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시인 김민식
충남 청양군 칠갑산 아래 장평면 도림마을에 사는 청년 김민식은 시인이다. 시집 두 권을 내고 세 권째를 준비하고 있는 시인은 아프다. 잠자는 시간은 물론 깨어 있는 시간까지 하루 24시간을 누워 있다. 민식은 아프다. 근이영양증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 온몸 근육이 조금씩 사라지는 병이다. 팔다리, 얼굴, 어깨에서 시작해 조금씩 내장 근육으로 증세가 파고들어 소화 기능이 약화되고, 순환 기능도 약화된다. 병원에서는 스무 살을 넘기기 어렵다고 했다. 시인 김민식은 1982년 4월 24일 생. 올해로 만 스물일곱 살이다. 기적의 청년 시인 김민식 이야기.
- ▲ 근이영양증을 앓고 있는 청년 시인 김민식.
2009년 추석 사흘 전 양철지붕을 올린 전형적인 시골 농가 방구석에 민식이 누워 있다. 밤송이가 굴러다니는 뒷산 아래, 청마루 문을 열면 정면에 그가 사는 방이 있다. 창문 아래 앉은뱅이책상 위로 컴퓨터 모니터가 솟아 있다. 길다란 기둥 위로 모니터가, 마치 스스로 그러한 듯이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 아래에 에어쿠션을 푹신푹신하게 깐 요가 깔려 있다. 요 위에 민식이 누워 있다.
눈은 언제나 모니터를 향해 있다. 3년 전에 27킬로그램이었는데, 이후로 몸무게를 재지 않았으나 훨씬 더 몸이 빠졌다고 했다. 성장한 청년이, 자기 나이보다 작은 몸을 가누지 못해 모니터와 동무하며 이렇게 누워 있다.
- ▲ 김민식은 평생을 이렇게 모니터와 벗 삼아 살고 있다.
왼쪽 구석 책꽂이에 책들이 제법 많이 꽂혀 있지만, 민식은 책을 읽지 못한다. 문맹이 아니라 책을 집어들 힘이 없다. 대신 민식은 누군가가 설치해준 높다란 모니터와 단추가 여럿 달린 장애인용 마우스를 놀리며 인터넷을 통해 세상과 소통을 한다.
1992년 봄 1992년 초등학교 4학년 신학기가 시작됐다. 민식은 7킬로미터 아래 미당초등학교에서 새 교과서를 받아들고 오다가 트럭에 다리를 치었다. 의사가 말했다. “다친 건 큰 문제가 아닌데, 더 큰 문제가 있어 보이니 더 큰 병원으로 데려가시라.”큰 병원에 가니, 환자 민식이를 밖으로 나가라고 하고는 부모에게 병명을 알려줬다. 근이영양증(muscle dystrophy). 온몸의 근육이 조금씩 사라지는, 그래서 스무 살 되기 전에 심장 근육이 사라지는 순간 숨을 멈추는, 악마 같은 병이라고 했다.
민식이 말했다. “어릴 때니까, 그게 뭔지 몰랐다. 그런데 자꾸 이상해지니까 결국에는 내가 무슨 병인지 알게 됐다. 그때 느낌은, 뭐랄까, 표현할 방법이 없다.”결국 열네 살 무렵 그나마 신세지던 휠체어도 무용지물이 되고 민식은 방에 누웠다. 누워 있는 동안 근육은 차츰 사라져갔다. 발은 오그라들고, 손은 펴지지 않고, 몸무게는 두려울 정도로 줄어갔다. “너무 화가 나서 벽에다 낙서만 하고, 강아지 못 살게 굴면서 화를 풀었다”고 했다. 그러다 글을 알게 된 것이다.
희귀병 환자, 시인이 되다 사람이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행위를 ‘반성(反省)’이라고 한다. 일어서는 것이 불가능해진 1996년 무렵, 낙서만 하던 민식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천정을 보며 상상한 일들과 정상일 적 겪은 일들을 종이에 써내려갔다. 분통만 터지던 하루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집안 벽은 낙서로 채워지지 않았고, 강아지는 행패를 당하지 않게 되었다. 글을 쓰기 위해 민식은 책을 읽었다. 아직 힘이 남아 있는 손과 팔로 책장을 넘기며 공부를 했다. 모자라는 어휘와 이해력을 뛰어넘기 위해 같은 책을 백번씩 읽었다고 했다. 그렇게 소유하게 된 어휘와 상상력으로 시를 썼다.
1996년, 그 많은 시와 수필 가운데 하나를 한 잡지사에 보냈다. 언제 죽을 지 모를 어린 시인의 삶에 천사들이 찾아왔다. 어떤 천사는 컴퓨터를 들고 찾아왔고, 어떤 천사는 도너츠와 피자를 들고 날아왔다. 천사들은 때로는 어린 시인을 데리고 개울가로 가서 몸을 씻겨주고 함께 놀다 푸드득 날아갔다. 그 가운데 장준(36)이라는 사진가가 있다. 서울 남대문에서 옷을 파는 사내인데, 민식이 친형처럼 따른다. 장준이 말했다.“민식이와 함께 있다 보면 민식이가 내 삶을 돕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즈음 장평우체국을 통해 배달된 편지들 가운데 1등이 민식에게 온 편지들이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깔아준 인터넷회선과 함께 민식은 세상과 드디어 연결됐다. 키보드와 마우스만 있으면 세상과 함께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천사가 안겨준 컴퓨터로 시를 써서 민식은 장애인대회에서 상을 탔고, 그게 계기가 되어 민식은 시집을 냈다. 그것도 두 권이나. ‘삶은 사는 것만큼 아름답다’ 그리고 ‘사는 날까지 행복하고 아름답게’. 죽는 날까지가 아니라 사는 날까지라고 했다.
때로는 꽃이 되고 싶다 김민식 아주 가끔씩 난 온몸을 촛불처럼 녹아내리고 남아 있는 허물의 찌꺼기를 흐르는 물에 뿌려 한 송이 꽃으로 태어나는 꿈을 꾼다.
(중략)
꽃은 시들면 아름다움을 그리워하게 되고 옆에 있을 땐 소중한 것을 모르다가 떠나고 나면 그리움으로 가슴에 남게 되는 것이기에
내 마음 꽃이 되어 그리움 담아 나로 보이게 하는 꽃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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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식의 할머니 복진옥
할머니 복진옥 이야기 여든이 넘은 복진옥 할머니. 민식은 “다들 고맙지만, 할머니가 제일 고맙다”고 했다. 아빠 엄마가 일하러 나가고 나면 뒤치다꺼리는 100% 할머니가 한다. 밥풀을 떼서 먹여주고, 티스푼으로 물을 흘려주고, 욕창 생길까봐 자리를 갈아주고, 행여 무슨 일 생길까봐 혼자 놔두고 바깥나들이 꿈도 꾸지 않는 할머니다. 민식의 가족들도 “할머니가 저 아이 목숨 부지해준 것”이라고 말했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지금 대학생인 두 살 터울 동생 형식은 공부하러 대전으로 갈 때까지 “우리 형 내꺼다”라 우기며 형을 따랐다. 가족이 고맙다. 그리고 아무 대가 없이 그저 와서 놀아주고, 씻겨주고, 마당에서 한뎃잠 자며 함께 있다가 돌아가는 천사들이 고맙다. 그런데 할머니는 작년 말에 외출하다가 다리가 부러져 서울 큰아버지 집에 가 있다. “나 때문에 그렇게 고생하셨는데, 얼마나 힘이 드실까.” 민식이 괜히 허공을 바라본다.
천사들과 함께 지내며 세월이 흘러갔고, 어느덧 민식은 스물일곱 살이 되었다. 세월에 반비례하여 근육은 사라져 지금은 나이보다 더 작은 몸의 소유자가 되었다. 그 사이에 민식은 어린아이에서 소년이 됐고, 소년은 청년이 되었다. 청년은 속 깊은 시인이 되었다.
시인, 작곡을 하다 그리고 작곡을 한다. 인터넷을 뒤지다 우연히 발견한 작곡프로그램. "너무 힘들어" 하면서 그가 만든 곡들은 그의 눈망울만큼이나 맑고 명징하다. 음원을 샘플링해 편곡한 곡도 있고, 온전하게 만든 곡도 있다. 모두 에어침대 위에 모로 누워서 오른손과 왼손 손가락 몇 개 겨우 움직여서 만든 곡들이다. “누워 있다 보니 밝은 노래를 듣고 싶어서”손가락만 겨우 움직이는 청년이 만든 곡이 50곡이 넘는다.
시인, 스스로를 말하다 그 몇 안 되는 신체 부위로 민식이는 그렇게 할 일이 많다. “운명이라는 것은 믿지 않는다. 운명대로 세상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게 되지 않으니까 스스로 개척해야 하지. 그런데 나는 보통사람보다는 두세 배 더 노력해야 개척할 수 있으니까 조금 힘들긴 하다.” 민식의 말이 이어졌다. 대화 행위 자체가 힘겨운 듯했다.
“남보다 자유롭지 못한 건 있지만 그걸 글로 표현하고 인터넷으로 활동하고 있으니까 딱히 남보다 안됐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냥 포기하고 마는 다른 사람들이 더 불쌍한 거 같다.”
“걸을 수 있다는 게 복인 줄 모르는 사람도 많더라. 걷는다는 느낌을 다시 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 그걸 아예 잊어버린 것 같다. 요즘은 걷는다는 느낌이 뭔가 자주 생각하고 있다.” 몸 작은 시인의 말에서 배어나오는 영혼이 하도 맑아서, 그를 향해 내미는 카메라와 캠코더가 미안하고 민망했다.“하늘이 부르는 날까지 그저 제 할 일 하면서 살 것”이라고 내 눈앞에 누워 있는 맑은 영혼이 나지막히 덧붙인다. “스무 살에 죽는다고 했는데 아직 멀쩡하니, 의사 말은 반의 반만 믿기로 했다”고, 슬쩍 웃으면서.
- ▲ 어느 화가가 그려준 김민식의 초상.
몸 작은 시인을 만나기 위해 글이 안 풀리고, 음악이 풀리지 않으면 시인은 인터넷으로 들어간다. 싸이월드 미니홈피(www.cyworld.com/Eternity61)가 그가 세상을 향해 열어놓은 창문이다. 네이트 메신저 id는 skyminsik62이고, 이메일은 skyminsik62@naver.com이다. 62는 그가 좋아하는 메이저리그 박찬호의 등번호다. 자, 시인 김민식은 수필집을 내고 싶다. 그러기 위해 책을 읽고 싶은데 읽을 수가 없다. 텍스트파일로 만든 전자책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미니홈피에 사람들이 많이 오고, 집으로도 천사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 취재를 위해 그와 하루를 보내고, 그가 먹고 싶다던 통닭을 함께 찢어먹었다. 그와 있는 동안에는 가슴 속에 햇살이 가득하더니, 작별하는 순간에는 가슴 속 어딘가가 먹구름이 끼는 것이었다. 평생 누워 사는 몸 작은 시인의 눈망울이 맑은 만큼이나 슬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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