이 말씀한 구세주라고 믿으면서도 무거운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세금에 걸린 유태교회, 모세율법과 아무 상관없다고 보여지기 위해서, 예수교인들은 유태교가 가르쳐준 것들을 벗어던지는 상황에 몰렸고 그렇게 초대교회 교부들이 가르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나아가, 유태교회를 예수를 죽인 원수라는 인식하에 땅끝까지 쫓아가 모욕, 학대하고 죽여도 괜찮은 열등한 하류민족으로 여기도록 하였습니다.  

 

이 문제는 그리하여 오늘날까지도 많은 기독교인으로 하여금, 율법에 대해 애매모호한 관계를 갖도록 그리고 유태인에 대해 질투 비슷한 감정을 갖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고찰해야 할 문제는, 현재의 유태교와 기독교의 분리가 하나님이 원하신 것이 아닌, 사탄의 의도 - 로마제국이 매긴 세금 -  때문인 것이 드러난 이상, 유태교에 대해, 또 유태민족에 대해 교회가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할 것인지, 그리고 현 대체신학 - 이스라엘은 예수를 거부함으로써 구원에서 멀어지고 그 장자권을 이방기독교가 이어받았다는 교설 - 을 이제 내버려야 할 시점이 온 것이 아닌지, 진지하게 염려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방법은, 시대를 따라 달라져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에덴동산에서는 선악과만 먹지 않으면 되었지만, 에녹에게는 율법이 없음에도 동행하시고 하늘로 데려가셨습니다.  모세 때에는 율법만 정직한 마음으로 지키면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없던 시기에는, 현 교회에서 가르치는 믿음 만능의 교리가 그들을 구원에로 이끄는 방주가 될 지 몰라도, 이스라엘이란 나라가 구약의 예언대로, 우리 눈앞에 드러난 이제에 와서는, 더 이상, 대체신학에 속지 말아야 하겠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고, 또 주님께서 마지막 때에 어떠한 예복을 우리로 하여금 입기를 원하시는가의 답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믿음 만능의 교리는 온갖 사람을 왕의 잔치로 불러들이게 하였지만, 어느 날 왕이 오시면, 그 중에서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에게 분노하시고 걸러 내실 것입니다. 즉, 자신이 믿는 믿음 하나면, 무조건 하늘나라로 끌어올리는 동아줄이다라고 할 그런 절대믿음 시기가 지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기뻐하실까. 이사야의 답은 그 때에나 지금에나 똑같이 우리에게 향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짐작하게 해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억울하게 묶인 강압, 억압, 흉악한 자들의 억압에 갇힌 약한 사람을 위하여 무언가를 하라는 것입니다.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니리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이사야 58:12]

 

저는 그것을 위하여, 지구위에서 가장 억울한 누명을 당하고 고통당하는 이스라엘, 하나님의 장자들을 위하여 글을 앞으로도 쓰려고 합니다.  위하여 기도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로마8:15]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이방기독교도들인 우리가 '양자의 영'을 받았다고.

 

그럼, 장자의 영, 친자녀의 영은 누구가 가지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바로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이방기독교도들로써는, 하나님의 가없는 은혜로써, 양자됨의 은총을 입었으므로, 더더욱 길을 잃은 장자, 이천년간 학대당하였던 친자녀들을 위함은 그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 다수에게 구원의 길을 주시고자, 부러 그의 친자녀들로 하여금 광막한 황야의 길에서 헤매도록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우리가 진 빚은, 그러므로 성경을 비롯하여,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금식을 기뻐하시는가, 누가 지금 우리 눈앞에서 부당한 취급을 받으며 고난 당하고 있는가. 곧, 그 -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 의 결박을 풀어주는 일이 될 것이고, 저의 이스라엘을 위한 글들은 그리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글이 되어지기를 간구합니다.

 

2009.6.14. 파아란 한은경.

 

http://cafe.daum.net/paaran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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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원 목사 정체 "예수도 성을 즐겼다"?    2010/02/06 17:00 추천 0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hansu0001/4500444

이동원 목사 정체 "예수도 성을 즐겼다"?

 

이하 발췌:

"'예수님도 성적 생활을 하셨다」
이 말은 저술가이여 지구촌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이동원 목사가 쓴 '가정행전'(규장 문화사 148쪽)에 나오는 소제목이다.
필자는 그 책을 일고 세 번이나 저자에게 FAX로 질의하고 대답이 없으면 공개 질의하겠다고도 했다. 왜냐면 『침묵도 대답(긍정)』이라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1.예수님도 결혼할 가능성이 있었다?
이동원 목사는 말하기를 『만약 십자가라는 사건이 없었더라면 예수님께서 결혼을 피하셨을까? 또한 십자가가 그분의 생애에서 매우 늦게 발생하는 사건일 정도로 예수님께서 오래 사셨다면 그분이 결혼을 피하실 이유가 있었을까? 이런 생각을 종종하게 됩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결혼을 선택하셨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고 생각합니다』(143쪽)
그러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가?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이 땅에 오셨다.(막 10:45). 예수님에게 『만약 십자가라는 사건이 없었더라면』이라고 가정하는 것부터가 예수님이 오신 목적을 흐리게 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2.예수님도 성을 즐기신 분이다?
이동원 목사는 주장하기를, 성생활이란 매우 좁은 의미에서 성교만을 생각하지만 그러나 넓은 의미로는 남성과 여성의 우정 등이 모두 성적 삶의 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말하기를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도 성을 즐기신 분입니다. 그분은 여성들과 자리를 같이 하시고 그들과 아름다운 우정을 나누시기도 했습니다. 저는 넓은 의미에서 예수님께서도 성적인 삶이 있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143쪽)"

 

출처: http://cpflxl.egloos.com/8411136

 

이런 자가 퍼뜨린 관상기도, 그 전단계인 큐티를 같이 퍼뜨리고 있는 온누리 교회는 회개해야 한다.

큐티를 오래 하다보면 - 명상을 오래 하다 보면 - 결국 해골속에 떠오르는 개념은 "성"으로 갈 수 밖에 없다.

사단이 인간을 무너뜨리는 가장 발빠른 계단이 음란이기 때문이다. 발람의 예처럼.[민수기]

 

파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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