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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스크랩]    아프간 미군(美軍)·하버드대(大) 교수 '이중생활' 7년 만에 마침표    2009/06/16 15:52 추천 0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thechang/4015814
 원문출처 : 아프간 미군(美軍)·하버드대(大) 교수 '이중생활' 7년 만에 마침표
 원문링크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6/16/2009061600026.html
  • 김민구 기자 roadrunner@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 입력 : 2009.06.16 03:27

    키트 파커(Parker) 미 하버드대 응용과학부 부교수./하버드 가제트

    파커 교수, 올해 전역하기로

    조국을 위해 전쟁터에 나가기로 결심한 순간 하버드대학 교수 자리를 제안받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키트 파커(Parker·43) 미 하버드대 응용과학부 부교수는 2001년 이 두 가지 일에 모두 도전하는 선택을 했다고 AP통신이 15일 보도했다. 그는 현재 하버드대 교수이자 아프가니스탄 전선에 투입된 미 육군 산악사단 3연대 소속 소령이다. 지난해 12월까지는 하버드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지금은 다시 아프가니스탄으로 가 수도 카불의 경비·순찰 임무를 맡고 있다.

    그가 군 입대를 결심한 것은 2001년 뉴욕 세계무역센터가 9·11 테러로 무너지는 광경을 목격하고 나서였다. 당시 그는 보스턴대에서 생체공학 학사, 테네시주 밴더빌트대에서 화공학 석사와 응용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전도유망한 과학자였다.

    그런데 그가 아프가니스탄 대(對)테러 전쟁에 참전하기로 결심한 순간 공교롭게도 하버드대로부터 교수직을 제안받았다. 파커는 당시 벤커테쉬 나리언아무르티(Naryanamurti) 하버드대 학장(공학·응용과학부)을 찾아갔다. "제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싸우는 1년 동안 기다려줄 수 있습니까?" 나리언아무르티 학장은 뜻밖의 요청에 당황했지만, "국가에 대한 봉사를 거부할 수 없다"며 흔쾌히 수락했다.

    파커는 2002년 미 육군 82 공수부대 소속으로 대위 계급장을 달고, 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와 자불주(州) 등 최전선에 투입됐다. 그는 이후 7년여 동안 아프가니스탄의 전쟁터와 하버드대학을 오가면서 군인과 교수의 이중 신분으로 극과 극의 현실을 체험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거리에 매설된 폭탄이 터져 죽을 고비를 넘겼고, 하버드대학에서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과학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느라 밤을 새웠다.

    그는 올해 전역해 '이중생활'에 마침표를 찍을 예정이다. 그는 "국민의 90%가 문맹이고 12세기의 기술 수준에 머물고 있는 나라에 막대한 돈과 물자를 쏟아붓는다고 단기간에 1900년대 미국 수준의 발전을 이룰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라며 "아프가니스탄의 변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총이 아니라 비전과 그것을 이룰 강한 의지, 그리고 혁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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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스크랩]    "독도는 한국땅" 포장지 25만장 뉴욕에 등장    2009/03/21 14:07 추천 0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thechang/3807211
     원문출처 : "독도는 한국땅" 포장지 25만장 뉴욕에 등장
     원문링크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3/21/2009032100079.html
    원세일 기자 niet@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입력 : 2009.03.21 03:59

    미국 뉴욕 거리에 '독도는 한국땅'비닐 포장지가 등장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1일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뉴욕 한인 세탁소 협회 전창덕 회장은 작년 말 한국에서 특별한 비닐 포장지 25만장을 주문해 들여왔다.

    이 포장지에는 "독도는 한국땅"이라는 헤드라인 아래 "지난 2000년동안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다 '동해'에 있는 독도는 한국 영토였으며, 일본 정부는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영어로 적혀 있다.

    전 회장은 이 비닐 포장지를 세탁소 협회원 3000명에게 나눠주고, 그들의 가게에서 취급하는 세탁물에 이 비닐 포장지를 쓰도록 했다. 곧 이 비닐 포장지는 세탁소에서 세탁물을 배달할 때나 고객들이 세탁소에서 세탁물을 찾아갈 때 세탁물 겉에 싸여져 뉴욕 시내에 퍼지기 시작했다.
    전 회장은 작년 7월 일본 문부성이 중학교 교과서 학습지도 요령 해설서에 독도 기술을 담아 물의를 일으켰을 때 이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그는 "전세계에서 모인 사람들이 살고 있는 뉴욕에서 독도는 한국땅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한 방식으로 비닐 포장지 홍보 운동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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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스크랩]    [Why] [유석재의 레이더스] 흑피옥의 비밀    2009/02/01 15:32 추천 0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thechang/3672395
     원문출처 : [Why] [유석재의 레이더스] 흑피옥의 비밀
     원문링크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1/30/2009013001108.html?Dep0=chosunmain&Dep1=news&Dep2=headline1&Dep3=h1_09
    광주광역시=유석재 기자 karma@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중국 고고학계가 '겉에 검은 색 염료를 칠한 옥돌 조각상'으로 떠들썩하다. 인류 문명사를 바꿔놓을 수도 있는 수수께끼의 유물 흑피옥(黑皮玉)이 바로 그것이다. 흑피옥이 진짜라면 1만년 전, 또는 그보다 훨씬 이전에 초고대(超古代)문명이 동양에 실존했다는 뜻이 된다.

    중국당국은 학계에서 전혀 연구된 적이 없는 흑피옥에 대한 조사를 결정했다. 베이징과기보(北京科技報)와 상보(商報) 같은 언론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네이멍구자치구(內蒙古自治區) 우란차부시(烏蘭察布市)박물관의 후샤우눙(胡曉農) 관장은 지난 13일 본지에 이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1월 말까지 이어지는) 춘절(설날) 연휴 이후 흑피옥 출토 현장에 대한 본격 조사에 들어갈 것이고 이후 발굴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후 관장은 "현재 발굴지 일대에 국가의 허락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들어갈 수 없도록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을 들쑤셔놓은 사람은 한국의 유물 수집가 김희용(金喜鏞·60)씨다. 그는 중국 현지에서 흑피옥을 520여개나 수집해 소장하고 있다. 12일 광주광역시 북구 매곡동 김씨의 집을 찾았다. 아파트 한쪽 방에 '문제의 유물'들이 있었다. 높이 10㎝에서 60㎝, 큰 것은 180㎝나 됐다.

    대형 흑피옥은 성인 남자가 겨우 들어 옮길 정도로 무거웠다. 옷을 입지 않은 인물과 동물, 고대 신화에 나올 법한 반인반수(半人半獸)의 모습들을 표현한 이 조각상들은 남성의 성기와 여성의 유방·둔부를 과장되게 드러내거나 성생활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들도 있었다.

    흑피옥들은 원시사회와 가까운 초기 문명의 산물처럼 보였다. 대부분의 조각상들이 무릎을 굽히고 있다는 점도 특이했다. 그 때문에 김씨는 "미직립(未直立) 상태의 인류가 만들어 낸 문명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전남 영암 출신으로 고졸 학력인 김씨는 서울 인사동의 골동품 가게 주인이었다. 1990년 일본 도쿄(東京)의 책방 골목에서 만난 일본 노인이 뜻밖의 얘기를 해 줬다고 그는 회상했다. "1940년대 초 내몽골에서 검은 색 조각상이 나왔는데 고대 문명의 산물인 것 같았지만 관동군까지 동원됐는데도 출토지를 찾지 못했다." 그 노인은 만주국에서 근무하던 고고학자였다.
    ▲ '고대 유물 수집가' 김희용씨가 광주광역시 매곡동 자신의 집에서 그동안 모은 흑피옥 유물들을 꺼내 놓고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는 이 유물들이 '최소한 1만년 전 초고대문명의 유산'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진품 여부는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 /김영근 기자 kyg21@chosun.com
    그 후 김씨는 흑피옥을 찾기 위해 16년 동안 중국을 유랑하며 전 재산을 쏟아 부었다. 북쪽 헤이룽장성(黑龍江省)에서 남쪽 하이난성(海南省)까지 샅샅이 누비며 "이렇게 생긴 유물을 찾아 달라"며 닥치는 대로 부탁한 끝에 수백 점의 흑피옥을 손에 넣었다.

    여권에 출입국 도장이 800번 가까이 찍혔지만 세관원들은 정체불명의 미술품에 대해 문제 삼지 않았다고 한다. 정작 의심을 한 것은 "왜 그렇게 자주 중국을 드나드느냐"며 다그친 우리 국정원 쪽이었다. 그는 다시 도쿄의 책방 골목에 매일같이 나타나던 그 노인에게 유물을 보여 줬다. 노인은 "내가 말했던 바로 그것"이라며 "정확히 어디서 나왔는지를 알아내야 한다"고 했다.

    출토 지점을 찾기 위해 수소문하는 동안 사기도 많이 당했다. 물건만 건네고는 도망가는 일도 많았다. 그가 최초 도굴꾼 두 명과 함께 출토지를 찾아낸 것은 2006년 8월 22일이었다고 한다. 내몽골 우란차부시 인근의 초원이었다는 것이다.

    "자정 넘어 무덤을 파 보니 지하 2m에 커다란 석실(石室)이 있었다. 그곳에 전신 인골이 누워 있었다. 주변에는 31점의 흑피옥이 네 줄로 정렬해 있었고 발 아래선 높이 62㎝의 태양신 조각상이 나왔다."

    그는 그런 무덤들이 무수히 많았고 근처 산꼭대기에선 '고대 문명 대신전(大神殿)'의 흔적을 봤다고도 말했다. 그가 보여 준 사진에는 건축물을 세우기 위해 쌓은 지대석(址臺石)들처럼 보이는 유적이 있었다.

    김씨 스스로 인정하듯 그것은 분명한 도굴이었다. "하지만 초고대 유적지 발견의 증거를 만들기 위한 고육책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두 도굴꾼이 유물을 묻어 놓은 뒤 속임수를 쓴 건 아닐까? 김씨는 "그럴 리가 없다"고 했다. 넓은 초원에서 유독 그곳만 자신이 파 보라고 지시했다는 얘기다.
    학계의 반응은 냉정했다. 2006년 김씨의 흑피옥 50점을 감정했던 임영진 전남대 교수(고고학)는 "진짜라면 세계적인 사건이 될 정도로 수준 높은 작품들이었다"면서도 "1만년 전 기법으로 볼 수 없고 김씨가 열정에 취해 잘못된 사람들을 만난 게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실물을 보지 않은 미술계 인사들은 "중국과 동남아에 범람하는 가짜 중 일부"라는 반응을 보였다.

    기원전 4500~3000년 랴오허(遼河) 일대의 '홍산(紅山) 문화'를 한국사의 원류로 보는 우실하 항공대 교수(문화사회학)는 "흑피옥의 일부가 홍산 문화의 옥기(玉器)와 색만 다를 뿐 모양이 같다"며 "흑피옥 문명이 우리 민족의 선조와도 직접 연결돼 있다는 것을 입증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진품 여부에 대해선 유보적인 입장이다.

    유일하게 '진품이 맞다'는 입장에 서 있는 학자는 정건재 전남과학대 교수(동양사학)다. 그는 "흑피옥은 한국의 단군, 중국의 신농·복희 같은 신화가 역사적 사실이었다고 입증할 수 있는 단서"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2007년 11월 서울대 기초과학공동기기원에 흑피옥의 연대 측정을 의뢰했다. 그 결과 '1만4300년±60년'이라는 놀라운 수치가 나왔다. 그러나 이것은 흑피옥 표면에 달라붙은 유기물을 측정해 나온 수치이기 때문에 아직 유물 제작 연대에 대한 확증은 될 수 없었다.

    2007년 초 김씨는 "소장하고 있는 흑피옥 조각상 520여점을 모두 중국 정부에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세계의 인류·고고학자들과 함께 자신이 발굴 현장에 동행해 유물을 확인한 뒤 전 세계에 순회 전시하는 조건이었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에게도 편지를 썼다.

    중국 학자들은 "이런 건 지금까지 중국 역사에서 본 적도 없는 유물"이라며 의아해했다. 지난해 11월 중국 국가문물국 사회문물처는 "전문가를 동원해 흑피옥 출토 현장을 조사하도록 네이멍구자치구 문물국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그동안 철저히 숨겨 왔던 흑피옥 출토 현장이 어디인지를 최근 중국 당국에 알려 줬다고 말했다. "그곳은 우란차부시 화더현(化德縣) 다징거우(大井溝) 일대다." 네이멍구자치구의 수도인 후허하오터(呼和浩特)에서 북동쪽으로 340㎞, 압록강에서는 서쪽으로 900㎞ 정도 떨어진 곳이다.

    김씨는 왜 애써 모은 유물을 대가 없이 기증키로 한 것일까. "확신이 없이 이렇게 일생에 걸쳐 목숨을 걸고 미친 짓을 하겠는가? 중국에서 만든 가짜라면 내가 더 잘 안다. 인류 전체의 문화 유산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돌려주려는 것이다. 하지만 발견자의 국적과 이름을 분명히 해 달라는 요구를 했다. 그래서 한국인이 찾았다는 아름다운 이야기 하나만을 남기려는 것이다. 으핫핫."

    초원을 덮은 눈이 녹고 땅이 풀릴 올 5월이면 다징거우 일대에 대한 발굴이 시작될 것이고, 그렇다면 흑피옥은 물론 그 자신이 이름 붙인 '정천(井泉) 문명'의 실체가 나타날 것이라고 김씨는 말했다. 우물(井)과 샘(泉)은 문명의 원천이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다.

    그가 가진 흑피옥이 진품이라고 볼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는 지금까지 아무 것도 없다. 아마도 곧 드러나게 될 흑피옥의 결론은 '인류 역사의 대발견'이거나 '희대의 사기극이자 국제적 해프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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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스크랩]    [이문열의 '소설 안중근' 불멸] [첫 회]    2009/01/02 03:38 추천 0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thechang/3601460
     원문출처 : [이문열의 '소설 안중근' 불멸] [첫 회]
     원문링크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12/31/2008123101238.html
    동학당의 봉기와 그 분란이 끌어들인 청일전쟁으로 어수선하기 짝이 없던 갑오년도 어느새 저물어가는 동짓달 초순이었다. 해서(海西)의 겨울은 유난히 매서운 추위로 벌써부터 두껍게 얼어붙었다.

    신천군(信川郡) 두라방(斗羅坊=방(坊)은 행정단위로 나중에 면(面)으로 개편된다) 서남쪽 경계에는 천봉산과 병풍산, 성암산이 이십 리 간격으로 솟아있었다. 세 산 모두 높이는 구월산에 크게 미치지 못했으나 산세는 웅장해 두라방은 그 여맥(餘脈)들로 험한 산악지대를 이루었다. 두라방 아홉 동네 가운데 전탄천(箭灘川) 상류의 좁은 들판을 낀 세 동네를 빼면 나머지는 모두 산자락 비탈밭과 골짜기 다락논에 의지한 산촌이었다.

    그 병풍산에서 동북쪽으로 길게 능선을 타고 내리다가 다시 서북쪽 천봉산 기슭으로 접어드는 산길에 사람을 태운 가라말(黑馬) 한 필이 가볍게 내닫고 있었다. 말 안장에 앉은 것은 아직 아이 티를 다 벗지 못한 젊은이였다. 상투를 틀고는 있지만 자줏빛 두건이 설빔 댕기처럼이나 고와 보이는 데다, 발그레한 기운이 도는 두 뺨도 손으로 쓸어보면 솜털이 묻어날 듯했다. 그의 몸집도 타고 있는 말을 휘어내기 어려워 보일 만큼 작고 호리호리했다.

    갑자기 까마귀 울음소리가 길게 여운을 끌며 젊은이의 머리 위를 가로질렀다. 그렇게 들어서 그런지 그가 사냥을 그치고 병풍산을 내려올 때부터 뒤따르듯 하던 소리였다. 무엇 때문인지 젊은이가 주름 잡힌 미간을 들어 머리 위를 둘러보았다. 방금 불길한 울음소리를 내며 날아간 까마귀에 화답하듯 또 다른 까마귀 몇 마리가 저편에서 날아오고 있었다.

    가만히 고삐를 말안장에 걸친 젊은이가 재빨리 화승총을 빼내 들었다. 그 고장 사람들이 흔히 '돔방총'이라고 부르는 총신(銃身)을 짧게 한 화승총이었는데, 미리부터 화약과 탄환이 재워져 있고 화승마저 끼워져 있었던 듯했다. 빼든 총을 왼손으로 옮겨 쥔 젊은이는 이어 오른손으로 조끼 주머니에서 당황(唐黃) 한 개비를 꺼내 안장의 딱딱한 곳에 그었다. 나중에 딱성냥으로 불리게 된 박래품(舶來品) 내풍인촌(耐風燐寸)이라 가벼운 발화 소리와 함께 바로 불이 일었다. 그 불을 화승에 붙인 젊은이가 총을 들어 하늘 한 구석을 겨냥했다. 연신 불길한 울음소리를 주고받으며 자신의 머리 위를 날아가는 까마귀 쪽이었다.

    오래잖아 요란한 총포소리와 함께 젊은이의 머리 위 오륙십 걸음 되는 곳을 비껴 날던 까마귀 가운데 한 마리가 검은 깃을 사방으로 흩으며 떨어졌다. 나중에 그의 삶을 기록한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 위에서 나는 새를 맞혀 떨어뜨렸다"고 증언하는 그의 빼어난 사격 솜씨였다. 남은 까마귀들이 놀란 울음을 삼키며 황급히 가까운 숲 속으로 사라졌다.

    ▲ 일러스트 김지혁

    그 젊은이의 이름은 중근이고 성은 순흥(順興)을 본관으로 하는 안(安)씨였다. 이름이 중근인 것은 젖먹이 때부터 주변의 자극에 너무 예민하고 반응이 빠른 그의 성격을 가볍다고 여긴 아버지 안태훈(安泰勳)이 집안의 항렬자인 근(根)에다 무거울 중(重)자를 얹었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 안인수(安仁壽)는 그의 몸에 북두칠성을 닮은 일곱 개의 점이 있다 하여 응칠(應七)이란 이름으로 그 상서로움을 기렸고, 아버지 안태훈은 따로 아들에게 자임(子任)이란 아명(兒名)을 지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어릴 적에 가장 많이 불린 이름은 응칠이었고, 관례와 혼례를 치른 뒤에는 관명인 중근이 더 널리 쓰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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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스크랩]    [전문기자 칼럼] A급 국가의 조건    2008/11/27 03:22 추천 0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thechang/3518748
     원문출처 : [전문기자 칼럼] A급 국가의 조건
     원문링크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11/26/2008112601612.html
    최준석·국제전문기자 jschoi@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 최준석·국제전문기자
    일본 신문의 한 서울특파원은 한국의 정부 부처에 관련 보도자료를 보내달라고 하면 이런 말을 많이 듣는다고 했다. "통신(연합뉴스)에 다 나와있으니 그걸 그대로 쓰면 됩니다. 그 내용 다 맞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니, 보도자료를 보내주세요"라고 해서 꼭 챙겨받는다고 했다. 통신사를 못 믿어서라기보다, '1차 정보'를 반드시 확인하는 일본의 문화 때문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 일본 신문 특파원들을 만났을 때, 일본 방송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의 동선(動線)을 연속 특종 보도한 게 화제가 됐다. 후지TV는 9~10월에만 크게 두 건을 터뜨렸었다. 김정일 위원장의 뇌졸중 설이 나돌던 9월 중순 중국 베이징에 나타난 김정남을 카메라로 잡아 '아버지 건강이 어떠냐"고 물었다. 10월 말에는 아버지를 치료할 프랑스의 뇌신경외과 전문의를 만나기 위해 파리를 찾은 김정남에게, 샹젤리제 인근 고급 호텔에서 카메라를 들이댔었다. 일본 언론이 한반도 관련 뉴스를 자주 특종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자리의 한 일본 특파원은 베이징에서 북한 관련 '1차 정보'를 얻기 위한 자신들의 노력을 들려줬다. 일본 신문은 통상 베이징에 특파원 네 명을 배치하고 있는데, 이 중 한 명은 북한 담당이다. 그는 중국말은 잘 못하고, 오히려 한국어를 잘한다. 평양에서 출발한 고려항공의 비행기가 베이징으로 들어오는 날 그는 서우두(首都)공항으로 나간다. 평양에서 외부 세계로 나가는 '길목'인 이곳에서 입·출국자를 체크한다. 때문에 고려항공이 도착하는 날은 공항에는 일본 언론 기자 10여명이 항상 보인다. 일본 외에 이렇게 하는 나라는 없다. NHK의 경우, 공항에 오토바이를 배치해 뒀다가 김정남이 나타나자 파파라치처럼 추적한 적이 있다고 했다.

    크리스토퍼 힐(Hill)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미국측 수석 대표이다. 그가 얼마 전 서울의 한 대중 식당에서 정부의 외교팀과 식사를 같이 할 때다. 힐 차관보는 식사 중 식당 저편에 앉아 있는 동양인 몇 명을 턱으로 가리켰다. 그는 "나를 24시간 쫓아다니는 일본 통신사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힐 차관보는 그들을 향해 손짓을 하며 알은체를 하기도 했다.

    정보를 생산하는 당사자로부터 직접 얻는 '1차 정보'와, 전언(傳言)이나 언론 보도를 통해 얻는 '2차 정보'는 하늘과 땅 차이다. 2차 정보는 전달자의 시각에 따라 휘기도 하고, 부정확하기도 하다. 정확한 정보는 사람과 나라를 살리고, 부정확한 정보는 죽인다.

    이는 비단 언론에만 국한되는 얘기가 아니다. 언론기관 말고도, 국가 정보기관, 기업, 선교사, 태권도 사범 등 우리의 많은 인력이 외국에 나가 있다. 이들 조직이 다 정보를 생산한다. 정보기관은 그들대로, 기업 주재원은 주재원대로 조직에 현지 정보 보고를 한다. 문제는, '1차 정보'보다는 '2차 정보'를 생산하는 데 있다. 이것이 세계 10위권인 우리와, 세계 2위 경제대국인 일본의 차이다. 'B급 국가'에서 'A급 국가'로 가려면 우리는 반드시 이 차이를 넘어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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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스크랩]    [사설] KAL 진실 뒤집으려 김현희씨 테러해 온 국정원·TV들    2008/11/27 03:08 추천 0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thechang/3518737
     원문출처 : [사설] KAL 진실 뒤집으려 김현희씨 테러해 온 국정원·TV들
     원문링크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11/26/2008112601636.html
    1987년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의 범인 김현희씨는 지난달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대표에게 73쪽의 자필 편지를 보내 "노무현 정부 때 국가정보원MBC·KBS·SBS 방송 3사를 동원해 KAL기 사건이 조작됐다는 의혹을 부풀리는 공작을 꾸몄다"고 밝혔다. 김씨는 "방송과 인터뷰하라는 국정원 지시를 거부한 뒤 살던 곳에서 추방돼 5년째 도피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2003년 11월 MBC PD수첩을 시작으로, SBS, 이듬해 KBS가 '김현희는 안기부가 조작한 인물'의 가능성을 담은 방송을 내보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같은 단체도 기자회견을 갖고 의혹을 제기했다.

    김씨는 편지에서 "(노무현 정부 출범 첫해인) 2003년 10월 국정원 모 직원으로부터 '국정원 내부가 시끄러우니 외국으로 이민가라'고 권고받았는데, 국정원 담당관으로부터 수차례 MBC PD수첩에 출연하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완강히 거부한 게 큰 화근이 됐다"고 했다. 김씨는 "방송 3사 기자들이 일제히 집 주변을 취재하기 시작했고 결국 사는 곳이 노출돼 어느 날 새벽 아이들을 업고 피신해야 했다"고 밝혔다.

    MBC PD수첩은 2003년 11월 18일 '16년간의 의혹, KAL 폭파범 김현희의 진실'을 내보내며 '김현희는 북한 공작원이 아니다'고 주장해 온 사람들에게 수백 만 시청자들 앞에 서는 무대를 만들어줬다. 지난 4월 미국 쇠고기의 광우병 의혹을 만들어낼 때와 비슷한 선동방식이다. PD수첩이 나간 지 닷새 뒤인 11월 23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기자회견을 갖고 이른바 '7대 의혹'을 제기했다. 11월 29일엔 SBS '그것이 알고 싶다'도 같은 내용을 다뤘고 KBS는 이듬해 5월 '일요스페셜'에서 2부작으로 다른 방송들이 전한 내용을 확대해서 보도했다. 김씨를 향해 국정원과 방송 3사, 각종 단체들이 총공세를 편 것이다.

    김씨는 "MBC와 SBS는 나의 출연 거부가 못마땅했는지 거주지를 촬영해 노출시켰다"고 했다. 그는 신분과 거주지가 노출되면 언제든 북한의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인물이다. 실제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처(前妻) 성혜림의 언니 아들로 남한에 귀순해 북한 체제를 공개 비판했던 이한영씨는 1997년 북한 공작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에게 살해됐다.

    노무현 정부가 만든 각종 과거사 위원회도 김씨를 가만두지 않았다. 2005년 국정원 '과거사발전위', 2007년엔 '진실화해위원회'가 김씨를 조사하려 했지만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씨는 "이미 사법부가 세 번이나 재판한 것을 과거사발전위가 4심을 하고 진실화해위가 5심을 하는 행위는 인민재판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1987년 사건 당시 김씨를 집중 조사했고 이후 줄곧 김씨를 보호 감독해 온 국정원이 정권 코드에 맞추겠다며 지난 5년 동안 이런 일을 벌여 왔던 것이다. 노무현 정권 5년 동안 벌어진 '과거사 뒤집기'의 광풍이 남긴 부끄러운 흔적이다.

    김씨가 편지에서 주장한 내용이 사실인지를 규명하는 작업을 즉각 시작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막대한 국가 예산으로 운영되는 국정원과 노무현 정권 등장 이래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돋아나 국민 세금을 빨아먹었던 과거사위원회가 정권과 코드를 맞추기 위해 연약한 한 여성을 박해해 왔던 '권력 테러'의 진실이 명확히 밝혀져야 한다. 그리고 그 총대를 앞장서 메 온 방송 3사는 스스로 진실을 밝히고 사과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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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스크랩]    혼자서 영업·홍보·배송까지… 사장님은 넘버원    2008/11/24 11:55 추천 0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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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출처 : 혼자서 영업·홍보·배송까지… 사장님은 넘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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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동훈 기자 dhsong@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 인터넷마케팅 회사 이창업넷의 심재후(39) 대표는 사장이자 수석컨설턴트이며 말단 영업사원이다. 심 대표는 지난해 IT 기업에서 근무하며 쌓아 온 전문 지식을 살려 인터넷마케팅을 전문으로 하는 '1인 회사'를 창업했다. 현재 10여 개 업체에 인터넷을 통한 마케팅·교육·홍보·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별다른 경상비용 지출이 없어 월평균 700만원 선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 서울 미아1동에서 방문형 잉크·토너충전업 잉크가이를 운영하는 박종국(27)씨는 월평균 600만원의 순이익을 올리고 있는 청년 사장이다. 일찌감치 취업 대신 창업을 목표로 준비했던 박씨는 대학에서의 전공인 컴퓨터를 창업에 접목했다. 박씨는 "적성에 맞는 창업 아이템을 골라 열정을 갖고 신나게 일한 것이 성공의 비결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불경기로 인해 고용시장이 얼어붙자 1인 창업이 청년실업 해소와 신규 일자리 창출을 위한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1인 창업이란 고용인 없이 혼자 사업을 운영하는 형태를 말한다. 자신의 재능과 독창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고, 상대적으로 창업 자금과 운영 비용이 적게 든다는 점이 장점이다. 강병오 FC창업코리아 대표는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로 구조조정 한파가 몰아치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1인 창업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 침대 크리닝을 하고 있는 닥스리빙클럽 서울 금천점의 김형준 사장, 고객 상담 중인 인터넷마케팅회사 이창업넷의 심재후 사장, 사무용품 구매대행 전문 구매로의 본사 풍경(왼쪽부터).
    ◆전문성을 살려 창업하는 게 유리

    1인 창업은 이창업넷의 심재후 대표처럼 전문성을 살리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전문성을 살린 차별화된 고부가가치 서비스를 제공해야 대형 업체와의 경쟁에서도 이길 수 있다. 핵심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최대한 살리면서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분업을 통해 보완하는 것이 좋다. 생태환경관련 서적 출판사인 '달팽이출판'의 김영조(51) 대표는 20여 년간 출판계에 종사했던 경력을 살려 기획·마케팅·편집 등 핵심 업무는 자신이 담당하고, 편집디자인은 다른 디자이너에게 맡기고 있다.

    ◆기술 없다면 프랜차이즈 1인 창업 해 볼 만

    전문 지식이나 특별한 기술이 없다면 프랜차이즈 가맹을 통한 1인 창업도 권할 만하다. 창업과정에서부터 본사의 지원을 받을 수 있고, 본사가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용역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혼자서도 충분히 운영할 수 있다. 특히 1000만원대 소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금 여력이 충분치 않은 퇴직 창업자나 청년 창업자에게 적합하다. 최근에는 실내환경관리업이나 방문잉크·토너충전업과 같이 확실한 소비 시장을 갖고 있는 아이템이 등장하면서 수익성도 높아졌다.

    서울 금천구의 김형준(37)씨는 회사 부도로 실직자가 됐지만 친환경 실내환경관리업 닥스리빙클럽으로 재출발했다. 주요 서비스는 집 먼지와 진드기를 없애주는 알레르기 클리닝으로 전문 장비와 약품을 사용해 혼자서도 충분히 운영이 가능하다. 따로 들어가는 비용이 없어 순이익도 월평균 360만원 정도로 높은 편이다. 사무용품 구매대행을 전문으로 하는 구매로는 유통과 IT솔루션을 접목한 중소기업용 수·발주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소호 1인 창업자를 모집하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장점만을 살려 판매자와 소비자의 편의성을 극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수·발주 프로그램을 통해 상품소싱, 상품등록, 배송 업무를 본사에서 직접 처리하기 때문에 가맹점은 영업만 하면 된다.

    ◆ 정부도 1인 창업 적극 지원

    1인 창업이 청년실업 해소와 일자리 창출의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정부도 각종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중소기업청은 11월 초 앞으로 5년간 1인 지식기업 5만개와 프리랜서 13만개 등 총 18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1인 지식기업 육성방안'을 발표했다. 신용보증기금은 지난달부터 20~35세 창업자에게 최고 5000만원까지 보증해 주는 '청년창업 특례보증 제도'를 시행 중이다. 나아가 정부는 1인 창업 활성화를 위해 상법을 개정, 최저자본금제도를 폐지할 방침이다. 단돈 1원만 있어도 회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해 아이디어로 무장한 1인 창업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다만 1인 창업을 할 경우에는 모든 결과에 대해 자기 혼자 책임져야 한다는 점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1인 창업 성공 전략 포인트

    1. 뜨는 아이템을 좇지 말고 오래 할 수 있는 아이템을 찾아라_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는 뜨는 아이템은 경쟁이 치열하다. 전문성을 살려 오래 할 수 있는 아이템이 좋다.

    2. 박리다매는 백전백패, 후리소매(厚利少賣)로 승부하라_ 적게 팔더라도 유지될 수 있을 만한 고부가가치 사업을 해야 한다.

    3. 고객과 지속적인 관계를 만들어라 _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기보다 기존 고객을 만족시켜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할 만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4. 적재적소에 인터넷을 활용하라_ 과거에 영업사원, 관리사원이 했던 일을 이제 인터넷이 해결해 준다. 인터넷을 활용한 마케팅과 관리는 기업 경쟁력을 높여준다.

    5. 창업가의 마음가짐과 준비가 성공을 좌우한다_ 같은 아이템으로 경쟁해도 창업가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준비하는가에 따라 성패가 좌우된다.

    자료제공: (사)한국소호진흥협회 www.sohokore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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