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아람 기자 aramu@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입력 : 2009.11.06 03:19
9일 '도산경영상' 받는 김용복 서울영동농장 명예회장 1983년까지 1100만달러 송금 외화 획득한 공 인정받아1975년 4월, 아내와 두 자식을 고국에 남겨둔 41세 가장(家長)은 사우디아라비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호주머니엔 단돈 7달러뿐이었다. 사업에 실패하고 사우디의 미국 회사에 취직했던 중년의 남성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마지막 기회다. 돈을 벌지 못하면 사막에 묻히겠다."
5일 서울 면목동 사무실에서 김용복(75) 서울영동농장 명예회장은 옛일을 떠올리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오는 9일 사우디 사막에 농장을 창업, 엄청난 외화를 벌어들인 공을 인정받아 도산아카데미가 수여하는 '도산경영상'을 받는다.
전남 강진에서 태어난 그는 등록금이 없어 중학교를 마치지 못했다. 17세에 고향을 떠나 부산 미군부대에서 '하우스보이'로 일하며 영어와 운전을 배웠다. 야간대학을 나와 5년간 베트남에서 기술자로 일한 돈으로 서울 말죽거리에 논·밭을 사 큰돈을 만졌지만 사업에 손을 댔다. 직원 2명이 기숙사에서 연탄가스로 죽는 바람에 다시 빈털터리가 됐다.
- ▲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늘 배고팠는데도 세상에 대해 원망이나 울분을 가져본 적이 없어요. 그런 천성을 타고났으니 전 축복받은 사람이에요.”9일 도산경영상을 받는 김용복 서울영동농장 명예회장./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신문을 보다 사우디에서 일할 한국인 기술자 모집 공고를 찾았다. 그가 7달러를 들고 사우디행 비행기를 탄 이유였다.
사우디에서도 그는 돈 벌 궁리를 거듭했다. 오일 달러가 넘쳐 한국 건설업체들이 몰려들 때였다. 문득 그의 머리를 스친 것은 '김치'였다.
"사막에 무·배추 농사를 지어 김치를 담가 건설회사에 납품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주변 사람들은 "미쳤다"며 뜯어말렸다. 그는 굴하지 않았다. 땅 2만평을 임대받고 한국에서 농부를 데려다 지하 1000m에서 물을 퍼올려 농사를 지었다. 현지 사람들이 쓰지 않는 닭똥을 가져다 퇴비로 썼다. 1979년 4월 20일, 마침내 배추 500㎏ 생산에 성공했다. 그날이 '서울 영동농장'의 창립기념일이 됐다. "라면 한 개로 두 끼를 때우며 시작한 사업이 승승장구했죠. 15만 건설역군들에게 야채를 공급했으니까요. 1980년부터 3년간 저는 한국에서 개인으로는 가장 많은 외화를 외환은행에 유치한 사람이었어요. 79년부터 83년까지 1100만달러를 한국으로 송금했으니까요."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황무지와 뻘을 사 개간한 그는 현재 강진군 신전면 일대에 100만평의 농경지를 소유하고 있다. 환경농법과 그린 음악농법을 도입한 이 땅에서 연간 1만여 석의 쌀이 생산된다. 89년엔 10억원을 들여 '용복장학회'를 설립,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학비를 대주고 있다. 2005년엔 '한사랑농촌문화재단'을 만들어 매년 우리 사회의 숨은 애국자 5~6명에게 '한사랑농촌문화상'을 수여한다. 앞으론 굶는 어린이를 위한 복지재단을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다.
"어린 시절 전 항상 굶주렸죠. 어머니를 일찍 여의어 어머니 사랑에 굶주렸고, 먹을 것이 없어 굶주렸고, 배움에 굶주렸죠. 이 세가지 굶주림이 저를 성장시킨 에너지가 됐어요. 그래서 제 인생 철학이 궁즉통(窮則通·궁하면 통한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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