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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나도 한 며칠 바빴다.
할아버지의 입원이 예상보다 길어져 엄마는 병원에 왔다갔다하느라 바빴고, 나도 덩달아 엄마꼬리에 붙어 다니느라 바빴다. 그저 엄마가 가자면 가고, 자라면 자고, 먹으라면 먹고, 때리면 맞고, 혼내면 혼나고, 뽀뽀하자면 입술 내주는 그런 수동적 삶이다. 학교에서 성취도평가 시험이란 게 있어서 엄마는 그 와중에 새벽까지 잠도 안 재우며 나를 괴롭히기까지 했다. 엄마 본인이 바빴던 관계로 시험 하루 전날 벼락치기를 했는데, 어디서 가져왔는데 도무지 1학년수준이라고 할 수도 없는 고난이도의 문장제 문제집을 들고 와 나를 고문했다. 엄마는 공부 시작 전, 이 한마디를 먼저 했다.
"오늘 밤, 엄마 입에서 튀어 나오는 그 어떤 말과 행동도 내일이면 잊어라. 머리위로 수증기날리 듯 훌훌 날려버려! 그게 널 위해서도 엄말 위해서도 좋아!"
비장한 엄마의 표정에서 난 그날 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짐작할 수 있었고,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난 서러웠고, 무서웠고, 괴로웠고, 그래서 꺼이꺼이 울며 엄마를 위한 공부를 했다. 다음날, 시험은 껌처럼 쉬웠고 난 엄마한테 당당히 말해주었다.
"엄마, 어젯밤 엄마가 가르쳐 준 문제 하나도 안나왔어요!"
기뻐하는 엄마를 보는데, 수증기처럼 날려 버리라는 그 말이 자꾸 생각나는 건 왜인지. 그렇게 마음에 걸리면 안 그러면 되잖아. 맨날 나한테는 후회할 짓 하지 말라고 가르치면서. 우리 엄마도 가만 보면 참 돌***다.
할아버지는 폐에 생긴 종양 조직검사를 위해, 가는 주사바늘을 꽂아 조직을 뽑아내는 과정에서 폐에 구멍이 생겨 생고생을 하셨다. 이미 할아버지는 심장 수술도 하셨고 얼마전엔 폐가 굳어가는 그런 병도 진단받은 상태라 가족들은 할아버지의 새로운 병에 대해 별로 예민하게 반응을 안하다. 엄마말로는 사람이 너무 이것저것 많이 아프면 그렇게 된단다. 그런데 병원에서 보는 외가 식구들은 참 행복해 보인다.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만 시골에 사시고 엄마네 4남매는 모두 서울에 살기 때문에, 외할아버지나 외할머니가 아프셔서 서울 병원에 올라 오실때마다 식구들이 다 모여 오히려 더 시끌벅적 활기가 느껴진다. 이번에도 할아버지가 우리집에 며칠 계시는 동안 외삼촌이랑 이모가 놀러 와서 좋았고, 입원이 길어지면서 외할머니까지 올라오자 아예 병실에서 온가족이 다 모여 명절처럼 흥겹기까지 했다. 흉부외과 병동의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환자들 속에서, 할아버지 역시 치명적인 병이 하나 더 얹어지는 상황이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가족이 다 한데 모인다는 게 마냥 좋고 신나 보였다. 옆 침대에선 끙끙대는데도 소곤소곤 밀린 얘기들을 하며 웃고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그런다. 병실 사람들도 딱히 짜증내는 사람도 없다. 엄마 말로는, 병치레가 잦고 깊을 수록 차라리 축 처져 죽을 날 받아놓은 듯 있는 것 보단 웃으며 별일 아닌냥 서로를 대하는게 훨 낫다고 했다. 옆침대 젊은 형아는 군대서 쓰러져 세브란스로 실려와 심장수술을 받았단다. 의사들이 와서 숨쉬는 연습(?)을 시키는데 헉헉대며 숨쉬는 훈련을 하는게 너무 불쌍해 보였다. 숨쉬다 죽을 것 같았다. 예전에 할아버지도 그랬단다. 엄마도 심장이 안좋다고 하니 엄마도 어쩌면 똑같이 그럴지도 모른다. 사는게 뭔지 참...
엄마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한테 그랬다.
"엄마, 아빠는 병원에 있는게 좋제? 돈 걱정만 없으면 이렇게 병원에서 착착 갖다주는 깔끔한 병원밥 먹어가며 유유히 지내는게 좋제" '라고.
사는게 늘 바쁘고 분주했던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에겐 병원이 가장 안전하고 속편하며 가족까지 한데 모이게 하는 최고의 휴식 공간 인 것 같다. 늘 크고 작은 병이 끊이지 않는 엄마네 가족들에겐 병원이 집처럼 편한 모양이다.
너무 그러면 안되는데. 내가 의사가 되면 몰라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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