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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의 軍史世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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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한 도전 [ 2 ]    2010/02/08 10:39 추천 4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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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의 軍史世界

 

무모한 도전 [ 2 ]

 

 

 

적진에 상륙을 결심하다

 

불굴의 신념으로 영국의 전시 상황을 영도하던 처칠은 소련의 계속된 제2전선 구축 요구에도 부응하면서, 사기가 떨어진 영국 국민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고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1942년 3월, 영국군 연합작전국 국장으로 부임한 마운트배튼卿 ( Louis Mountbatten, 1st Earl Mountbatten of Burma 1900~1979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시삼촌 ) 이 처칠을 찾아와 기습상륙작전을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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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칠에게 상륙작전을 제안한 마운트배튼 ]

 

처칠의 신임이 두터웠던 마운트배튼의 제안 내용은 독일 점령 유럽지역에 소규모의 영국군을 상륙시켜 독일군의 배후를 기습하여 혼란스럽게 만든 후 신속히 귀환시키자는 안이었습니다.  그는 언젠가 연합군이 유럽대륙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결국 대규모 상륙작전이 필요한데 여기에 관한 노하우를 축적하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도전은 시도해 봐야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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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유럽대륙으로의 침공은 예견되었습니다 ]

 

장기적으로 볼 때 영국은 유럽 대륙에 근거지를 확보하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선봉부대가 기습적으로 상륙하여 후속 통로로 사용가능한 항구를 온전히 점령하여 후속 보급과 지원이 가능한 교두보를 안전하게 확보하는 것이 가장 큰 선결과제였습니다.  따라서 장차 있을 수도 있는 대규모 상륙 작전을 대비해서라도 상륙군, 해군 및 공군이 유기적으로 작전을 펼칠 수 있는 지휘체계, 전투체계, 보급체계 등에 대한 실험적 작전은 요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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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규모 상륙작전을 위한 사전 준비는 당연히 필요 하였습니다 ]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상륙작전이 예견되는 지역과 관련이 있는 곳을 목표로 삼아야했고, 당연히 영국본토와 가까운 도버해협연안의 프랑스지역이 작전지역으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비록 의지는 있었지만 막상 이런 구상을 시험하기에는 앞서 기술한 것처럼 당시 상황은 좋지 않았습니다.  1942년 초까지만 해도 나찌는 전 유럽을 석권하던 극성기였고, 그러한 독일이 점령하고 있던 프랑스 북부해안은 그야말로 철옹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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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은 북부프랑스 해안에 철옹성을 구축하였습니다 ]

 

따라서 이러한 적진 한가운데나 다름없는 점령지역에 소규모라 하더라도 단지 시험적인 목적으로 부대를 상륙시키는 제안에 대해 당연히 너무 위험하다는 반대의견도 많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상륙작전에 대한 의지가 컸던 마운트배튼은 오히려 최초 구상하였던 코만도부대보다 규모가 훨씬 큰 사단 급 부대의 대규모 기습상륙작전을 검토하였고 이를 처칠에게 보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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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 특공작전식 소규모 상륙작전 대상부대로 예정 되었던 코만도 ]

 

마운트배튼은 경무장한 소구모 부대대신 기갑장비를 갖춘 사단 급 부대의 상륙작전을 직접 시현하여 봄으로써 장차전에 관한 경험을 쌓고, 반대급부로 영불 해협의 독일군 방어태세에 대한 구체적 정보획득을 얻음과 동시에 적진 한가운데인 유럽대륙에서 독일군을 타격하는 모습을 대내에 보여줘 영국민에게는 용기를, 소련에게는 생색을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고 이러한 생각에 처칠도 동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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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에프가 운명의 장소로 결정됩니다 ]

 

1942년 4월 4일, 마운트배튼은 참모부에게 세부 작전안을 짜서 보고할 것을 지시하였고 1942년 5월 영불 해협 연안의 프랑스 항구도시 디에프 ( Dieppe ) 가 목표지점으로 결정 되었습니다.  디에프는 영국 본토와 직선거리로 80여 km 정도여서 전투기가 엄호 할 수 있었고 일출전에 침입하여 작전을 실시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되었습니다.  또한 원래 휴양지이자 작은 항구가 있어 상륙환경이 좋았고 추후 연계가 편리할 것으로 평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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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양지로 인기가 많았던 디에프 해안가의 모습 ]

 

참모부는 특수임무를 수행할 코만도 부대가 사전에 침투하여 외곽인 Varengeville 와 Berneval 에 설치 된 해안포대를 파괴하면 주력 침공부대가 Pourville 와 Puys 로 나뉘어 디에프 해안의 상륙하여 항구에 정박한 독일군 함정을 파괴함과 동시에 서쪽으로 진격하여 현지에 주둔 중인 독일군 거점을 초토화시킨 후 해가 뜨고 조수가 밀려오기 전에 유유히 퇴각한다는 세부계획을 수립하여 보고하였습니다.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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