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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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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인 (se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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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의 절규와 에케버그, 그리고 예술    2013/05/22 14:02 추천 1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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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바르 뭉크가 '절규'의 영감을 얻은 곳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이었다. 현대인의 공포와 두려움 기타 등등 온갖 악심리를 묘사한 작품이다. 네 가지 버전으로 그렸는데, 톤이 조금씩 다르고 재료도 다르다. 이 가운데 두 점은 도둑을 맞았다가 되찾은 적이 있다. 그 과정도 흥미진진하다. 자, 그럼 작품과 작품의 영감을 얻은 바로 그 장소, 오슬로 남부 에케버그의 진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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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예술은 위대한 사기다. 부럽다 뭉크. 어떻게 여기에서 그런 영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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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황금산과 소금장수 강경환    2013/05/07 18:29 추천 0    스크랩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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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황금산과 소금장수 강경환

 

충남 서산시 대산읍 독곶리에는 국도 종점이정표가 서 있다. 전남 보성에서 출발한 29번 국도가 이리저리 356.196를 달리다가 여기에서 끝난다. 그 뒤쪽 작은 산, 해발 152m짜리 황금산을 찾는 외지인이 하도 많은 탓에 길 없음 표시를 그리 해놓았다. 산이되 바다와 맞닿고, 서해이되 전혀 서해답지 않은 바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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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산이 있는 독곶리는 조기 어장으로 유명했다. 역시 조기로 유명한 연평도까지 직선거리로 100km가 채 안 되는 탓에 요런 전설이 남아 있다. 400년 전 궁사 박씨 꿈에 황룡이 나타나 이리 말했다. “연평도에 있는 청룡이 조기 떼를 연평도로 끌고 가려 하니, 그 놈을 죽여 달라.” 다음날 황금산 상공에서 용 두 마리가 전투를 벌이는데, 박씨가 날린 화살이 황룡을 꿰뚫고 말았다. 황룡은 억울한 건 없으나, 장차 닥칠 이곳 어부들의 빈곤이 한스럽다하고 죽었다. 그래서 산꼭대기에는 조기 어장 부활을 꿈꾸는 임경업 장군 사당이 서 있다. 조기가 헤엄치던 바다에는 가리비 양식장이 들어섰다. 그럼 화살 맞은 황룡은 어디로 갔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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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만개하고 새싹 즐비한 오솔길을 걸어서 파도 소리 따라 가파른 길을 내려가면 자갈해변이 나온다. 해변은 모래나 갯벌이 아니라 주먹보다 더 큰 돌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파스텔색 분홍빛, 회색, 누런색 돌들이 좁은 해변을 메웠고, 파도가 들이닥치면 마치 장난감 빼앗긴 아이들처럼 과장된 파도소리를 내며 울어댄다. 설마 이거 하나 보려고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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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오른쪽으로 돌리면서 기경(奇景)이 시작된다. 높이 10m가 넘는 아치형 바위가 바다로 향해 있다. 일명 코끼리 바위다. 머리부터 코까지 코끼리와 똑같다. 설치돼 있는 밧줄을 잡고 바위를 넘으면 놀라워라! 용들이 떼로 전쟁을 벌이는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산에서 내려온 절벽은 창을 꽂은 듯 날카롭기 짝이 없고 해변으로 뻗은 바위들도 곡선은 전무(全無)하다. 검붉고 누런 바위는 햇빛에 두런두런 빛난다. 끝이 아니다. 언덕을 넘으면 해변 끝나는 곳까지 온통 기암과 절벽이고 기암마다 머리에는 소나무들이 뿌리를 박아놓았다. 넘는 언덕마다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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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바위와 절벽 사이 등산로를 넘으면 또 용들이 꿈틀거린다. 이번엔 더 크고 더 격렬하다. 좁은 길 끝을 넘어서면 아예 길이 없어지고 파도가 절벽을 직면한다. 그나마 쉬운 등산로는 오른쪽 산길로 가면 나오지만 내친 김에 절벽을 네 발로 타본다. 시퍼런 파도가 들이치고 발바닥의 절반도 지지하지 못하는 절벽을 기어간다. 여기까지는 헛디뎌봤자 생채기가 날 정도로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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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전투력 충만한 용이 용수철처럼 몸을 구부리며 날아갈 준비를 한다. 모퉁이를 돌면 또 건너편 가파른 절벽에 밧줄이 보인다. 밧줄 있는 곳까지는 또 길이 없다! 어렵사리 절벽을 기어올라 부들부들 떨면서 건너편을 엿본다. 천 길 낭떠러지 아래 건너편에서 해식동굴이 아가리를 쩍 벌리고 노려본다. 연평도에서 날아온 청룡을 노려보는 그 눈깔이다. 인간이 엿볼 수 있는 전투 현장은 여기까지다.

힘 빠진 다리를 끌고 코끼리 바위로 돌아온다. 그리고 산길을 다시 오르면 해식동굴이 있는 곳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용에 필적할 인간이 아니라면 이 평탄한 길에 순응해 동굴로 가는 게 낫다. 갈림길에서 자동으로 한 마디 튀어나온다. “등산 한 번 제대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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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는 웅도로 간다. 산에서 나와 서산 대산읍내에 다가가면 오른쪽으로 웅도리라는 파란 팻말이 나타난다. 위에서 보면 곰을 닮았다는 섬이다. 섬은 하루에 두 번 문을 연다. 시멘트 포장도로는 물이 빠질 때에만 열린다. 자동차로 한 바퀴 도는 데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작은 섬이다. 개발이 전혀 되지 않았고, 그래서 옛것이 그리운 사람들이 알음알음 찾는 섬이다. 집집마다 울 밑에 수선화를 심어놓았다. 한 노인이 말했다. “이 섬은 딱히 볼 것도 없어. 그저 부락 생김이며 사는 모습 보려고 토요일, 일요일이면 사람들이 많이 오지. 봄이면 이제 바지락을 잡는데, 우리는 소달구지를 타고 뻘로 나가거든. 그거도 사람들이 와서 보고 신기하다고 하지.” 사는 사람에게 불편한 요소들이 뜨내기 이방인들에게는 큰 위안이 된다. 이방인들은 이미 잊어먹은 지 몇백년은 될 옛 추억과 향수와 그리움이 섬에 남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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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한 소금장수 강경환

 

웅도에서 다시 큰길로 나와 대산읍으로 가면 오른편 소머리국밥집 골목길 끝에 염전이 나온다. 그 중 하나가 부성염전이다. 주인은 강경환. 2년 전 나라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은 사람이다. 고즈넉한 염전 풍경 감상도 좋지만 이 사내가 가진 인생 이야기도 이번 여행의 큰 요소다.

강경환은 10대 때 발목지뢰로 두 손목을 잃었다. 이러구러한 인생살이 끝에, 본인이 손몽둥이라 부르는 그 두 팔로 염전을 일군다. 그리고 10년 넘도록 염전에서 나온 소금을 몰래 혼자 사는 노인들 집앞에 던져놓고 가다가 몇 년 전에 들켜버렸다.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인에게 나오는 돈도 다 거부하고 그렇게 살다가 들켰다. 훈장은 그 대가다. 기경을 구경하고 섬에서 옛 정서를 느꼈다면 이제 소금장수 강경환을 만나서 손 몽둥이 악수하고 감동하시라. 짧은 하루, 진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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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정원 세량지    2013/04/30 18:05 추천 4    스크랩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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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정원 화순 세량지

 

사진을 봤다면 지금부터 읽어내려 갈 이야기들은 사족(蛇足)이다. 북위 350443.62, 동경 1265511.75초에 있는 1.2ha(3600)짜리 작은 저수지 이야기다. 슬슬 사라져가는 봄의 최종 은신처. 이름은 세량지(細良池). 사진찍기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간첩처럼 정보를 주고받던 비밀의 정원이다. 전남 화순군 세량리에 있다.

*

작대기 하나, 뭉툭하고 무거운 물체 하나를 두 어깨에 멘 무리들이 산길을 오른다. 아무리 밤이 짧아졌다지만 여전히 사위가 캄캄한 새벽 4시다. 작대기는 삼각대고 물체는 카메라 가방이다. 5분 남짓한 산길 끝에 50m 길이 둑이 있다. 530분쯤 되자 물 건너편이 어렴풋이 보인다. 산새들이 잠에서 깨기 시작한다. 사람들, 긴장한다.

 

630분 무렵 사물의 윤곽이 또렷해지고 천지사방이 색()을 회복한다. 순식간에 다양한 녹색이 못 주위를 채운다. 연푸른 버드나무, 짙은 편백나무, 땅에 깔린 풀들, 그리고 그 녹색 틈틈을 희끗희끗하게 채우는 산벚꽃까지. 수면에는 똑같은 색과 똑같은 윤곽으로 만물이 거꾸로 비친다. 카메라 셔터소리와 산새 울음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해마다 4월 내내, 그리고 여름과 단풍철 세 계절이면 벌어지는 풍경이다. 새벽마다 세량리 주민들이 나와서 커피를 파는 모습도 늘 벌어지는 모습이다.

 

1969년에 만든 농업용수용 작은 저수지가 이렇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지금도 30분 거리인 도곡온천지구 상인들도 관광객들이 세량지 들렀다 밥먹으러 왔다는데, 그게 어디인가라고 되묻곤 한다. 얼마나 급작스럽게 유명해졌던지, 화순군청에는 “(외지인들이) 화순은 몰라도 세량지는 안단다”, “세량지 이렇게 두실건가요?” “제발 나무데크 따위는 설치마시길등등 민원이 쏟아진다. 지난해에는 급기야 미국 보도채널 CNN이 선정한 한국에서 꼭 가 봐야 할 곳 50군데에 포함됐으니, 이런 비경을 사진 찍는 사람들만 독점해야 쓰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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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시쯤 카매라맨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비밀의 정원은 적막강산이 된다. 진짜 은밀한 정원 산책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단 해가 중천에 솟기 전이 좋다. 수면에 반영된 만물은 태양 고도와 함께 사라진다. 주민이 말했다. “못 주변 벚꽃은 곧 질 터인데, 뒤편 벚꽃은 이제 필 차례.” 맑아도 좋고 흐려도 좋으나 바람이 불어 수면을 깨뜨리는 날은 별로다. 물안개가 있으면 더 바랄 게 없다. 먼 길 왔으니 세량지로 나들이를 끝낼 수 없다. 도곡온천으로 간다. 아침 허기를 채울 수 있는 식당, 피곤한 몸을 씻을 수 있는 온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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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그 이름도 유명한 천불천탑(千佛千塔) 도량 운주사다. 굳이 설명은 필요 없지만 한마디 덧붙이자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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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4월 산불이 났다. 한식 성묘객 실화(失火)였다. 절 주변은 민둥산이 됐다. 송림도 사라지고 웬만한 나무들은 다 사라졌다. 그래서 진즉에 일어섰을지도 모를 운주사 와불(臥佛)도 여전히 누워서 북극성을 바라본다. 장담컨대, 여러번 찾은 사람이든 처음 찾는 사람이든 운주사에 가면 체류 시간은 예정보다 훨씬 늘어난다. 도처에 목격되는 석불과 석탑, 바야흐로 산 위로 사라져가는 봄의 꼬리가 당신을 붙잡는다. 민둥한 석불처럼 민둥한 산에는 지금 진달래와 산벚꽃이 만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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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시간이 남는다고? 운주사에서 나주 쪽으로 15분만 남하한다. 불회사라는 절이 나온다. 절 초입은 편백나무 숲이다. 숲 입구에는 돌장승 한 쌍이 있다. 무시무시한 할아버지, 익살맞게 웃는 할머니 장승이다. 숲으로 조금 들어가면 왼쪽 기슭에 보호수가 있다. 연리목(連理木), 밑동이 붙어 있는 나무 두 그루다. 바위 위에 곡선을 그리며 누운 나무 밑동이 그 뒤에 버티고 선 나무 밑동 속으로 들어가 있다. 관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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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로 지정된 대웅전 뒤편에는 그 이름도 유명한 선운사 동백만큼 웅장한 동백 숲이 있다. 지금 동백은 땅에서 피고 있다. 봄을 알리는 파란 개불알풀꽃, 겨우내 미라가 된 낙엽 틈새로 붉은 꽃이 눈물처럼 피고 있다. 세량지에서 불회사까지 쉬지 않고 차를 몰면 한 시간. 그 사이에 봄은 당신을 스치며 사라져간다. 비밀의 정원에 관한 보고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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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살던 강변 - 섬진강    2013/04/10 17:30 추천 2    스크랩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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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봄의 진원지가 어디냐는 문제를 놓고 많은 여행작가들의 암묵적인 결론은 섬진강이었다. 그래서 해마다 봄이 되면 신문, 방송을 뒤덮는 봄나들이 목적지로 섬진강이 0순위로 나온다. 청매, 홍매, 백매, 찔레, 산수유, 벚꽃, 개불알풀 기타 등등, 전남 광양과 구례, 경남 하동을 흐르는 섬진강 하구는 지금 꽃들의 난장판이다. 마침 내린 봄비에 강변에는 꽃비가 가득하다. 그 만큼 사람들도 난장판이다. 난장판을 피해 조금 북상하기로 한다. 임실 옥정호와 섬진강 뒷길이다. 시인 김용택이 나고 자라서 교사로 은퇴한 마을이라면 알까? 천지사방 봄인 예쁜 마을로 틈입하는 봄나들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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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 한옥마을 점심(點心)

고속도로를 타고 서울에서 내려가다 보면 허기가 질 무렵 전주에 닿는다. 유서 깊은 이 도시를 지나칠 수 없고 짧은 시간에 몽땅 훑을 수도 없으니 경기전과 한옥마을로 간다.

경기전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御眞)을 봉안한 곳이다. 크지 않은 아담한 경내에 잘생긴 한옥들이 들어서 있다. 식전에 잠깐 들러 산책할 수 있는 공간이다. 문화해설사에 부탁해 경기전 전반에 대한 설명을 들어본다. 그리고 식사는 맞붙어 있는 한옥마을 아무 식당에 들러서 해결한다. 관광지라 정통 전주한정식보다는 퓨전요리를 내놓는다. ‘석갈비라 이름붙은 돌판 쇠고기 구이집이 많은데, 1인분에 14000원 선인데 2인분 이상만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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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정호 붕어섬

, 전주 찍고 다시 남하한다. 27번 국도로 순창-도립미술관 방면으로 가면 된다. 새터교차로에서 운암-임실 방면으로 나간 뒤 좌회전해 곧장 직진하면 호수가 나타난다. 대한민국에서 7대 아름다운 길 중 하나로 선정된 옥정호 드라이브코스다. 고갯길을 굽이굽이 돌아 오르면 전망대가 나온다. 작은 찻집도 있다. 전망대보다는 설리라는 찻집 주차장이 전망이 더 좋다. 눈 앞에 펼쳐지는 호수와 붕어섬. 주말만 되면 사진가들이 몰리는 멋진 풍경이다.

 

# 시인이 사는 강변, 섬진강

풍경에 빼앗긴 넋을 되찾고, 오던 길을 되돌아간다. 운암삼거리에서 전주-구이 방면으로 우회전한 후 새터교차로로 올라와 전주-순창쪽으로 가면 길은 호수를 가르는 다리를 지나고 섬진강을 건넌다. 덕치교차로에서 덕치쪽 비포장길로 우회전하면 섬진강 뒷길이 나온다. 초입은 실망스럽다. 공사가 한창이다. 길이 워낙에 아름답고 유명하다 보니, 비포장에 아스팔트를 깔고 옆으로 또 자전거길을 내놓았다. 그런데 원판이 워낙 아름다우니, 길끝 장구목까지 10km안팎의 이 길은 웬만한 개발에도 끄떡없이 아름다운 것이다. 사라지지 않는 아름다움의 요소는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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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화길과 시비(詩碑)

아마 가로수로 매화를 심은 길은 전국에 이 길밖에 없지 않을까. 화려한 벚꽃 대신에 키 작은 매화들이 산 그림자 속에 심어져 있다. 그래서 길 이름도 매화길이다. 그 길섶에 김용택 시인이 아이들을 가르치던 덕치초등학교도 있고, 드라마 소나기를 찍은 징검다리도 있고 시인이 살고 있는 진메마을 집도 있다. 심심해질 무렵이면 길가에 시비(詩碑)가 출현해 걸음을 막는다. 예컨대.

 

봄날

                                 김용택

나 찾다가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잡고

섬진강 봄물을 따라

매화꽃 보러 간 줄 알그라

 

손 잡을 예쁜 여자가 보인다 싶기에 부리나케 달려갔으나 여자는 총총히 징검다리를 건너 봄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대신 매화꽃은 보았다. 성실하고 부지런한 농부가 만들어놓은 매실밭은 꽃잎 분분히 날던 광양의 거대한 매화밭과 달리 작은 강과 새파란 풀들과 시퍼런 소나무와 봄냄새를 가진 작은 꽃밭이었다. 이번 주말? 그 새파란 풀들 위로 꽃비가 내려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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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담마을과 장구목

천담마을을 지나 아스팔트로 바뀐 길은 구담마을로 이끈다. 역시 김용택 시인이 가르쳤던 구담분교는 문 닫은 지 오래다. 강변과 골목길은 모두 풍경을 찍으려는 바깥 사진가들 천지다. 강변으로 내려가 길을 걸어본다. 징검다리도 있고 세월교도 있고 출렁다리도 있다. 세월교는 차량도 건널 수 있다. 발 아래로 흐르는 섬진강 물결 소리가 맑다. 그리고 장구목에 닿는다. 강은 물 반 바위 반이다. 내 그런 요상한 바위터는 처음 보았다. 구멍 숭숭 뚫린 암반이 강을 뒤덮었다. 여기에 있는 요강바위는 연전에 간 큰 도둑놈이 이곳에 들어와 한달 동안 탐색 끝에 야밤에 포클레인으로 싣고 가버린 바위다. 주민들은 경기도 용인에서 기어코 바위를 찾아내 제 자리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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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쌀할 무렵이면 요강바위 위쪽 식당 장구목가든에 간다. 산에서 뜯은 들풀과 들꽃으로 반찬을 만드는 식당이다. 예약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다. 예약을 하면 그때 산에서 꽃과 풀을 딴다. 찔레꽃, 냉이, 머위, , 돌미나리, 표고버섯, 쑥갓, 개불알풀꽃. 무침도 있고 튀김도 있다. 그리고 접시 하나에는 초고추장과 생 들풀, 들꽃을 내놓으니, 잠깐 잊어버렸던 봄이 거기에 숨어 있지 않은가. 주인 이름은 유영길. 막내딸은 오로지 흘러가라고 이름이 유유(唯遊), 그래서 이름이 유유유다. 젊은 날 벌을 치던 주인은 주말만 되면 노는 사람들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니, 이 집도 몇 년 하고 접기로 한다고 선언해버렸다. 그리 신뢰가 가지 않는 선언을 들으며 다시 강변에 선다. 먼길 찾아 내려온 섬진강에 봄이 무르익고, 봄나들이가 끝나간다.

 

인자 부끄럴 것이 없니라/쓴내 단내 다 맛보았다/그러나 때로 사내의 따뜻한 살내가 그리워/산나리꽃처럼 이렇게 새빨간 입술도 칠하고/손톱도 청소해서 붉은 매니큐어도 칠했니라/말 마라/그 세월/덧없다(김용택, ‘산나리’)

 

봄나들이를 끝낸 시인은 또 서럽다.

 

꽃도 잎도 다 졌니라 실가지 끝마다 하얗게 서리꽃은 피었다마는,/내 몸은 시방 시리고 춥다 겁나게 춥다 내 생에 봄날은 다 갔니라(김용택, ‘서리’)

 

그럴까. 오늘은 언제나 우리 남은 인생의 첫날인데. 그 첫날, 섬진강으로 가보자. 정말 내 생에 봄날이 다 가버렸는지 반드시 확인을 해서 시인에게 꽃으로 항의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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